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자체를 시로 살아가신 이 시대의 진정한 시인

순수문학의 치열한 시 정신을 통해 한국 현대시단의 독보적 영역을 구축한 시인 이형기. 긍정과 순응을 지향한 초기의 서정시에서부터 허무적 관념을 중심으로 쓰여 진 격정적인 후기 시까지, 그에게 있어 시는 세상의 어떠한 욕망도 넘어서는 인생 그 자체였다.

 

 

이형기 시인과 108호 강의실의 추억

기억은 1986년 봄으로 거슬러간다. 내게 그 봄이 특별했던 것은 동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님으로 새로이 초빙되어 오신 이형기 선생님 때문이었다. 해체론이 이 땅에 흘러 다니기도 전에, ‘시는 전복이다’ 외치셨던 그 음성을 기억한다.

그는 수업 중에 단 한 번도 출석을 부른 적이 없었고, 학생이 떠들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독특한 경상도식 악센트로 시 창작론을 강의하던 그는 늘 단단하고 적확한 표현을 사랑했다.

선생님의 옆 좌석에 앉아 동해안의 국도를 달리던 수학여행길. 멋진 베레모를 쓰시고 학생들과 함께 설악산으로 출정하시던 모습, 칠판에 낯선 아방가르드풍의 시를 써내려가시던 모습, 어린 학생들의 사화(詞話)집을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 수정해 읽어주시던 모습이 지금껏 생생하다.

문득 그의 회갑기념식이 열린 다향관에서 선생님께서 부르시던 노래가 귓전에 살아온다. “가로등도 졸고 있는......” 그의 기억은 나의 삶 속에 넓게 퍼져 있다.

이형기 시인은 당신의 삶 자체를 시로 사신 분이다. 약관 17세에 등단하시어, 평생토록 문학의 외길을 걸어오시며 세상의 어떤 욕망에도 흔들리지 않으셨다. 그는 동국문학의 자부심이자 한국현대시사의 자랑이다. “무수한 어제”로 남아있는 그의 빈자리를 시를 통해 되돌아본다.

한국 현대시사의 천재 소년 문사
 
이형기는 1950년 ‘문예’지에 최연소 등단기록을 세우며 시 뿐 아니라 비평과 소설, 수필 등 전 방위의 활동을 펼쳐왔다. 1960년대 ‘현대문학’에 ‘상식적 문학론’을 연재한 데 이어 1963년에는 이어령과의 문학논쟁에서 평론표절과 모방문학론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으며 순수·참여논쟁에서는 예술가의 개성적 자유를 옹호, 순수문학의 치열한 시 정신을 강조했는데, 이 같은 문학세계는 이후 줄곧 견지됐다.

그가 우리에게 독보적으로 보여준 것은, 가장 첨예하게 세계와 대결하면서도 언어적 긴장을 늦추지 않는 ‘상상력의 영구혁명’이다. 전체주의에 반역하는 단독자로서, 자유로운 인식의 모험을 치열하게 감행해온 그의 전복(顚覆)적인 언어실험은, 불온한 자유주의자이자 전위적 모더니스트로서의 초상을 독자에게 깊이 각인시켰다.

시대와 순수, 반항과 파괴의 시 정신

“시란 본질적으로 구축해놓은 가치를 허무화시키는 작업이며 시에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와의 화해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절망을 확인할 때만이 꿈은 꿈으로써 참답게 존재한다.” “허무의 세계에서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란 절망을 확인하는 일 뿐이다”라는 시인의 아포리즘처럼, 불교와 모더니즘 정신을 통해 끝없는 미적 혁신을 감행해온 그의 시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초기 시는 내밀한 서정성을 주조로 한 시들로, ‘적막강산’과 ‘돌베개의 시’가 이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시들은 자연에 개인의 감상을 투영하는 서정적 요소를 짙게 가지고 있지만, 서정적 자아와 자연과의 일치를 지향했던 기존의 청록파 류의 시와는 다른, 지적이고 날카롭고 정제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이후 이형기는 모더니스트로서 자의식과 시적 방법론적 필요를 자각하면서, ‘꿈꾸는 한발’에서부터 악마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일상적 인식을 전복하는 파괴와 부정의 언어를 실험하였다.

부조리한 현대적 삶에 대한 치열한 인식하에 상상력의 영구혁명이란 명제를 마련한 것도 이 시기에 해당된다. 파괴와 부정의 미학이 두드러진 중기 시 ‘꿈꾸는 旱魃’, ‘풍선심장’, ‘보물섬의 지도’와 같은 시집은, 세기말적 파멸의식, 문명비판과 생태의식이 엿보이는 ‘심야의 일기예보’, ‘죽지 않는 도시’ 등의 시세계의 기반이 된다.

그의 시는 전통 서정시의 유약한 화법을 극복하는 강인한 남성적 화법을 구사하면서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문명적 현상에 대항ㅇ하는 단독자로서의 자유의식을 올곧게 지향한다.

특히 그는 1970년대와 80년대의 군사독재 시대의 암울한 정황을, 선전적인 참여시의 어법이 아니라 파괴적 이미지 속에 용해시키고자 하였는데 이는 “순수·참여” 논쟁에서 이미 표면화된 그의 예술지상주의 적 자유의식의 자연스런 발로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인식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부조리한 사회와 문명적 폭력과 폐해에 대한 자각이 심화되면서 그로테스크한 언어실험은 문명 비판적 시각과 결합되어 그 강도와 깊이를 심화시킨다.

특히 90년대에 발표된 ‘심야의 일기예보’와 ‘죽지 않는 도시’에는 현대 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비극적 인식이 포스트모던한 수사로 형상화되어 있다. 

연기(緣起)와 공(空)의 세계

파괴와 위악으로 대표되는 중기의 시세계는 1998년에 발간된 ‘절벽’에서 다시 한 번 큰 변화를 보여준다. 오랜 투병기간 중에 쓰여 진 이 후기 시편들은 허위의 현대성에 대한 회의와 부정, 실존의 상처를 힘겹게 뚫고 나온 말들이 깊이 있는 존재론적 탐구와 허무의식으로 심화되고 있다.

불꽃같은 시혼을 불사르듯 시인이 병상에서 토해놓은 시편들은, 불교의 공의 정신과 소멸이라는 존재의 궁극성에 대한 심문을 강렬하게 던져준다. 여기서 소멸이라고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생의 막다른 경계를 표지하는 것이지만, 우주적 흐름 속에 자아를 던져 넣는, 새로운 삶으로의 제의적 관문의 의미를 가진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바다’의 이미지는, 생명의 가장 기원적인 이미지이면서, 존재의 밀폐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우주적 전망을 내포한다. 소멸이 아름다운 이유는, 인간의 궁극성에 대한 인식의 용기와 절박한 창조적 기투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이 소멸의 운명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것은 현대적 의식의 기본적인 생리일뿐만 아니라, 바로 그러한 영원불사에의 욕망 때문에 현대문명은 필연적으로 실존적 부정직을 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문명에 대한 강렬한 탄핵은 일찍이 그의 시를 관통해온 중요한 주제라는 점에서, 이 시집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이전 시들을 총괄하는 완성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히 시집 속에 수록된 아포리즘 ‘불꽃 속의 싸락눈’은 시력 50년간 갈무리해온 그의 시적 입장의 총결산이다. 그의 시론을 가장 간명하게 요약할 수 있는 핵심은 ‘우로보로스의 미학’과 ‘묵시록적 상상력’이라 할 수 있는데, 묵시록적 상상력이 지향하는 것이 안정적이고 억압적인 의미질서의 해체라면, 우로보로스의 미학이 추구해가는 것은, 소멸과 생성이 상호 전화(轉化)하는 창조의 싸이클이라고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삶은 끊임없는 소멸을 전제로 주어지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에 의해 나타나고 촉발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집 밑바탕에 깔려있는 연기(緣起)와 공(空)의 세계는, 끝임 없는 변형이요 절대의 부정이요 우주질서의 긍정의 표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절벽’은 삶과 죽음의 격절이 아니라, 시간의 언저리로서의 경계일 뿐이다.

그 생의 절정과도 같은 절벽에 우뚝 서서, 가장 깊은 심연의 노래를 부르는 오연한 완성자의 초상은, 이형기의 시가 도달한 존재론적 미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