‘가도가도 往十里(왕십리)’

  수필만큼 그 인간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문학도 없다. 虛構(허구)을 꾸밀 것도 없이, 등장인물의 입을 빌릴 것도 없이, 全人格的(전인격적)으로 독자에게 대화를 건네 오는 수필은 그만큼 서정시의 경역에 가까운 것이다. 그 언어에 彫啄(조탁)이 세심하고 그 意想(의상)에 格調(격조)가 선연하면 이미 그것은 생활주변의 잡동사니를 주물러 얽어 놓은 그런 雜感錄(잡감록)에 비길 바가 아니다. 수필에 층하가 많고 또 그 수필에 가장 가까운 장르로서 抒情詩(서정시)를 먼저 손꼽는 까닭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사실 모든 예술의 감상은 그 인간에 있는 것이지 결코 거기 그려진 대상에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바다>라는 그림에서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시원한 海風(해풍)도 불어오지 않고, 코를 벌름댈 그 비린내도 풍겨오지 않건 만은 사람들은 제 발로 바닷가에가 서기보다는 그림을 바라보며 더한 감흥을 맛보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 보다 인간에 더 큰 매력을 느껴가지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정서에 까닭이 있는 것이라는 것이 ‘마르셀․푸르스트’가 한 말이거니와, 예술은 실로 그 인간에만 영원한 주제를 발견하는 것이다.
  ‘가도가도 往十里(왕십리)’는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새로운 境城(경성)을 향하여 쉼 없이 움직여 나가는 저자의 편모를 단적으로 드러낸 말이거니와, 거기에는 全篇(전편)이 저자의 인간적 고백으로 미어져 있다. 前作(전작) ‘歲寒國(세한국)’에도 더러는 점철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到底(도저)하다. 그것은 이미 감미로운 회상이나 추억이랄 것이 아닌 인간적 省察(성찰)로 가득하다. 망나니로 자처하면서 자라나던 시절의 가지가지 웃다 못해 눈물겨웁기까지 한 심한 장난질로부터 碩學(석학)으로 古今(고금)을 뚫어 꿰는 具眼之士(구안지사)의 술회에 이르기까지의 歷程(역정)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아니 이것은 오히려 이제는 숨길 것도 없는 憱憶(추억)들이라 치부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첫머리에 실린 <놀보전>에서는 가족까지 끌어내어다 自白(자백)을 일삼고 있으니 가히 이 한권은 차라리 저자의 참회록이라 이름 불일만 한 것이다.
  全篇(전편)중에서도 유독 회화체로 엮은 <나의 座右銘(좌우명)>에서는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거기에 지표가 나선다.(轉益多師是汝師(전익다사시여사))를 치세우고 있으니, 저자는 자라는 과정에서 분별을 익혔다는 것일까. 耳順(이순)을 눈앞에 두고 흉허물 없이 털어놓는 저자의 이런 인간적 고백은 그의 독특한 語法(어법)에 실려 오히려 감동적이다. ‘이왕 오르기로 작정한 산이면 끝까지 오르고 말겠다는 다짐과 그 오기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가도가도 往十里(왕십리))는 그의 남다른 안간힘이 시키는 것일까, 아니면 梅闌(매란)을 찾고 松柏(송백)을 말하며 더러는 봄나물과 재첩국과 서울음식의 감칠맛을 다독거리는, 그리하여 이제는 ‘서로가 마주봐 싫지 않는(相看兩不厭(상간량불염))’ 긍정적 관조의 경기가 시키는 것일까. 그의 노력, 그의 성장역정을 읽는 독자는 바로 높은 경지의 抒情詩(서정시)를 읽는 맛으로 수필문학이 지니는 그 진수를 여기서 캐어 가질 것이다.
<世運文化社(세운문화사)刊(간) 값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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