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여 전 한 신문의 구석에 조선시대 소설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 소설은 이전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늘 평범하지 않은 소재에 굶주려있던 영화계에서는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실제로 영화계의 모 기획자는 이 소재를 영화화 해야겠다고 찜(?)까지 했었다고 한다.
2년 후 같은 소재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년 전의 조선시대 살인의 이미지를 어떻게 재현했을까 하는 호기심과 관객의 반응을 살피고 싶은 마음에 극장으로 갔다. 마침내 2시간 동안 ‘혈의누’를 보고 나오는 느낌은 마치 사극 호러 종합선물세트를 구경하고 나오는 느낌이었다.
영화 ‘혈의누’속에 나타난 다섯 가지 살인의 기법은 이미 죽은 사람을 죽창에 꽃아 전시해 대중에게 공포를 주는 효시, 커다란 끊는 가마솥에 산채로 집어넣어 삶아 죽이는 육장, 몸을 꼼짝 못하게 만든 후 얼굴에 한지를 붙여 질식사시키는 도모지,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를 돌로 깨뜨려 죽이는 석형, 그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처참하게 죽이는 방식인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의 다섯 가지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피튀기는 살인이미지를 즐기는 일부 마니아들이나 좋아할 법한 영화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설의 고향’과 같은 장르에서 보아왔던 여귀와 원혼의 존재감, 무협풍 유사액션, 권위주의적 가치관이 치장되어 익숙함으로 초대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극의 고정관념을 깨는 권총, 물리학적 역학구조의 제지소, 시체부검 현장 등은 관객을 동양적 유교관과 서양적 합리성, 토템과 과학의 접점에 서게 한다. 사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런 신기하고 잔인한 장면들을 거침없이 2.35 : 1의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담아 낸 김대승감독은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으면서까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데뷔작인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윤회전생이라는 소재를 끌어들여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던 유니크한 멜로영화를 빚어내기도 했던 그가 5년 만에 만든 이 작품 또한 잔잔하며 순박하고 민족적 정서인 ‘한’이 등장하는 거장감독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정통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분명히 한국적이고 새롭다. 그렇다면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가능성’이 아니었을까.
호러·스릴러·미스테리·멜로 등 여러 복잡한 요소들을 시나리오에 조화롭게 장식하고 선보인 이 영화가 주목받고 있다.
말하자면 성공인 셈이다. 어쩌면 ‘혈의누’는 ‘스캔들’과 함께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해낸 전통사극의 진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단 걱정스러운 것은 이제껏 한국영화가 보여주었던 따라하기 풍토인데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붕어빵처럼 찍어대는 자본본능에서 탈피해 새로움을 위한 고민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성숙한 단계로 가야 되지 않을까 진단해 본다.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재미있고 새롭고 한국스러운 영화들이 많이 기획되어지기를 바라며 다음번 깜짝 놀래켜 줄 한국영화는 반지의제왕시리즈나 스타워즈시리즈에 못지않을 사극SF환타지시리즈 영화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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