演劇(연극)은 模倣(모방)으로부터의 藝術(예술)

  演劇(연극)의 본질은 再現(재현)藝術(예술)이며 삶의 재현이라는 면에서 인간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고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연극의 根源(근원)은 미믹크이다. 미믹크란 다른 人物(인물)의 心的(심적) 物的(물적) 特性(특성)의 模倣(모방)能力(능력)과 모방의 기술로서의 표정, 그리고 動作(동작)에 의한 思想(사상) 感情(감정) 意志(의지)의 表出(표출)이다. 또한 연극은 인간 본능적 활동(性衝動(성충동))을 母胎(모태)로 발전했으며 자연적 행동이라기보다 인간의 의지와 정열에 의해 展開(전개)되는 人爲的(인위적)인 행동으로서 人間(인간)生活(생활)의 諸般(제반)摩擦(마찰)과 갈등을 인간 스스로가 자기의 육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장 밀접해 있는 예술 양식으로 사랑을 받고, 人間(인간)인 觀客(관객)은 人間(인간)인 俳優(배우)들의 現實(현실)再現(재현)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演劇(연극)의 발생은 종교적인 神(신)에 대한 관념에서 볼 때 西洋人(서양인)이 思惟的(사유적)인 東洋人(동양인)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문화적인 면에서 宗敎的(종교적) 樣式(양식)이 先行(선행)한다는 것을 볼 때 현대 연극의 효시는 서양 연극에서 찾을 수 있겠다. 古代(고대) 희랍시대에 深夜(심야)에 人跡(인적)이 없는 높은 山(산)에다 모닥불을 피우고 징과 북을 치며 피리를 불고 노래하며 迅速(신속)狂奔(광분)한 무용과 함께 시작한 연극행위는 디오니소스際(제)의 宗敎的(종교적) 起源(기원)으로부터 출발점을 두고 자연과의 관계 運命(운명)과 天意(천의)를 동기로 삼아 종교와 철학적 사상을 웅장한 코러스(合唱團(합창단))에 의해 표현한 아이스큐로스와 평범한 人間的(인간적) 詩人(시인)으로 불리우는 소포클레스는 코러스의 증가와 무용, 음악을 첨가하여 웅대한 영웅이 쓰러지는 破局(파국)과 함께 悲劇(비극)의 門(문)을 열었고 종합적 예술의 有産(유산)을 남겼으며 인간의 理性(이성)과 宗敎的(종교적) 情熱(정열)의 투쟁을 묘사한 유리피데스 이후 文藝復興期(문예부흥기)의 20여년간에 36篇(편)의 희곡과 7篇(편)의 詩(시)를 발표해서 當代(당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불명의 명성을 얻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초기에는 史劇(사극) ‘헨리 6世(세)’ 悲劇(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으로부터 그의 최대의 비극시대로서 4대 비극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을 포함하여 史劇(사극) ‘안토니오와 크레오파트라’ 등의 소위 恐怖(공포)悲劇(비극)과 流血(유혈)悲劇(비극)으로 당대의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정세의 혼란한 動搖(동요)와 그 변화에 의해 演劇(연극)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비극의 共感(공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와 같이 哀憐(애련)과 공포를 환기케 하는 사건의 劇的(극적) 描寫(묘사)로서 일종의 고통감을 동반하고 있음은 어찌할 수 없으나 전체에 통하는 일반적 보편적 정신으로서 인간의 마음속 깊이 振動(진동)과 內面的(내면적)인 앙양을 줄 수 있었고 야스퍼스의 悲劇論(비극론)에서 ‘悲劇的(비극적)인 것을 보려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일종의 淨化(정화), 解脫(해탈)을 찾는다’라는 말도 예술적 直觀(직관)에 의해 人間精神(인간정신)을 충족시켜줌을 알 수 있다.
  그 후 古典主義(고전주의)演劇(연극)의 傳統(전통)을 수립한 코르네이유, 라씨느, 물리엘 등은 中世(중세)傳來(전래)의 과장을 없애고 진실하고 참되고 고귀한 인간의 내면적‧심리적 갈등을 묘사하고 우아한 表現(표현)과 아름다운 대사로 그 시대의 전통을 확립했다. 그 후 ‘自然(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루소의 사상과 官能的(관능적)인 本能(본능)의 人間(인간)이 아니라 보다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人間(인간)만이 참의 자유라고 한 칸트의 사상을 구체화한 일련의 작품인 소위 浪漫主義(낭만주의)作品(작품)들은 풍부한 지식과 근대적 精神(정신)을 갖춘 레싱의 최초 悲劇(비극) ‘미스사라 삼프손’ 명석한 직관적 형식보다, 분방한 감정의 表出(표출)을 구하려는 괴테의 ‘괴츠’와 ‘파우스트’, 靑年(청년)時代(시대)의 분투와 반항 정신을 그린 쉘터의 ‘群盜(군도)’등이며 근대극에 와서 스타니스라브스키는 배후의 육체훈련과 演出(연출)의 위치를 확립시켰다. 현대극은 폴란드人(인) 그로토우스키의 실험연극론이 전세기 연극 운동으로 ‘反演劇(반연극)’의 대두와 함께 ‘肉體(육체)藝術(예술)의 復權(복권)’이라는 점에서 판토마임(無言劇(무언극))이 요구되었고 따라서 내적 충동을 일으키는 정신분석학의 도입을 가져오게 되었다. 演劇(연극)藝術(예술)은 이렇게 인간의 정신 세계내의 잠재된 무의식 속에 ‘性衝動(성충동)’이 저지당하고 억압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공인받는 행위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인간 心層(심층)에 내존한 충동을 言語(언어) 보다는 육체로서 표현되어 나타난 것이 판토마임일 것이다. 특히 판토마임의 선구자 ‘마르셀마르소’는 무수한 표정을 지닌 인간의 탐구‧육체적 표현기술을 개발함으로서 인간 자체를 표현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현대인의 思惟(사유)와 동작은 현대인의 精神(정신)世界(세계)와 현대인의 實相(실상)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의 정신세계와 육체적 實相(실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적 행위란 실로 다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도로 발달한 메커니즘에 지친 현대인들은 진실과 절대성에 대한 새로운 要請(요청)과 매스미디어의 육중한 공세 앞에 소멸될 위기에 빠져 가던 순수예술인 연극은 眞實(진실)에 대한 스스로의 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서 自信(자신)을 回復(회복)하게 되었고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실험 연극운동은 앞으로도 현대인의 정신과 감각에 맞게 계속 演劇(연극)의 新生面(신생면)을 보여 줄 것이다. 그러므로 연극은 인간 정신문화의 변천에 좌우 된다. 그리고 정신과 육체의 양면성을 추구하고 人間(인간)의 본질적 요소를 필연적으로 충족시키며 創造的(창조적) 産物(산물)을 낳는다. 문학‧철학‧종교‧경제‧정치 등 社會(사회) 時代(시대)反映(반영)을 모태로 그 당시 사회적 不條理(부조리)와 불합리한 모순을 시정하고 현실을 재현함으로써 현실보다는 선행하는 인간상을 형성하고 人間精神(인간정신)을 윤택으로 인도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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