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3월 2일 上京(상경)하다.” 어떻게 이루어진 사연이며 얼마나 많은 陣痛(진통)과 試鍊(시련)속에 만들어진 제목인가? 나는 왜? 무엇하러 上京(상경)했는가? 特急(특급) 入席(입석)! 할 일없는 想念(상념)의 길을 마냥 걷고 있을 수밖에… 窓(창)밖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내 눈에 어리는 것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파란 속에 시들어간 지난날이 아롱진다….
  다시 타향에 섰다. 아직 住所(주소)마저 확정되지 않았다. 타향살이 7년째, 저기가 南(남)쪽인가? 저쪽이 고향인가? 풀리는 날씨와는 달리 자꾸만 얼어붙으려는 마음은 자그만 鄕愁(향수)에 젖곤 한다.
  서울은 나의 第三(제삼)의 故鄕(고향)이다. 情(정)들어야 할 곳이며 오직 배움과 浪漫(낭만)의 보금자리이어야 한다. 내 키 五尺(오척)에다 半尺(반척)을 다 더하지 못하는 身長(신장). 그러나 마음만은 높고, 넓게 그리고 깊게 가꾸고 싶다. 肉體(육체)는 적지만 정신만은 누구 못지않게 伸張(신장)시키고 싶은 게 나의 信念(신념)이 되어왔었다.
  나는 諦念(체념)의 美學(미학)을 알지 못한다. 허나 나는 과거를 너무도 많이 잊어야만했다. 떨치고 올라와야 했다. 체념하며 주어진 길을 가야한다. 또 한 번 탄생해야 한다. 패배의 쓰라림을 애써 키우면서 와신상담 몇 년 後(후)의 對決(대결)을 위해 투쟁의 칼을 갈아야 한다. 밀리고 밀려왔다.
  陣痛(진통)--그렇다. 그것은 분명 産苦(산고)와도 같은 기나긴 苦痛(고통)이었다. 9개월의 孕胎(잉태) 끝에 나는 태어난 것이다. 東國(동국)의 아들로서 東國人(동국인)으로서 낯선 땅을 밞은 것이다. 東大(동대)는 어느 대학보다도 崇高(숭고)한 정신아래 밝혀진 學園(학원)이다. 佛陀(불타)의 자비로운 미소가 어리고 부처님의 後光(후광)속에 자리한 學風(학풍). 거기에 뒤지지 않는 전통의 뒷받침이 있는데 왜 코끼리는 跳躍(도약)의 길을 걷지 않는가? “너무 기대하지 말라, 실망이 커지기 전에”
  듣는 나는 괴로웠다. 야망의 품속에는 復活(부활)의 眞正(진정)한 꿈이 싹터왔는데…. 나의 理想鄕(이상향)이었던 東國(동국)은 나의 터전일 수 있을까?
  아직 꺼지지 않은 期待(기대)가 있다. 총장님의 다짐이 동창회장님의 외침이 아직도 역역하다. 올해는 東國(동국)中興(중흥)의 해다. 나도 떳떳한 일원이 되리라. 기대가 있고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명의 길일진대 知性(지성)과 人格(인격)陶冶(도야) 自我(자아)完成(완성)이란 거창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발버둥 쳐볼 만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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