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지상 최고의 과제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 사람대로의 삶의 길이 있다. 그러나 이 삶이 운명적으로 결정되는 것인지,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지, 혹은 우연적으로 되어버리는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先覺者(선각자)들이 탐구하여 왔으나 아직도 명확한 한 가지의 대답을 내릴 수는 없다. 아니 과학의 발전이 마지막 한계에 달하고 인류가 사멸하여 버리는 그 순간까지도 영원한 수수께끼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찌하여 내가 가야 할 길이 꼭 한가지로 결정지어 있는 양 그렇게도 집념을 버리지 못하는 것인가? 대학교에 들어올 때 어렴풋이 이 길이 내 길인 것 같아서 들어오긴 했으나 확신은 가지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부터 나는 나의 앞날과 해야 할 바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하나의 추상화를 가지고 있다. 추상화라기보다 세밀화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도 뚜렷하고 당연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 길은 매우 힘들며 어쩌면 남들이 생각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이 내 길일진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으며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 길이란 바로 공부하는 길이며 그 중에서도 철학을 하는 길이다. 철학을 하는 사람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죽음의 문제에서, 어떤 사람의 진리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어떤 사람은 절대적 진리를 발견하려는 열망에서, 어떤 사람은 종교와 결부된 철학을, 어떤 이는 과학으로서의 철학을, 어떤 이는 이 인간의 처절한 운명에 감동하여 등등. 그러면 나는 어떤 생각에서 철학을 하려는 것인가? 여러 가지가 복합된 것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성향에 가장 맞는 것 같으며 동시에 다른 풍토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며, 그리고 인간의 비참한 운명을 안 지금은 ‘그래도’ 진리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이, 다른 허위적인 상황 속으로는 나를 내맡기지 못하게끔 이미 진리적으로 되어 버렸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꼭 학문적인 사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진짜, 진실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진리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말은 인간이 절망적으로 비참한 존재이며 이 세상에서 건설적이고 희망적으로 지향해야 할 절대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도 진리의 길을 가야 한다 함은 이러한 것을 자각한 인간으로서 행하여야 할 바는 다른 허위적, 조작적 사실은 도저히 맛이 없고 무미건조해서 권태로워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더욱 열정적으로 진리 속으로 성실하게 내맡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길 물론 인간의 목적은 아니다. 거기에 부딪쳐 몸이 으스러지고 더욱 절망적으로 될지라도 그냥 내맡길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래도 역시 복잡 미묘한 동물이다. 이다지도 인간의 운명을 절망적인 것으로 보면서도 나는 그 외에도 다른 욕망을 가진다. 생리적 현상들이 그저 본능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욕망 역시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저 하고 싶은 나의 본능적 열정일 뿐이다. 글을 쓰고 싶으며 또한 내 본래 심미적인 인간이라 나 자신을 美的(미적)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도 註(주)를 달자면 그 이유는 예술을 지상 최고의 과제로 보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종교, 사상은 이 지상의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바램이고 추구해가는 과정이며 영원히 도달될 수 없는 안타까운 것이다. 아까 목적을 가지지 않는 인간으로써 절망적으로 진리적 상황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말과 연결되는 것으로, 예술적 상황에 철저히 내맡겨야 한다는 추리도 나온다. 불행한 운명을 가진 人間(인간) 一般(일반)은 다만 열정적으로 예술적 상황과 진리적 상황에 자신을 내맡길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칸트의 無目的的(무목적적) 合目的性(합목적성)이며 현대철학사조의 하나인 실존 철학의 내용인 것이다.
  이 글에 여러분들이 긍정을 하건 화를 내건, 나는 여러분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겠다. 졸업생으로서 여러분들에게 희망적으로 살아갈,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해주질 않고 오히려 인간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절망적 사실을 말함으로써 여러분들을 혼란시키고 화나게 한 점이다. 현대의 물질적, 정신적 위기 속에서 쓸데없는 망상적인 생각을 한다고 화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명백히 답변할 수 있는 나의 말은, 나와 같은 철저히 근원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욱 성실하게, 진실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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