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카만’著(저) 지명열譯(역)

  나는 지난 1월 訪獨(방독) 中(중) 프랑크푸르트에 들려 괴테 하우스를 찾았다.
  이곳은 괴테의 아버님의 저택이었다. 祖父(조부)님은 市長(시장), 아버님은 명예직이지만 帝室(제실)評議員(평의원)이었다.
  林鷗(임구) 外(외)의 ‘괴테傳(전)’에서는 ‘저택은 너무 큰 집이었다’고 쓰고 있다. 고층건물의 파도는 이 古都(고도)에도 밀려와 변모되었으나 2백년이 넘은 이 저택은 아무리 새 건물이 주변에 몰려왔어도 여전히 그 古典的(고전적) 우아한 자태는 감히 추종할 바가 아니다. 少年(소년) 괴테는 이 저택에서 성장했다.
  나는 소년 괴테가 한 살 아래의 여동생 코르넬리아와 넓은 계단을 뛰어다니며 놀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베르테르의 슬픔을 볼 때 괴테는 영원히 靑春(청춘)의 甘苦(감고)의 노래를 부르며 우리 앞에 서있다. 한편 ‘파우스트’ 2部(부)를 본다면 단맛 쓴맛 다 겪은 원숙한 全人的(전인적)인 위대한 像(상)으로서 우리 앞에 肉迫(육박)해온다. 25세와 83세의 차이가 그곳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初稿(초고)가 된 것은 24세 때였다.
  따라서 ‘파우스트’ 2부가 완결되기까지는 자그마치 근 60년의 시간을 要(요)했던 것이다. 한 작품의 테에마를 60년간이나 마음속에 깊이 품은 채 어루만지며 깎고 다듬으며 지내온 詩人(시인)의 사색의 강인성, 그 끈질긴 연속성에 새삼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와이마르’王室(왕실)에 26세에 발탁되어 정치가로서 분망한 세월을 종생토록 보내면서도 시작의 붓을 한시도 놓지 않은 괴테의 창작욕은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샘터와도 같다. 이러한 괴테는 당시 유럽의 萬人(만인)崇尙(숭상)의 대상이 되었다. 文化(문화)의 제왕이었다. 그 제왕에 반한 사람은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悲觀(비관)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어머니는 異色的(이색적) 찬미자였다. 그녀는 남편이 죽자 단치히를 떠나 풍부한 遺産(유산)을 다 털어 ‘와이마르’에 와서 高級(고급)싸롱을 경영하며 1주에 하루는 帝相(제상) 괴테의 內監(내감)을 기대했다. 그러한 찬양자의 단 한사람은 철학자 에카만(Eckermann)이었다.
  에카만은 1823년 괴테를 예방 후 괴테의 소망으로 書記(서기)로 머물러있게 되었다. 에카만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산에 가서 나무를 하며 羊(양)을 몰기도하며 行商(행상)도 하며 고생으로 자랐으나 文學(문학)의 애호가로 괴테를 존경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고향인 ‘하노바’로부터 도주해 ‘와이마르’에 와서 괴테를 찾았던 것이다. 괴테는 그를 보자 첫 눈에 사람됨을 간파하여 곁에 두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에카만은 敬愛(경애)의 마음으로 74세의 老詩人(노시인)에 師事(사사)하고 晩年(만년)에 있어서의 詩人(시인)의 무한한 寶庫(보고)의 문을 여러 우리에게 完熟(완숙)의 絶妙(절묘)에 달한 괴테의 사상과 詩(시)精神(정신)과 人生觀(인생관)을 남김없이 전해준 것이다.
에카만은 미리 計劃(계획)을 짜가지고 괴테와 틈틈이 對話(대화)를 나누었고 그것을 빠짐없이 記錄(기록)하여 “괴테와의 對話(대화)”로 完成(완성)하였다.
  旣成(기성)價値(가치)를 철저히 破壞(파괴)하려했던 니이체도 이 冊(책)의 價値(가치)는 否認(부인)할 수 없었다. “독일語(어)로 쓴 한권의 冊(책)을 든다면 어느 책을 꼽겠느냐”는 質問(질문)에 대하여 니이체는 “그것은 에카만의 ‘괴테와의 對話(대화)’라”고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속에는 人生(인생)에 대한 權威(권위)있는 指針(지침), 빛나는 知慧(지혜)의 말들, 온갖 說得力(설득력)있는 思想(사상)과 意見(의견), 나폴레옹을 비롯한 그 時代(시대)의 巨大(거대)한 人間像(인간상) 등이 차곡차곡 精誠(정성)껏 담겨져 있다. 그 時代(시대)는 나폴레옹 戰爭(전쟁)이 동식하고 유럽은 一大轉換期(일대전환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한 激動期(격동기)에 처하여 괴테는 항상 人類(인류)를 秩序(질서)․調和(조화)․綜合(종합)의 盤石(반석)위에 서게 하기에 힘썼다. 그때로부터 一五O年(150년)이 경과된 오늘, 世界(세계)는 또 새로운 轉換(전환)을 모색하는 激動期(격동기)에 처해있다. 이 때 우리는 한번 괴테의 調和(조화)․秩序(질서)에 관한 그의 원숙한 思想(사상)과 智慧(지혜)를 中心(중심)으로 淸凉(청량)한 가을밤의 對話(대화)를 나누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괴테의 말을 어느 敎條的(교조적)인 强迫(강박)을 꾀한 志人(지인)의 말이 아니다. 人間(인간)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때문에 스스로 그의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人間(인간)은 항상 헤매고 있다. 방황하는 동안에도 항상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84세에 죽기까지 괴테의 生涯(생애)는 항상 眞理(진리)의 빛을 찾아 헤매는 求道者(구도자)의 길이기도 했다.
<제일출판사 發行(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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