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마르다. 질식할 것 같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위압감에 사로잡힌다. 어제와 오늘이 무엇이 다른가. 계속되는 것은 오직 무의미한 반복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진보며, 창조며, 변화란 말인가. 꿈이나 낭만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학문과 지식은 어떤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순전히 의미의 부여에 관한 문제일 것인가?
  웃음을 잃어버린 나는 인형이다. 날카로운 비수가 필요한 시간이다. 있음과 없음의 유한함을 초월하고 싶다. 언제나 그랬듯이 저무는 시간은 희망적이다. 조용하게 호소하는 음률이 오늘만은 유달리 가슴을 파고든다. 어느 시간에 들었던 질풍노도의 시대라는 단어가 실감나게 눈앞을 스쳐간다.
  생각하는 사람도 고독해 보이지만 저 흥청대는 인파 속에서도 구슬픈 울부짖음을 듣는다. 이곳에서, 태고의 정적을 듣는다. 혼돈의 질서를 찾는다. 뒹구는 낙엽보다 쌓여있는 잎사귀들에서 잃어버린 꿈의 추억을 더 듣는다. 생의 애환을 배운다. 문득 본래적인 나의 모습이 나타난다. 다시 일상적인 내가 걸어가는 것을 본다. 그 그림자가 몹시 길어 보인다.
  눈을 들어 멀리서부터 가까이를 응시해본다. 눈에 보이는 것은 진공뿐. 들려오는 소리는 신비한 숨소리뿐이다. 그 속에 나 자신을 투영해 보고 싶다. 순간을 영원으로 혼동하고 싶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면 엄마 품에 안겨있는 어린 아기의 고동소리가 생각난다. 동화 속의 천재소년을 연상한다. 재롱떠는 동물원 원숭이의 눈동자에서 시골 아저씨의 따스한 미소를 본다. 그 거친 손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어릴 때의 들녘으로 돌아가고 싶다. 파릇한 보리밭 사이를 거닐고도 싶다. 보리피리가 없어도 좋고 꼬옥 쥐어주던 따스한 손길이 없어도 좋다. 그 곳에서 사랑과 꿈의 신비를 되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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