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짧고 쉽다는 것, 상황에 맞는 심리를 빠르고 맛있게 묘사한다는 것, 극단적으로 완전한 신데렐라의 해피엔드이거나 아니면 가슴 저미는 눈물의 결말 등….’ 독자를 빨아들이는 글은 이 같이 공고한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지독히도 공식적인 이러한 특징을 ‘쇼퍼홀릭’은 잘도 따라간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소설은 그래서, 읽을 때는 즐겁지만 읽고 나면 괜스레 속은 느낌이 나고 역겨워져서 허무한 느낌을 떨치기가 쉽지 않아 진다. 주인공 ‘레베카’처럼 정신 나간 귀여운 쇼핑중독의 신용불량자에서 하루아침에 훌륭한 TV경제 조언가가 되고, TV 토론의 적수였던 돈 많은 남자와 갑작스레 사랑의 밤을 보내게 되며, 마음을 고쳐먹고 건전한 재무관리를 다짐하는 일은 우리의 현실 근처에는 전혀 흔하지 않다. 그래서 이 글은 또 다시 시커먼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레베카가 힘들어할 때마다 먹고 싶어 하는 달콤한 초콜릿을 독자들에게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극적인 해피엔드를 만들어 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애초부터 쇼핑중독자에게 주의와 경고를 주려는 마음은 없다. 그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잘도 이해해주고 그런 여자들의 자기 합리적인 묘사를 멋지게 하고 있을 뿐이다. 모든 여자가(또는 남자가) ‘레베카’식의 여자는 아니다.
따라서 이 소설이 빠른 스피드로 상황상황 변화하는 레베카의 심리상태를 스케치했다고 평가한다면 동의할 수 있지만, 일부 언론의 찬사처럼 여성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째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언론사의 서평도, 책 팔아먹기에 급급한 출판사의 로비에 넘어간 지 오래됐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창문과 시계가 없는 백화점은 환한 조명, 구매욕을 자극시키기 위해 고객 모르게 뿌려놓은 향, 천천히 움직이도록 틀어 놓은 클래식 음악을 통해 고객을 지배한다. 많은 현대인들은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사고 있다. 레베카가 그렇듯이 누가 봐도 쉽게 명품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는 쇼핑백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모임에는 레베카가 말하는 ‘파이낸셜 타임지’같은 저명 경제지를 옆구리에 끼고 가야 윗사람을 씹어도 진지해 보이는 것이다. 박물관이나 서점도 쇼핑 이미지의 대상일 뿐이다. 기업들은 현대인들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과 합리적 기억력이 줄었다는 사실을 잘도 알고 있다. 레베카가 흉측하게 생긴 나무 그릇을 보며 저런 걸 누가 사겠냐고 생각했다가 점원이 유명 잡지에 등장한 물건이라며 잡지 찢은 걸 보여주자, 곧바로 ‘백색의 미니멀한 공간’에 잘 어울릴 만한 물건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자신의 안목을 칭찬하며, 친구들이 얼마나 놀랄지 상상하고 사버리는 것이다. 구매 행위에 쾌감을 느끼는 쇼핑중독자나, 브랜드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상품의 이미지에 탐닉하는 브랜드마니아들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처량한 모습은 곧 잡혀 먹힐 줄 알면서도 풀 뜯어먹기 위해 목동의 지시에 움직이는 초원의 소처럼 현대 사회가 만든 우울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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