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大(고대)亞細亞問題硏究所(아세아문제연구소)篇(편)

  韓國學(한국학)을 硏究(연구)하는 熱(열)이 높아가고 있는 요즈음 이러한 책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 학계를 위하여 또는 國家發展(국가발전)을 위하여 기쁜 일이고 또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은 玄岩社(현암사)에서 出刊(출간)하였지만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한국연구실편으로 되어 있다. 책의 이름대로 이 책은 한국의 實學思想(실학사상)을 그것도 哲學思想(철학사상)을 연구한 것이다. 이 책에 담겨진 논문은 모두 여섯 개로서 실학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은 아니다. 그 論文(논문)들의 제목을 보면 첫째 尹絲淳(윤사순) 교수의 ‘朴世堂(박세당)의 실학사상에 관한 연구’ 둘째는 崔東熙(최동희)교수의 ‘愼後聃(신후담)의 西學(서학)辨(변)에 관한 연구’ 셋째는 朴鍾鴻(박종홍) 교수의 ‘西歐(서구)思想(사상)의 도입 비판과 섭취’ 넷째 李乙浩(이을호) 교수의 ‘茶山(다산)實學(실학)의 修辭學的(수사학적) 構造(구조)’, 다섯째는 尹絲淳(윤사순) 교수의 ‘李圭景(이규경) 實學(실학)에 있어서의 통사상’, 여섯째 朴鍾鴻(박종홍) 교수의 ‘崔漢綺(최한기)의 경험주의’ 이렇게 모두 여섯 篇(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이것으로 보더라도 實學(실학)全般(전반)에 걸친 연구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까지 흔히 듣던 사람들의 이름도 아니다. 그 때문에 새로운 맛도 있다. 그러면 實學(실학)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서는 아직 一定(일정)한 定說(정설)이 없고 學者(학자)에 따라 다르다. 이를테면 <實學(실학)은 ‘事實(사실)에 입각한 實際性(실제성)’을 추구한 학문>(序文(서문))이라 하는 이도 있고 또 <實學(실학)의 學問(학문) 영역을 분명하게 한계 지을 수 없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儒學(유학) 자체의 학문영역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즉, 儒學(유학)이 원래 文(문)·史(사)·哲(철) 및 經世之學(경세지학)의 部門(부문)을 다 포함하는 까닭에 實學(실학)은 또 그것들이 分化(분화)된 學問(학문)들을 다 의미하게 된다>(尹絲淳(윤사순)교수)고 말하는 이도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여러 말이 많으나 實學(실학)이라는 말은 우리만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中國(중국)이나 日本(일본)에서도 쓰이고 있었다. 中國(중국)에서는 中庸章句大全(중용장구대전)에서 찾아지고, 日本(일본)에서는 18세기의 石田(석전)이라는 사람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을 가르침은 그 學(학)을 알차게(實(실)) 하기 위하여 먼저 學者(학자)의 고유한 本心(본심)의 끝을 알리고…>라고 말하였다.
  中庸章句大全(중용장구대전)의 말은 다음과 같다. 즉 <一理(일리), 中(중)은 흩어져서 일의 끝이 되고 다시 합하여 一理(일리)가 되나니 이것을 놓으면 六合(육합)을 꽉 차나, 한권 책으로 말하면 그 속에 모두 은밀히 담겨져 있어서 그 맛이 무궁하니 모두 실학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자 가운데 朴燕岩(박연암)은 <孝悌忠信(효제충신)을 講(강)하는 것은 學(학)의 實(실)이요 禮樂(예악)刑政(형정)을 講(강)하는 것은 學(학)의 用(용)이다>라 말하였고 金正喜(김정희)는 <實事求是(실사구시)>를 實學(실학)의 뜻으로 말한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中國(중국)과 日本(일본)에 있어서 實學(실학)의 의미는 거의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그것은 그와 다르다. 그것은 實用(실용) 또는 經世致用(경세치용)의 뜻으로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實學(실학)의 의미를 그 어느 하나의 뜻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實學(실학)은 언제나 <알차고 참된> 학문이나 때에 따라서 달리 말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그것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르네상스’의 의미를 가진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비록 6篇(편)의 論文(논문)에 不過(불과)하나 <思想(사상) 위주의 探究者(탐구자)>라는 點(점)에서 그리고 原文(원문)도 친절하게 欄外(난외)에 붙어 있어서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敢(감)히 권하는 바이다.
<玄岩社(현암사)刊(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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