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별이 아름답다

오늘 밤 별이 아름답다

 꿈속에서 나는 눈 오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곳이었다. 빨간 산타 모자를 맞춰 쓰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과 도로 복판에 차를 세워두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왁자한 소리가 새어 나오는 파출소 건물을 끼고 도니 주택가가 나타났다. 거리의 소음과는 무관하게 골목은 적막했다. 가지런히 늘어선 집들은 대부분 비슷한 모습이었다. 붉은 벽돌 담 너머에는 담보다 높게 지어진 이층집이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불이 켜진 집은 한 곳도 없었다. 모두 집을 버리고 떠났거나 집 안에 숨어 꼼짝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전부 깊은 잠을 자고 있는지도 몰랐다. 눈발이 점점 굵어졌다. 나는 코트 깃을 세우고 얼굴을 파묻었다. 꿈속의 내가 외로웠는지 외롭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꿈속의 나를 지켜보며 잠들어 있는 나는 내가 외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품을 파고드는 바람이 엄혹하다 느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전봇대에 붙은 하숙인을 구하는 전단을 보고 있던 중 누군가 곁을 지나쳐 갔다. 감색 트위드 재킷을 입은 만삭의 산모 하나가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걷고 있었다. 더러운 털 방울이 달려 있는 발목을 덮는 짧은 부츠가 그녀를 남루한 요정처럼 보이게 했다.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워 요정인 적이 있거나 요정의 꿈을 꾼 적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손에 쥔 가방을 고쳐 잡으려는 듯 그녀가 팔을 움직였다. 검은 비닐봉지가 떨어지며 얇게 쌓인 눈 위로 귤이 떨어졌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숙여 귤 쪽으로 손을 뻗었다. 나는 그녀를 도우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엄마였다. 꿈은 거기서 끝이 났다. 나는 먼 곳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처럼 점점 묵직해지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전화를 건 것은 남동생이었다.
누나, 자고 있었어? 병원에서 전활 받았어. 상황이 좀 안 좋은가봐. 아니 뭐, 그런 얘기까지는 없었는데……혹시 모르는 거니까. 일단 가 있어야지. 응, 지금 집사람이랑 병원으로 가고 있어. 누나도 바로 와. 아, 큰누나한텐 내가 연락했어.
나는 전화를 끊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셔츠의 단추를 채우며 왜 병원에서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을까 생각했다. 엄마의 보호자로는 내가 등록되어 있었다. 차로 십 분이면 갈 만큼 병원과 집이 가깝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게는 언니나 동생처럼 딸린 식구들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병원에서 자기 위해 동거인의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되고 때때로 새벽에 걸려와 잠을 깨우는 전화 때문에 누군가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였다. 언제나처럼 오늘도 병원의 전화는 내게 걸려 와야 했다. 누가 남동생의 번호를 알려 주었을까. 엄마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 보호자가 남동생으로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옷장 서랍 맨 아래 칸을 열고 한데 섞여 있는 속옷들을 한쪽으로 치워가며 쥐색 스타킹을 찾았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런 전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다. 설사 지금 당장 최악의 상황이 되더라도, 나는 엄마가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절대 눈을 감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엄마는 내가 택시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암 병동이 있는 사 층에 당도할 때까지, 엄마가 입원해 있는 438호 병실 문을 열고 엄마를 에워싼 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엄마와 눈을 맞출 때까지 죽지 않을 것이다. 엄마와 나 둘 모두 그것을 알고 있다.
병실에 들어서니 누워 있는 엄마 쪽으로 몸을 숙이고 앉아 있는 언니와 남동생이 보였다.
넌 가까이 사는 애가 뭐 이렇게 늦어.
언니는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보며 눈을 살짝 흘겨 보였다. 그러는 넌 작년 아빠의 제사 이후 반 년 만에 찾아오는 것 아니냐며 한 마디 해주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미안. 택시가 없더라고. 엄마는 좀 어때?
주무셔. 진통제가 이제야 좀 듣나봐. 다행이야. 
잠든 엄마의 한 손을 꼭 쥐고 있던 남동생이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남동생은 꾸중을 맞으러 어른 앞에 불려 나가기 전 억지웃음을 짓는 아이 같았다. 어릴 적 남동생은 자주 그런 얼굴을 하곤 했다. 나는 남동생이 불안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직장에 누공이 생겨서 대소변이 질로 나온 모양이야. 누나 알고 있었어?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렇지만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다. 엄마는 자궁경부암 4기였다. 암이 진행되면서 암세포가 직장이나 방광, 골반 벽, 좌골 신경 등과 같이 자궁과 인접한 주변 장기를 건드리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요통이랑 부종도 더 심해졌다더라. 이것 좀 봐, 다리가 사람 다리 같지가 않아.
언니가 이불을 홱 걷어내자 베개 위에 올려놓은 엄마의 두 다리가 드러났다. 안에서 물이 차오르고 있는 듯 전에 봤을 때보다 다리는 더 심하게 부어 있었다. 짧게 깎은 발톱과 살갗 안을 흐르는 핏줄까지도 함께 부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돌렸다.
너도 몰랐니?
나를 힐난하는 듯한 언니의 태도가 불쾌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더군다나 만약 누군가 아픈 엄마에게 무관심했던 것을 따져 묻는다면 가장 할 말이 없는 사람은 언니일 거라는 점에서, 언니의 태도는 우습기까지 했다.
침묵.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언니는 대답을 기다렸다. 이런 경우 언니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하건 언니는 낚아채듯 말꼬리를 잡아 기어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부 하고 말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와 남동생은 언니의 사나움과 뻔뻔스러움에 기죽어 살았다. 언니는 원하는 때 원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것을 가질 수 있었고 우리를 벌줄 수 있었다. 언니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말대꾸를 하는 거였고, 그때마다 언니가 자주 쓰던 방법은 자를 세워 손등을 때리거나 주먹을 쥐고 엎드린 채 버티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서 언니는 아빠를 대신 하는 작은 폭군이었다. 나는 언젠가 언니가 우리를 벌주던 방식으로 엄마를 벌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참, 엄마 말야. 이틀 전에 간병인한테 더 이상 나올 필요 없다고 한 모양이야. 누나 알고 있었어?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제발 그놈의 알고 있었냐는 말 좀 그만 할 수 없어? 내가 꼭 알고 있어야 해? 엄마 몸에 일어나는 변화 하나하나, 엄마 변덕 때문에 손바닥 뒤집듯 번복되는 결정들 하나하나……내가 그걸 다 어떻게 아니? 엄마 일이야, 엄마 마음이라고. 한번 터져 나온 말이 마치 심한 기침처럼 멈춰지지 않기를, 내 입에서 처음 나온 날카로운 외침과 그 뒤의 정적, 내가 만들어낸 그 믿을 수 없는 정적이 병실을 가득 메우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게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에 무언가가 얹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나는 언니와 남동생에게 뒤돌며 손바닥으로 가슴 쪽을 세게 눌렀다.
그것은 아주 익숙한 답답함이었다. 언젠가부터 셋이 함께 있을 때면 나는 늘 이렇게 가슴을 꽉 누르는 동시에 목을 조여 오는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나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 했다. 내게는 털어 놓을 비밀 같은 건 없었지만 말하고 싶은 어떤 것이 있었다. 얘기를 시작한다면 먼저 나는 그들에게 물을 거였다. 이십 년 전 강릉으로 떠난 가족 여행을 기억하느냐고.
나는 그 여행을 기억하고 있다. 내 열세 번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온 가족이 함께 강릉으로 향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정체가 시작됐다. 강릉시내에 들어갈 때까지 정체는 계속됐다. 언니와 남동생은 승용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서리가 낀 창문에 낙서를 하며 낄낄거렸다. 강릉에 도착해 예약해 둔 숙소에 짐을 푼 뒤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엄마는 그날따라 유난히 많은 말을 했다. 남동생의 담임선생을 만난 얘기부터 곧 만기일이 다가오는 보험 얘기까지, 특별할 것이 없는 얘기들이었다. 나는 밥을 먹는 동안 종종 엄마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느껴졌고 그때마다 고개를 들어 아빠의 눈치를 살폈다. 아빠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언제나처럼 말이 없었고 잘 웃지 않았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빠가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취해 어울려 노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말하자면 아빠는 보이는 것 이외에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는 남자였다. 내가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엄마를 통해서였다.
식당에서 나오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해변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다.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대가족이 여행을 온 모양이었다.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가 들고 있는 폭죽에 불을 붙여주자 얼마 안 있어 불꽃이 일었다. 불꽃은 타오르는 꼬리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져갔다. 비명과 같은 고음의 스타카토가 밤하늘 곳곳에 울려 퍼졌다.
너희도 할래?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엄마가 물었다.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엄마는 해변 한구석에서 폭죽을 팔고 있는 사람에게 가 폭죽 한 묶음을 샀다.
엄마랑 아빠는 먼저 들어가 있을게. 놀다 와.
엄마가 우리 셋에게 폭죽을 나눠주며 슬쩍 아빠 쪽을 봤다. 호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바다를 보고 있던 아빠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이거 가지고 있어.
엄마가 내 손에 휴대폰을 쥐어준 뒤 숙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더 이상 엄마와 아빠가 보이지 않을 때 까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둘은 절대 나란히 걷는 법이 없었다. 아빠가 앞서 걷고 엄마가 그 뒤를 따랐다. 함께 있을 때의 둘은 늘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빠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엄마는……엄마는 아마 아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 엄마에게 그 둘은 별개가 아니었다. 엄마는 아빠가 자신의 삶을 만들고, 결정지었다 생각했다.
우리는 해변을 뛰어다니며 폭죽을 터뜨렸다. 나는 우리가 꼭 고아들 같다고 느꼈다. 그러자 이상스레 마음이 편안해졌다.
몇 개 남지 않은 폭죽에 불을 붙이고 있을 때 엄마가 주고 간 휴대폰이 울렸다. 두통약을 챙겨오는 걸 깜빡했다며 좀 사다달라고 했다. 나는 남은 폭죽을 동생에게 쥐어주고 약을 사 숙소로 향했다.
객실 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벨을 누를 필요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상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격렬한 싸움 또는 정사 뒤에 찾아오는, 더운 공기가 깔려 있는 정적이었다. 사람은 있는 것 같은데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방의 열린 문틈으로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아빠와 바다 쪽을 향해 난 창 앞에 서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엄마를 부르거나 발소리를 내 내가 왔음을 알리는 대신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 무언가를 보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덜컥 겁이나 뒤를 돌아 나가려는 찰나 아빠의 꽉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
오래 전부터……알고 있었잖아. 난……우린 이미…….
…….
이제 그만하자.
…….
부탁이야…….
띄엄띄엄 힘겹게 이어지는 아빠의 말에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을 깨고 엄마가 입을 뗐다.
그럴 수 없어요.
여태 등을 보이고 있던 엄마가 아빠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나는 분명 엄마가 나를 봤다고 느꼈다. 짧게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나는 온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객실을 빠져 나왔다. 나는 언니와 동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로비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머리가 아팠다. 손에 들려 있는 두통약의 껍질을 뜯고 한 알을 꺼내 삼켰다.
그날 저녁 엄마는 약이 한 알 비어 있는 것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엄마는 왜 그런 심부름을 시킨 것일까. 왜 하필 그때. 왜 하필 나에게. 나와 자신의 고통을 나누고 싶기라도 했던 것일까. 내게 모든 것을 들키고 싶었던 것일까……알 수 없는 일이다.
문득 나는 두 손을 축 늘어뜨리고 가르랑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엄마를 두들겨 깨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때 나를 일부러 부른 것인지,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것인지 나는 묻고 싶었다. 엄마는 내게 대답해 주어야만 한다. 그러면 나는 또 말할 것이다. 내가 행복해 지는 데 엄마가 얼마나 큰 방해가 되는지 아느냐고.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행복해지지 못하도록 엄마가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있다고 느꼈다.
강릉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엄마가 간 곳은 산부인과였다. 대기실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꽤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온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몇몇은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배가 불러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정확히는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상상과 직면하는 일이. 어떻게 사람의 살이 저렇게까지 팽팽하게 늘어날 수 있는 건지 믿기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양 옆으로 살이 찢겨 여인의 몸을 숙주 삼아 기생하고 있던 무엇인가가 고개를 내밀 것 같았다. 위험신호를 감지하려는 듯 그들은 모두 한 손을 배에 올려놓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배에 손을 갖다 댔다.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간호사가 엄마의 이름을 부르자 엄마는 내게 가방을 맡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가 향한 곳은 진료실이 아닌 수술실이었다. 나는 엄마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수술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엄마는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와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젖히고 앉았다. 아직 마취 기운이 남아있는 듯 천장을 보며 가늘게 뜬 눈을 천천히 깜빡거렸다. 나는 엄마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앉아 있다 가자.
엄마가 말했다. 나는 슬쩍슬쩍 엄마를 힐끔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한 쪽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엄마는 자식들 앞에서 때때로 눈물을 보였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우리는 곁눈으로 엄마의 슬픔을 지켜보는 데 익숙했다. 아빠와는 외모도 성격도 별로 닮은 곳이 없는 우리 삼 남매가 유일하게 아빠를 쏙 빼닮은 점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우리는 엄마의 감정을 무시하는데 익숙했다.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간에.
아빠는 일 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술에 취한 여자가 모는 차는 아빠를 치고 지나간 뒤에도 몇 백 미터를 더 달리다 가드펜스를 들이 받고서야 멈췄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엄마는 지나치게 침착해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마치 그렇게 하면 이 모든 일이 없던 일이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엄마는 평소보다 더 정확히 얘기하고 똑바로 걸으려 애썼다. 병원에 도착해 아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있을 때 경찰이 사고를 낸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여자는 경미한 타박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엄마는 천천히 여자 쪽으로 걸어가 연거푸 여자의 뺨을 내리쳤다. 착,착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여자의 얼굴이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아빠는 죽을 때까지 엄마와 함께 살았다. 나는 그 이상한 관계를 무어라 이야기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 어떤 타협이 오고 갔는지 역시 알 수가 없다. 죽이고 때론 죽임을 당하는 나날들이 반복됐다. 지루한 시간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전쟁에 익숙해지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여기면서도 그것에 익숙해지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나를 덮칠 것이라는 불안을 느꼈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타격이 가해지는 대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참담해야 했다. 나는 그들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었다.
어, 처제 왔어?
문이 열리고 형부가 들어왔다. 잠깐 눈을 붙이고 온 듯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웃었다. 형부는 증권 회사에서 꽤 높은 자리에 있었다.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형부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매 년 초 건강 검진을 받고 언제나 부지런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좀처럼 큰소리를 내는 법도 없었다. 형부는 화가 날 땐 화를 내기 전에 정말 화를 낼 일인지 하루나 이틀 정도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면에서 언니와 맞지 않았지만 이런 좋은 남자를 언니가 놓칠 리 없었다. 언니가 원해 온 남자는 형부처럼 모든 면에서 자신과 다른 남자였다.
언니와 형부의 결혼식이 있던 날 밤 아빠는 집으로 돌아와 내게 만나는 사람이 있는지를 물었다.
응, 있어.
과일을 깎던 엄마의 손이 멈칫했다. 나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는 어떤 대답을 기대한 것일까. 내 안에서 소리를 얻지 못한 말들이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다. 응, 있어. 나 만나는 남자 있어. 왜 그렇게 놀란 얼굴이야? 실망했어? 화가 난거야? 왜? 난 처녀도 아니고 구제할 수 없는 불감증이 있는 것도 아냐. 난 마음껏 사랑하고 있어. 난 남자를 혐오하지 않고 섹스 앞에서 쩔쩔 매지도 않아.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존재하는 깊고 검은 웅덩이를 나는 알고 있다.
실제로 나는 열심히 연애를 하고 사랑을 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남자를 만날 때 의식적으로 나의 부모를 떠올린다거나 혹은 떠올리지 않으려 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들이 치르는 전쟁은 그들의 것. 나와는 무관해야 한다. 오직 엄마만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만난 남자들 중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랑이 꼭 대단한 것일 필요는 없다. 상대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이빨을 박아 넣는 날을 꿈꾸며 서로의 꼬리를 물고 빙빙 도는 지루한 싸움. 그 열렬하고 뜨거운 놀이. 각종 퀴즈와 난무하는 오답들. 물러섬과 버티기. 그 정도의 적당한 긴장과 탄력이 있다면 나는 사랑에 대해, 상대에 대해 많은 것을 묻지 않겠다. 미래에 대해서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파리에서 유학 중인 미국인과 첫 섹스를 했다.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맞는 방학 동안 유럽을 여행 중이었다. 일행과 헤어져 혼자 돌아다니던 나는 바스티유 광장을 찾았다. 노천 카페에 앉아 바스티유 광장 복판에 세워진 혁명기념탑을 올려다봤다. 탑 꼭대기에는 자유천사라 불리는 금동 천사상이 있었다. 천사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등 뒤로 활짝 펼쳐진 날개부터 시작해 천천히 어둠에 잠기는 천사를 지켜보고 싶었다. 그때 한 남자가 내 앞을 막아서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그의 눈은 짙은 회색이었다. 혼자니? 같이 갈래? 에두르지 않는 그의 방식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는 자신을 스티븐이라 소개했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본명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스티븐의 집은 바스티유 광장과 마레 지구 중간쯤 위치해 있었다. 엘리베이터 없이 나선형 목조 계단이 이어져 있는 전형적인 프랑스식 건물이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나는 삐거덕 대는 소리가 너무 커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와 볼 것 같았다. 잠에서 깨 할 일이 없어진 그들이 내가 무엇을 하는지 바짝 귀를 세우고 엿들을 것도 같았다.
방문을 여니 냉기가 끼쳐 왔다. 스티븐은 계절에 상관없이 이 집은 늘 춥다며 웃어보였다. 나도 그를 따라 웃어보였다. 방 안에 가득 찬 시리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맨살에 와 닿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띠는 내 팔이 아름답다 느꼈다. 나를 마주보고 선 그의 어깨 너머 창밖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맞은편 집의 지붕이 보였다. 반듯한 대각선이 어둠을 분할하고 있었다.
첫 섹스가 끝나고 난 뒤 나는 서울에 있는 엄마를 생각했다. 언젠가 엄마는 내게 결혼 전 데이트를 하다 차가 끊겨 아빠의 집에 간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빠는 엄마에게 동생과 함께 살고 있으니 괜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날이 밝는 즉시 바래다주겠노라고 말했다. 당시 아빠는 학생이던 막내 삼촌과 함께 방 한 칸에 세를 들어 살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를 따라 집으로 가는 동안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방문을 여니 아빠의 말 대로 아직 애티가 나는 청년 하나가 잠들어 있었다. 아빠는 자신의 옆에 따로 엄마의 요를 펴 줬다. 아빠는 곧 코를 골며 잠에 빠져 들었고 엄마는 그날 한숨도 자지 못했다. 엄마는 그날 이후로 아빠를 사랑하게 됐노라고 말했다. 약속한 대로 아빠가 자신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동생이 옆에 있더라도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을 거라고도 했다.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모를 엄마의 얘기 앞에서 나는 딱히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첫 남자를 남편으로 맞는 일 또는 평생 동안 한 남자와 섹스하는 일이 여자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지 그 몇 개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뿐이었다.
 
자궁경부암 판정이 내려지던 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엄마는 창밖만 바라봤다.
집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시동을 끄는 순간 엄마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너희 아빠 때문인 것 같아.
나는 오래 기다리고 있던 안부를 전달 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기어이 내게 그 말을 하고야 말 것이라고 예감했었다.
병원에서 담당의에게 병의 원인과 경과, 치료법에 대해 설명을 듣는 동안 엄마는 안내문의 한 항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어떤 대목인지 알 것 같았다.
‘병명 자궁경부암. 병의 원인. 삼. 고위험 남성 파트너와 지속적으로 성교 했을 경우. 배우자의 불결한 성생활이 여성의 자궁경부암 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죽은 아빠의 유령이 돌아온다. 끝나지 않은 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누구도 엄마에게 어째서 다른 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느냐고, 안내문에는 삼번을 빼고도 열 개의 원인이 더 기재되어 있다고 다그칠 수 없다. 그들이 치르는 전쟁은 그들의 것. 그들이 아닌 다른 이들과는 무관해야 한다.
경부암에 걸린 이후 엄마는 더 손쉽게 아빠의 유령을 불러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나는 아빠의 유령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아빠의 유령은 아빠만큼이나 엄마에게 냉랭할까. 어쩌면 그는 소환 자체에 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언니의 전화가 울렸다. 여섯 살 난 조카 소미인 모양이었다. 소미는 영특하고 똘똘했다. 언제 무슨 말을 해야 제가 예쁨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아는 아이었다. 아빠보다는 엄마를 더 닮았다. 세상에는 남의 자식이어서 다행인 아이들이 더러 있기도 한 법이다.
처제는 결혼 안 해? 더 늦기 전에 아이도 낳고 해 봐야지.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린 예수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마리아를 그린 성화를 볼 때마다 나도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막 털이 나기 시작한 작고 부드러운 머리통을 내 가슴에 품고 싶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나는 자랄수록 늘 나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을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낳은 아이가 점점 낯설어지는 것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알지 못한다. 엄마는 그 모든 과정들을 어떻게 처리해 왔을까.
너 정말 결혼 생각 없어? 결혼 한다고 글 못 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유난을 떠니.
전화를 끊은 언니가 끼어들어 말을 받았다.
참, 처제 이번 소설 좋더라. 난 책 잘 안 읽는데 처제 소설은 꼭 찾아봐.
형부는 가족 중 유일하게 내 소설을 읽어주는 사람이었다. 
근데 말이야, 우리 증권맨들 그렇게 재미없는 사람들 아니야. 소설가들 눈엔 그렇게 보이려나? 뭐 그런 면이 없진 않지. 늘 시간에 쫓기고 하루 종일 하는 거라곤 돈 생각뿐이고. 나도…….
형부는 슬쩍 언니의 눈치를 살폈다.
나도 가끔 시간을 돌려 모든 걸 다시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 해. 직업도……사람도…….
원망.
나는 그때 처음으로 형부에게서 언니와 아이에 대한 원망을 느꼈다. 언니 역시 형부의 원망을 눈치 채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 얘기도 좀 써 줘.
언젠가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다. 가장 쓰고 싶지만 절대 쓸 수 없는 얘기가 있다면 그건 바로 엄마에 대한 얘기였다. 시도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몇 번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이 났다. 나는 이야기를 가공시킬 수가 없었다. 그 이야기에 나를 참여시키지 않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문장 곳곳에 작은 가시처럼 박혀 있는 살의들이 모여 엄마를 죽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눈 오네.
커튼을 걷어내며 남동생이 말했다. 창밖으로 제법 굵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나는 오늘 꾼 꿈을 생각했다. 꿈속에서 만삭이었던 엄마는 누구를 배고 있었을까. 우리 셋 중 누구를 뱄을 때 엄마는 그렇게 곁눈질 한 번에도 선명한 가난의 기미를 지니고 있었을까. 나였을까. 나는 꿈에서 걸었던 그 골목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 봤다. 뱃속에서 삶을 미워하지 않게 해 달라는 엄마의 기도를 들은 적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 봤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모두 돌아가고 난 뒤에도 나는 혼자 남아 엄마가 깨어나기를 기다릴 것이다. 엄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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