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독자 인터뷰 - 조창원 동문(경제57졸)

‘우리대학의 역사를 대변해온 유일무이한 매체’

동대신문이 창간된 이래로 지령 1500호를 맞이했다. 이는 주간지로 발행되는 대학언론에서 매우 뜻 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은 교수, 직원, 학생, 동문 등 동대신문의 수많은 독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많은 독자 가운데 창간호(1950년 4월 15일자)부터 가장 최근에 발행된 1499호(2010년 11월 15일자)까지 모두 수집해 온 애독자가 있다. 바로 조창원 동문(경제57졸)이다. 조창원 동문은 “동대신문을 안보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조 동문과 동대신문의 긴 인연은 그가 우리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가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동대신문이 창간됐다.

조창원 동문은 동대신문을 보며 우리대학의 ‘희비쌍곡(喜悲雙曲)’을 느끼게 됐다. 그는 “동대신문을 통해 우리대학의 영광스러운 일, 부끄러운 일, 슬픈 일, 기쁜 일 등을 접할 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재학시절부터 동대신문에 애착을 느낀 그는 우리대학의 역사, 발전 기록이 담긴 동대신문을 수집(蒐集)하기 시작했다. 그

러한 그의 동대신문에 대한 애정은 졸업 후에도 계속됐다. 암울했던 당시 시대 상황을 학생기자 특유의 비판의식으로 기사에 녹여냈기 때문이었다. 조 동문은 4.19혁명 당시 동대신문의 보도내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해 부패된 권력에 대항하는 모습이 실렸던 기사를 잊을 수가 없다”며 “4.19혁명 당시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노희두 동문의 사진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07년 당시 로스쿨 인가 투쟁을 다뤘던 기사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또 우리대학이 일산 약대유치에 성공해 의생명과학캠퍼스가 신설된다는 보도를 통해서는 대학의 밝은 미래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동대신문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조창원 동문이기에 동대신문의 일부를 잃어버린 것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그는 “1965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할 때 궤짝에 넣어 놓은 신문들을 누군가가 전부 가져가 버렸다”며 아쉬워했다. 그 이후로 그는 동대신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보관에 신중을 기했다고 한다.

한편 조창원 동문은 요즘 신문을 보며  “과거에 비해 학생회, 본부에 대한 평가가 많아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소외받고 있는 기초학문에 대한 기사가 너무 적은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심도(深度)있는 토론을 할 수 있는 기사, 학교와 학생의 유대가 가까워질 수 있는 기사가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또 조창원 동문은 우리 신문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동대신문이 구성원들을 이을 수 있는 ‘소통의 가교(架橋)’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것을 숙지하여 건설적인 소통의 신문을 만들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자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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