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기도, 많은 눈송이입니다.
손을 벌려 눈송이를
받아 봅니다.
눈송이는 어느새 스러져 버리곤
스러져 버리곤 하여
당신에게까지 건네 드릴 수가 없습니다.
고작
내 차가운 손을
건네 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이름이 있다. 내게 그런 이름 중의 하나가 ‘호영송’. 소설 「파하의 안개」로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호기심이 꼬리를 물던 이름이었다. “호(扈)씨도 있구나.”“영송? 꽃뿌리 영(英), 노래 송(頌). 아, 정말 타고난 문사의 이름이네.”“시인이면서 소설가, 거기다가 모교의 대선배!” 그런 이름이니, 어찌 잊히겠는가. 내 머리 속에 들어오는 순간 이중 삼중의 자물쇠가 채워진 이름, 호영송.
이름뿐이 아니다. 시력이 나빠서 한두 번 본 얼굴은 잘 기억을 못하는 내가 금세 알아보는 몇 사람 중의 하나가 그분이다. 아니 그분이 먼저 나를 알아보신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병아리 시인 시절에 공손히 인사 한번 여쭌 일밖에 없는데, 언제나 나보다 먼저 손을 내밀거나 인사의 말을 먼저 꺼내놓으시는 분이다. 그때마다 나는 착한 일을 해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는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발칙한 상상이지만, 나는 그분을 뵙거나 떠올리면서 문학 교과서 표지 모델로 알맞은 분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엷은 미소에 언뜻 언뜻 우수의 빛이 지나는 표정이 사뭇 문학적이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한마디 한마디가 오래된 만년필 글씨 같다는 느낌에서다.
위의‘시’를 보면서 또 그런 생각을 했다. 잉크로 또박 또박 써내려간 원고지 생각을 했다. 시를 쓰는 마음이란 ‘따뜻한 손이 차갑게 식도록 눈송이를 받고 있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그분의 나직한 목소리를 들었다. 벌써부터 첫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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