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산에서 새 아기코끼리가 뒤뚱거리며 조심스런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다. 그렇게 위대해보이던 대학뺏지가 입시경쟁에서 이긴 자에게 주는 무슨 훈장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승리는커녕 진리의 문턱이라는 대학 신입생으로서의 초조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고교 졸업식 때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께 선물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끝나고 빵이나 하나 주려나 하고 생각했더니 그것이 아니고 “이 세상은 여러분들 것입니다. 모두 가지십시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 무한한 지식도, 오직 신비한 예술도, 믿는 친구도, 젊음의 낭만도 모두 우리의 것이다.
  다만 댓가만 지불한다면….
  지식은 피나는 노력을, 예술은 무한한 정열을, 친구는 마음을 주고서야 얻게 된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다. 그러나 불의와는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용기를 가지리라. 거대한 코끼리는 생쥐를 겁낼지 모르지만 우리 아기코끼리는 그렇지 않다.
  이제 우리는 더 많이 배우고, 알고 체험하기 위해 교문을 기웃거리다가 들어섰다. 그 다음은 찾아야 한다. 강의실에서 찾고, 쓰레기통 속도 뒤져보고, 도서관 책 속에서 찾고, 한 조각 신문도 다시 살펴보자.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주는 밥만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진리에 목마르고 義(의)에 주린 배는 자신이 채워야 한다. 찬밥, 더운밥 가리기에는 너무나 허기져 있다. 내가 양육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밥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부엌에 있을 것이다.
  배(梨(이))를 하나 따먹는 데에도 몇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우선 배나무 밑에 멍석 깔고 앉아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이 둔마 같은 짓임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면 그 다음은 흔들어 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학문이라는 巨木(거목)은 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는 기어 올라갈 수밖에. 저위에는 배(梨(이)), 그 밑에 배(裵(배))군이 기어 올라가려고 지금 서 있는 것이다.
  광부는 석탄이, 노동자에게는 임금이, 용감한 군인에게는 훈장이, 열심히 노력하는 우리 학도에게는 지식이 주어질 것이다. 노력하고 얻으면 되는 것들이다.
  이제 난 무엇일까 자문해 본다. 겉은 대학제복이지만, 정신은 맞추어 입는 옷과 같지가 않아서 영 엉성하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나 보낼 줄 아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실컷 자고 일어나면 오전 여섯시인지 오후 여섯시인지 잘 구별이 안 될 때가 있는 것이다.
  버스에서 왜 차비 십원을 깎아주나? 이 중대한 사실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뭔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이제 서먹함을 없애고 좀 더 빨리 친해지기 위해 서로 통성명하고 소개해주기 ‘캠페인’을 벌이면 어떨까? 그리고 서먹서먹함이 가시고 어떤 재미있는 분과 3월말에 온다는 외국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라도 같이 감상하러 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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