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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2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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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동대문학상]희곡‧시나리오 부문 가작나를 데려가주세요

등장인물
영춘(63/女)
선주(36/女)
윤지(23/女)

무대
무대에는 낡은 살림살이 몇 개만 놓여있는데 서랍장, 낡은 철제의자, 편의점 앞에 있을 법한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 몇 개다. 극이 상영되는 중에는 무대에 출입구가 없는 것으로 설정한다. 철제의자는 무대 뒤편에 있고, 이 의자에만 조명이 비춰지고 무대의 다른 곳이 어두워질 때 인물이 무대에서 나가고 들어오는 것으로 설정한다.

 

몸빼바지에 낡은 스웨터를 입고 고무슬리퍼를 신은 영춘, 한 쪽 무릎을 세운 채 앉아 마늘을 까고 있다. 커다란 고무 대야에 마늘이 가득 담겨 있다. 영춘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윤지가 누워서 잠들어있다. 영춘이 까던 마늘을 떨어뜨려 소리가 나자 윤지가 깨어난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영춘이 윤지 쪽을 돌아보면

영춘 : 깼냐?

윤지, 눈부시다는 듯 손을 들어 눈을 살짝 가리면서 주위를 살핀다. 윤지가 대답을 하지 않자 영춘 윤지를 다시 보며

영춘 : 아즉 나이도 어린 처자가 뭐가 아쉬워서 여길 왔을까잉.

영춘, 은근 부아가 치민다.

영춘 : 아따 벙어리당가? 왜 대답을 안한다냐?
윤지 : 할머니, 여긴 어디에요?
영춘 : 어디긴, 우리덜 같이 갈 데 없는 년들 사는 데여.
윤지 : 갈 데 없는...?

윤지, 벌떡 일어나서 두리번거리며 살피는데

영춘 : 아 이짝저짝 댕김시로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이거나 좀 거들지?
윤지 : 저 그런 거 못해요.
영춘 : 음메.. 멋땜시?
윤지 : 눈물나잖아요.
영춘 : 시상에..어째 요새 것들은

영춘, 혀를 찬다.
윤지, 두리번거리다가 무대 양쪽 끝을 살펴본다.

윤지 : 할머니, 여긴 문 없어요?

영춘, 고개 끄덕이면

윤지 : 그럼 어떻게 나가요?
영춘 : 어딜 갈라고?

윤지, 핸드폰을 꺼내 살핀다. 핸드폰을 높이 들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면서 신호를 잡기 위해 애쓴다.

윤지 : 한 칸도 안 올라가네. (짜증스럽게) 할머니 설마 나 납치한 건 아니죠?

영춘,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영춘 : 어따 쓴다고 납치를 한다냐? 마늘도 못 까는 째끄만 가이나를

윤지, 쌜쭉하게 있다가

윤지 : 적어도 할머니보다는 쓸모 있겠죠. 나이도 어리고! 탱탱하고!
영춘 : 나이는 뭐 허투루 먹남? 그럼 처자는 고 나이 먹도록 마늘 하날 못 까?
윤지 : 마늘 까는 걸로 벌어먹고 살 수만 있음 까요!
영춘 : (혀를 차며) 째끄만 년이 따박따박, 저걸 어쩐다냐? (넋두리하듯) 허기사 가이나들 모여사는 데가 그렇지 뭐. 내가 가이나들만 모여 사는 데를 딱 세 군데를 아는디 이짝은 집창촌, 저짝은 수녀원, 그라고 남은 데가 여기여. 근데 고거 아냐? 가이나들만 사는 데는 머슴아들하고 부대끼고 사는 데랑은 고케 다른 겨. 이짝이든 저짝이든 치고 박고 싸우믄 머리끄댕이 잡는 거제. 이짝은 상스럽게, 저짝은 성스럽게.

윤지, 벽을 살펴보다가 벽을 두드려보기도 하고 밀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 포기하고

윤지 : 할머니 여기서 어떻게 나가요?
영춘 : 나한테 묻지 말어. 이따 선주 온다. 갸한테 물어. 그건 갸전공이니께. 고러코롬 나가고 싶음 갸가 우짜든지 나가게 해주겄제. (사이) 근데 애당초 멋땜시 여길 왔다냐? 부모님이 걱정할 거인디
윤지 : 괜찮아요. 가출했으니까.
영춘 : 가출? 워메 그러코롬 안보이는데 여즉 고등학생이여?
윤지 : (쌜쭉하게) 대학생이거든요!
영춘 : 그라제? 어쩐지 고등학생치고는 좀...
윤지 : (영춘 째려보며)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영춘 : 아녀. 저 가서 기다리기나 혀.

윤지, 입을 삐죽거리며 철제의자로 가서 다리를 꼬고 앉는다. 그러고는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한다. 윤지 꾸벅꾸벅 졸면 윤지 위로만 조명 비춰지고 무대의 다른 곳은 모두 어두워진다. 조금 뒤 다시 무대가 밝아지면 무대 위에 커다란 장바구니를 든 선주가 등장해있다. 선주, 영춘 쪽으로 가서 마늘이 가득 담긴 대야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선주 : 아줌마 나 왔어.
영춘 : (선주 슬쩍 보며) 왔냐? 이번엔 또 뭐여?
선주 : 알면서...우리 아들.
영춘 : (답답하다는 듯) 보긴 봤고? 허기사 빤~하지 뭐.
선주 : 그냥 멀리서만
영춘 : 간 김에 손꾸락이라도 잡아보지.
선주 : 그러면 더 그립게? 여긴 영영 못올 테고
영춘 : 그러게. 뭔 술을 그렇게 허벌나게 마신다냐?
선주 : (눈 흘기며) 잔 비울 때마다 잔이 넘치도록 채우더니? 근데 잔이 넘치도록 꽉꽉 눌러 담는 술문화는 어느 동네에서 배웠수?
영춘 : (웃다가) 따라주는 족족 마시는 건? (사이) 더 컸제?
선주 : 응. 뭘 맥이는지 쑥쑥 커.
영춘 : 음식이야 어떤 년이든 너보다 못할라구
선주 : (눈 흘기며) 아줌만 정말..

영춘,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윤지 쪽 가리키면서

영춘 : 참, 아까 왔더라구
선주 : 어땠어?
영춘 : (영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고 나서) 대학생이구, 가출을 했다나.
선주 : (의아하다는 듯) 독립 아니구? 암튼 또 하나 늘었네.
영춘 : 몰러. 빨랑 내보내기나 해. 째끄만 게 얼마나 뻐드러졌는지

선주 일어나 피식 웃으며 윤지 쪽으로 간다.

선주 : 아가씨, 아가씨.

윤지, 일어난다.

선주 : 여긴 어떻게 왔어?

윤지, 선주를 물끄러미 보다가 눈이 커진다.

윤지 : 아줌마! 아줌마가 선주....예요?

선주의 얼굴 굳어진다. 선주, 영춘 쪽을 보면 영춘 다 안다는 듯 고개 끄덕이면서 그거 보라는 듯이 눈짓한다.

윤지 : 아줌마, 여긴 대체 어떻게 나가요? 문도 없고, 창문도 없고....통화권이탈에 그렇다고 컴퓨터라도 있길 하나. 아니 그 전에 저는 여길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구요.
영춘 : 납치 아니냐 그러드라.

선주, 크게 웃으면 윤지 영춘 쪽 째려보고

선주 : 여기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은 뭔데?
윤지 : (쭈뼛쭈뼛) 가출했다고요.
선주 : 어디서 앙큼하게 거짓말은, 여기가 그깟 걸로 올 수 있는 데면 강남 고속터미널보다 북적이겠다.
영춘 : (끼어들며) 그라제. 그라믄 시방...벌써 여가 가출청소년 쉼터됐겄제.
윤지 : (망설이며) 그걸 꼭 아셔야겠어요?
선주 : 싫어? (영춘이 까고 있는 마늘 보면서) 자긴 특기가 뭐야?
윤지 : 네? 저요?
선주 : 그래.
윤지 : 저 경영학관데요.
선주 : 그럼 마늘까기랑 인형눈 붙이기, 쇼핑백 붙이기 중에 자신 있는 건?
윤지 : (의아하다는 듯) 쇼핑백을...사람이 접어요? (선주, 영춘 어이없다는 듯 보면) 근데 그런 걸 대체 왜 물어보세요?
선주 : 무슨 일인지 말하기 싫다며, 그럼 셋 중 하나 아무거나 익히고 여기서 살아. 그럼 나도 편하지, 뭐.
윤지 : (망설이며) 그걸 꼭 아셔야만 나갈 수 있어요?
선주 : 여기 온 건 내가 자기보다 선배니까. (윙크한다.) 여긴 그런 데야.

선주, 영춘 가리키며

선주 : 저 아줌마 어떻게 보여?

선주, 이번엔 자신을 가리키며

선주 : 그럼 난?

윤지, 대답 없이 빤히 선주 쳐다보고 있는데

선주 : 엄청 잘나가는, 뭐 커리어우먼처럼은 안 보이지?
영춘 : (혀를 차며) 저 말뽄새...
선주 : (영춘을 향해) 그럼 아줌만 마늘 까는 커리어우먼이구? (다시 윤지쪽 보며) 그런 우리가 있는 게 여기야. 문도 창문도 없는, 절망으로 밑바닥 한 번 찍은 년들이 오는 데라고...(사이) 그렇게 깊은 곳. 난 여기 첨 온 게 이혼한 날이었어. 도장 멋지게 빡 찍고 쿨하게 법원 앞에서 빠이빠이했는데..... 그 날 술을 좀 과하게 마셨지, 아마?
영춘 : (끼어들며) 고 술을 끊어야 한당께.
선주 : 저기 아줌마도 그랬고, 그 전에 있었던 사람들도 그랬고 여기 오기 전에 한 번씩 밑바닥 찍고 올라갈 것만 남은 사람들이었어. (윤지 보며) 그렇담 자기한테도 뭔가 있겠지, 아냐? 뭐 꼬치꼬치 캐묻는 건 아니고, 자기가 나가고 싶다니까.... 그 일을 알면 나가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거지. (영춘 가리키며) 저 아줌마도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데 꽤 걸렸댔지, 아마?
영춘 : (손사래치며) 워메...말도 말어. 여기 온지 보름이나 됐을랑가. 암튼 그 때 겨우 돌아갔는디 혼자 살던 단칸방을 벌써 다른 노인네가 차지하고 앉아 있었당께. 별 수 있나? 일로 도로 들어올밖에
윤지 : 아무튼 그 일을 알아야 나갈 수 있다고요?
선주 : 내 경험상 그랬다구. 아닐 수도 있구

윤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다. 그런 윤지를 바라보는 영춘과 선주,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자!

윤지 : (결심한 듯) 길을.... 걷고 있었어요. 남친 아니, 그 개새끼가 제 소꿉친구랑 잔 거예요. 정말,정말,정말 빡돌았었거든요. 이정환 그 새끼랑 박영미 그 년 머리털을 다 뽑아놓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분명.....(사이) 깨어나보니 여기였어요.
영춘 : 끝이여?

윤지, 영춘 째려보면 다시 마늘로 시선 돌리는 영춘

선주 : 그래서 자긴 그리운 게 뭔데?
윤지 : 그리운 거요?
선주 : 애달픈 거, 그립고 보고 싶어서 죽겠는 사람이나 뭐... 없어?
윤지 : 없어요.

선주 수첩같은 걸 꺼내서 그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다. 예전부터 사용했었던 예제(?)같은 것이다.

선주 : 전 남친은..
윤지 : (말 자르며) 발정난 개새끼잖아요.
선주 : 당연히 안되겠고, 그럼 친구는
윤지 : (말 자르며) 영미 그 년, 꼬마 때부터 인형놀이 하면 꼭 제 미미를 탐냈거든요. 그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선주 : 부모님은
윤지 : 저 가출했다구요.
영춘 : 워따메, 나갈 수나 있겄냐?
윤지 : 그럼 어떡해요! 이 구질구질한 데서 마늘 냄새나 맡으라구요?

선주 얼굴 굳어져서 영춘 쪽으로 간다. 선주, 영춘이 까놓은 마늘을 따로 담는다.
윤지 아차! 싶다. 창피한 듯 가서 괜히 서랍장을 열어 본다.

영춘 : (속삭이듯) 그랑께 내 뭐랬어. 꼭 열에 하나는 저런 개념없는 것들이여. 내가 담번에는 분명 그럴 것이다 했제?
선주 : 뭐 우리가 고를 수나 있음 좋게? 그렇다고 여기가 우리집도 아닌데 오는 걸 막을 수도 없구
영춘 : 난 돌아갈 데도 읎구, 여기에 발바닥 붙이고 사는디 내 집이나 매한가지지. (영춘, 윤지 쪽 가리키며) 그래서 어찌 할라냐?

선주, 말없이 마늘만 담고 있다.

영춘 : (속삭이며) 저근하면 그냥 내보내지 그라냐?
선주 : 나갈 수나 있겠어?
영춘 : 슬마 아무 것도 읎을라구
선주 : 몰라, 나도.
영춘 : 인형눈깔이나 붙이게 할까나 도무지....우짤까잉.

윤지, 결심한 듯 다시 영춘, 선주 쪽으로 다가온다.

윤지 : 아줌마 그리고 할머니, 여기가 구질구질하다고 한 건 정말 미안한데요. 그래서 전 어떡하라구요? 저 정말 나가고 싶다고요.
영춘 : 아오 골이야. 그냥 싸게싸게 보내라.
선주 : 누군 좋아서 냅두는 줄 알아?

윤지, 선주 쪽으로 와서 매달리며

윤지 : 아줌마 저 진짜 나가봐야 돼요. 그 새끼랑 영미 그 년 또 붙어먹고 있음 어떡해요? 아줌마, 제발요! 비법 좀 전수해주세요.
선주 : 비법을.... 맨 입으로?

윤지, 주머니며 막 뒤지는데 별 거 없다. 선주, 윤지를 보다가

선주 : 깡도 좋다. 가출했다면서 맨몸으로 나왔어?
윤지 : 이럴 줄 몰랐어요. (계속 뒤적이다가) 아, 아줌마 이 립스틱은 어때요? 몇 번 안 발랐는데, 완전 신상~ 이번시즌 한정판 신상이예요! 너무 빨리 품절돼서 나 이거 다시 들어오는 날, 꼭두새벽부터 백화점 앞에 줄섰다구요.
선주 : 됐어. 누가 이런 거 좋대?

윤지, 아차 싶다.

윤지 : 아줌...아니, 언니! 예쁜 언니! (립스틱 뚜껑 열고 보여주면서) 솔직히 이런 색깔 봤어요? (애교스럽게) 언니랑도 딱인 거 같아요. 그쵸?

윤지, 두 손을 모으고 비는 시늉하다가 뭔가 생각난다.

윤지 : 그럼 여기서 나가게 되면 사례금 드릴게요!
선주 : 사례금?
윤지 : 네. 드릴게요. 그럼 저도 나갈 수 있는 거죠? 아줌만, 아니! 언니는 여기서 자주 나가는 거죠?
영춘 : 사례금은 무슨... 지금도 마늘 까서 둘뿐이라 충분히 먹고 사는데 무슨 사례금이여?

선주, 윤지에게 손짓하며 무대의 끝 쪽으로 간다.

선주 : (큰 소리로) 그래. 아줌마 말이 맞아. 우리가 뭐 돈이 필요해? 아까두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지. (속삭이며) 사실 우리 아들 생일이 곧 다가오거든. 나중에 밖에서 꼭 챙겨줘. 알았지? (윤지, 고개 끄덕이면) 아무튼 여기서 나갔다 오는 게 내 특기니까 내가 잘해줄게. 사실 아줌만 잘 못해. 아줌마 특기는 마늘까기, 나는 나가서 마늘 넘기고 받은 돈으로 장봐오기. 지난번에 한 번은 아줌마가 나갔다 오겠다고 하더니 3일 밤낮을 헤매다 온 거 있지?

선주, 윤지 같이 웃으면 영춘 둘을 째려보며

영춘 : 거서 뭣들 허냐?
선주 : 암 것도 안했어. 그치?

선주, 팔꿈치로 윤지 쿡쿡 찌르면 윤지 고개를 끄덕인다. 영춘, 다시 마늘까기 시작하면

윤지 : 근데요...언니는 나가실 때 어떻게 나가요?
선주 : 응? 나는 우리 아들이 직빵이야. 사진보고 있거나 생각만 좀 하면 바로 뿅!
윤지 : (호기심에 차서) 정말요? 정말 아들이면 바로 여기서 나가요?
영춘 : (윤지 말 듣고) 야! 아서라!
선주 : 응. (눈을 감는다) 우리 아들...욱이만 생각해도.. (갑자기 눈 뜨며 표정 어두워지는데) 아, 안돼! 마늘마늘마늘..안돼안돼!! 곰인형곰인형곰인형

무대 뒤편 철제의자에만 조명, 무대 모두 어두워졌다가 조금 뒤 다시 밝아진다. 선주 없이 영춘과 윤지만 남았다.

윤지 : (!!!!) 언니? 언니!!!!!!!!
영춘 : 그란다고 들리기나 하구? 벌써 엄한 데 떨어졌을 건디

윤지, 대답하지 않는다. 짜증이 난 듯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벽을 괜히 발로 찬다.

영춘 : 부잡스럽게 뭐허냐. 그라지 말고 여 와서 앉어.
윤지 : (짜증이 나서) 아 정말 어떡해요! 정말 여기서 1분도 더 못 있겠단 말예요!
영춘 : 고케 신경질이나 부린다고 해결이 되나?
윤지 : 할머니!!! 아 정말 어떻게 좀 할 수 없어요? 할머닌 못 나가죠?
영춘 : 못 나가는 게 아니고, 안 나가는 거여. 나가봤자 뭐 좋다고... (사이) 선주가 금방 올텡께, 걱정하지 말어.

윤지, 참지 않고 일어나서 서성거린다. 그러다가 핸드폰을 다시 꺼내들고 버튼을 막 누른다.

영춘 : 허이고, 부잡스런 거.

윤지,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에서 무언갈 찾고 있다. 윤지, 문득 생각난 듯이 눈을 감고 아까 선주가 욱을 생각한 것처럼 한다.

윤지 : 지영이지영이지영이지영이지영이지영이

윤지, 눈을 살짝 떠보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 영춘, 윤지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본다. 윤지, 쿵쿵 걸으며 철제의자로 가서 앉는다. 마음을 가다듬듯이 심호흡을 하면

영춘 : 얼레? 뭐한다냐.
윤지 : (눈 감은 채로) 할머니! 저 방해하지 마세요.

윤지,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눈을 감는다.

윤지 : 은정이은정이은정이은정이은정이은정이은정이
영춘 : 와서 마늘이나 까. 이게 인형눈깔이나 쇼핑백보다 훨씬 솔찮은디. 손에 익으면 하루에 한 자루도 깔 수 있드라고.
윤지 : (눈 뜨며) 할머니!
영춘 : 워메, 귀 따가운 거! 목구녕에 뭐가 들어서 그렇게 소리를 질러쌌냐!
윤지 : 저 정말 나가고 싶다구요! 전 마늘까면서 못 살아요! (영춘 눈치보더니 목소리 작아지며) 차라리..쇼핑백이면 몰라도....

윤지 다시 눈을 감는데 영춘, 못마땅하다.

영춘 : (혀를 차며) 아직 창창한 게 해찰이나 부려쌌고,
윤지 : 아...진짜..!!

윤지, 무릎을 모아서 세우고 무릎 사이에 얼굴 파묻으면

영춘 : 근데 가출은 워째서 한 겨?
윤지 : (안 들린다..) 아오..엄마...엄마...
영춘 : (놀라서) 시상에, 보기보다 속은 여리네잉.
윤지 : 엄마....엄마...
영춘 : 그라제. 밖에 나와보니 엄마가 젤 생각나고 그러는게 당연하제..
윤지 : (고개들며) 아 그깟 카드값 좀 내주지, 엄마!! 그럼 이 쌩고생 안해도 됐을텐데!!
영춘 : 카드값? 고래서 나왔당가?
윤지 : (고개 끄덕이면) 삼백만원 나왔는데 그걸 안 내주잖아요. 그것만 아니었음 집도 안 나왔고, 정환이랑도 안 싸웠을 거고, 모든 게 다 제대로였을텐데
영춘 : (놀라서) 워메, 삼배액? 삼백원도 아니고 삼백만원을 긁어싸? (손가락으로 계산하며) 워메..삼백이면 육개월은 찜질방 만들어놓고 살겄구만...대체 뭘했길래 삼백씩이나 나와, 자동차라도 샀당가?

윤지, 대답하지 않고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윤지 : 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

영춘, 무언가에 맞은 표정으로 윤지를 본다.

영춘 : 우리 정아도 내가 키웠음 저리 철딱서니 읎었을까잉...정아...아이고..안되는디..이럼 안되는디...정아...정아야....

무대에 모든 불 꺼지고, 철제의자에만 조명 비춰지면

윤지 : 할머니? 할머니!!!

무대에 불 들어오면 윤지, 혼자 뿐이다.

윤지 : 정아? (눈 감고) 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

윤지, 눈 떴는데 그대로다. 허탈하다.

윤지 : 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정아

갑자기 핸드폰 배터리 나가는 소리, 띠리링- 들리면 윤지 핸드폰 확인하고 신경질적으로 주머니로 핸드폰 밀어넣는다. 그러다가 뭔가 알아챘다는 듯이 다시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윤지 : 루이비통샤넬꼼데가르송비비안웨스트우드구찌펜디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꼼데가르송비비안웨스트우드구찌....

윤지, 눈을 뜨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적막하다.
털썩 주저앉아서 주위를 살피지만 아무 것도 없다. 마늘이 가득 담긴 대야뿐이다.
윤지, 대야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서 대야 안을 살피다가 코를 움켜쥐며 표정을 찡그린다.

무대에 모든 불 꺼지고, 철제의자에만 조명 비춰진다.
무대에 다시 불 들어오면 윤지, 씁쓸한 표정으로 있고, 선주, 나타나있다.

선주 : 나 왔어.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근데....아줌마는?
윤지 : 나갔어요.
선주 : 왜?
윤지 : 몰라요, 나도.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할머니까지 쉽게 여길 나가는데 왜 나만 못나가냐구요. 도와줄 거죠?
선주 : (놀라서) 아줌마가 여길 나가? 어떻게?
윤지 : 그건 제가 더 궁금하거든요.
선주 : 예전에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아줌마 예전에 나가서 3일 밤낮을 밖에서 헤맸다구, 이 엄동설한에...어쩌려구....제대로 챙겨 입긴 했어?
윤지 : 몰라요. 나 언니처럼 해보려고 친구들 이름말하고 있었단 말예요.

선주, 부리나케 와서 윤지의 어깨를 잡고

선주 : 친구 누구? 여자애들 말하는 거지? 이름이 뭔데?
윤지 : (심드렁하게) 지영이, 은정이....

윤지, 좀 더 생각하고 있고, 선주는 윤지 말을 듣더니 안심한다.

윤지 : 아! 정아.
선주 : (놀라서) 저,정아? 정아라 그랬니?
윤지 : 네.
선주 : 너도 참 너다. (사이) 아니..니 잘못은 아니지. 암튼 너 사례금 두 배는 줘야겠다, 정말이지....
윤지 : 왜요?
선주 : 아주 오늘 혼빠지겠네. 몇 번째야. (욱의 사진을 꺼내들며 윤지를 향해) 정아! 아줌마 딸 이름이야. 네 살 때 살기 어려워 입양을 보냈다나 어쨌다나.
윤지 : 그럼 그 뒤로 쭉 혼자..
선주 : 그랬겠지. 그럼 나 갔다온다.
윤지 : 잠깐만요!
선주 : 금방 갔다 와. 암튼 사례금은 두 배야다, 너! 아줌마, 기다려! 이 황선주가 가신다! (사진 들여다보며) 욱이,욱이,욱이....

윤지, 선주를 말리려는데 다시 무대에 모든 불 꺼지고 철제의자 위로만 어두운 조명 비춰진다.

윤지 : 언니? 언니!! (사이) 야 이 나쁜 년들아!!!!!!

다시 무대에 불 들어오면 윤지 짜증난 표정으로 서 있다.
마늘이 가득 담긴 대야에서 계속 냄새가 올라온다.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야 옆에 가서 대야를 발로 차더니 뒤집어엎으려는 윤지, 그러다 얌전히 내려놓는다.

(사이)

가만히 섰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서랍장으로 가서 세 번째 서랍을 열고 물안경을 꺼낸다.
물안경을 꺼내 쓰고 심호흡을 하더니 대야 옆에 가서 앉는 윤지, 마늘을 까기 시작한다.
한 개, 두 개, 세 개... 그러다 짜증스럽게 들고 있던 마늘을 집어던지는 윤지 

윤지 : (큰 소리로) 나도 데려가요! 사례금! 사례금 더 드릴게요. 언니! 할머니! 나도 데려가주세요!

김예은  문예창작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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