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독자 인터뷰 - 영어영문학부 장시기 교수

흔히 ‘30년이면 강산(江山)이 변한다’고 한다. 1981년 우리대학에 입학해 현재 교수에 이르기 까지 30년 동안 동대신문과 인연(因緣)을 이어온 사람이 있다. 바로 영문학과 장시기 교수다.

학생으로, 교수로 동대신문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를 체감(體感)할 수 있었다는 장시기 교수. 동대신문 역사의 반을 함께 한 그를 만나 동대신문과의 인연을 들어봤다.

동대신문과 장시기 교수의 인연은 장 교수가 1981년 동국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혼란스러운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대학신문은 대학사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장시기 교수는 “당시는 대학생이 사회운동을 주도하던 시기”라며 “기성언론이 다루지 못했던 사회적 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다루고 있는 동대신문은 대학 내에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동대신문에 대한 얘기는 항상 빠지지 않았다”고 동대신문이 80년대 대화의 매개였음을 말했다. 장시기 교수는 당시 기자와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공개(公開)했다. 그는 “학부생 시절 동대신문을 깔고 앉아 막걸리를 마시다가 기자 친구에게 호되게 당했던 적이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렇듯 장시기 교수는 대학시절은 동대신문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학부생 시절 동대신문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대학원생 시절에는 동대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하고, 좌담회에 참석해 열띤 토론(討論)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이 후에 그를 대학원신문 기자로, 동국포스트의 지도교수로 활동하게 했다고 한다.

이렇게 동대신문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진 장 교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80년대 후반에 실렸던 문예운동 논쟁(論爭)에 대한 특집기사라고 한다. 이 기사는 그 당시 학생들이 쉽게 알 수 없었던 사회 현실에 대한 논쟁을 다루고 있는 기사였다. 때문에 학생들을 이 기사를 통해 학업과는 또 다른 공부를 할 수 있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동대신문의 그 기사를 통해 사회와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시기 교수는 30년간 동대신문을 읽어온 애독자로 최근 동대신문에 대해서도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장 교수는 “동대신문 문화면을 통해 사회와 학생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대학신문은 학생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 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계화에 발맞춰 동대신문이 지구촌 시대의 문화, 학술의 다양한 흐름과 세계의 목소리를 전해주길 희망(希望)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진심어린 충고로 그는 1500호를 축하해 주었다.장시기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동대신문이 학내 신문으로서 서야할 위치를 재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조언은 동대신문이 발전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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