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年代(년대)초반 모순적인 樣相(양상)

  지난 15일 韓國文學社(한국문학사)主催(주최)로 열린 ‘作家(작가)와의 對話(대화)’에서 밝힌 黃晳暎(황석영) 同門(동문)의 小說(소설) ‘客地(객지)’에 대한 創作動機(창작동기) 및 작품해설은 내 나름대로 이해해 온 ‘客地(객지)’의 세계를 보완하고 수정할 수 있었다.
  8년간의 방랑생활(勞動者(노동자), 僧侶生活(승려생활))의 체험과 월남전 參戰(참전)이 創作活動(창작활동)의 決定的(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黃晳暎(황석영) 同門(동문)의 언급은 그의 作品(작품)에서 나타나는 생생한 삶의 소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戰場(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한테서 삶의 一般的(일반적)인 面(면)을 보았다는 著者(저자)의 심리상태가 ‘客地(객지)’ ‘삼포 가는 길’ 최근에 發表(발표)된 ‘몰개월의 새’ 등에서 作品(작품) 전체에 깔려있는 분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체험-신탄진 제조창의 경험과 동진강 간척공사장의 現場(현장)에 있던 친구에게서 들은 간접경험 등이 ‘客地(객지)’의 소재로 되었다는데서 살아가는 이야기의 原音(원음)을, 진실한 얘기를 실감 있게 들을 수 있다. 著者(저자)의 모든 作品(작품)에 깔려있는 분위기는 다분히 애상적인 색조를 띠고 있다. 소설 ‘客地(객지)’에 나타나고 있는 작업장 인부들의 꾸밈없는 대화와 이런 대화를 가장 자연스럽게 文學(문학)으로 승화시킨 作家(작가)의 글 솜씨와, 글 솜씨에 앞선 韓國的(한국적)인 것에 시도가 대단하다.
  ‘밀물에 덮인 검은 개펄은 백사장과 파도를 가르는 가느다란 띠처럼 보였다... 황혼 무렵에 이런 풍경을 바라보느라면 그들은 마치 누가 자기에 입속으로 모래라도 한 줌 처넣어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우선 著者(저자)의 분위기 묘사가 백 마디의 설명보다 정확하고 자연스럽다. 인부들의 생활과 생활에서 느끼는 인부들만이 가진 심리가 전경묘사에서 심리묘사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著者(저자)도 對話(대화)에서 밝혔듯이 ‘客地(객지)’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에 이르는 韓國(한국)의 時代的(시대적) 상황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모순적인 樣相(양상)을 그렸다. 따라서 70년대 時代的(시대적) 상황의 한 斷面(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作品(작품)이 作家(작가)의 日常的(일상적)인 生活體驗(생활체험)의 所産(소산)이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作家(작가) 자신이 진실해야 한다. 이런 點(점)에서 저자의 폭넓은 경험과 순간 포착과 여기에 따른 지속적인 思考(사고)의 보존에서 著者(저자)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본다. 著者(저자)는 題目(제목) ‘客地(객지)’가 가지는 意味(의미)로 보편적인 의미로서의 ‘客地(객지)’와 소외된 意味(의미)로서의 ‘客地(객지)’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자기와 연관되는 곳이 없는 형태의 삶의 意味(의미) - 安住(안주)할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없다는 듯일 게다. 이날 對話(대화)에서 글쟁이라고 자신을 지칭하고 作家(작가)는 作品(작품)과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비교로 작품이 가리키는 쪽으로 생활해야 하므로 작품과 생활과의 ‘갭’을 메우려 노력해야 한다고 자신을 견제하듯 끊임없이 독자의 마음을 진실로 울리려는 著者(저자)의 노력이 ‘客地(객지)’에서 엿보인다.
  文學(문학)이 時代的(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변모를 보인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民衆(민중)에게 소리치며 길을 제시하는, 그리고 제시할 수 있는 작가는 없다. 著者(저자)가 民衆(민중)을 위해 대변하겠다는 왜곡된 보도가 있었는데 對話(대화)를 통해 ‘자신은 대변보다는 바라본다.’는 해명은 어느 의미로 보면 대변 이상의 뜻이 함축되었을 것이다. 소설 ‘客地(객지)’는 인부들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고 인부들의 소설이 아니라는 얘기를 시사해 주고 있다. 어디든지, 누구에게서든지 作品(작품)은 공감한다는 것으로 모든 讀者(독자)의 것임은 틀림없는 일이다. ‘客地(객지)’세계는 그 文學的(문학적) 명성과 함께 70年代(년대) 초반의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는 대표적 작품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塔(탑)’에서부터 시작한 체험소설은 이제 가장 韓國的(한국적)인 것의 시도로 계속되고 時空(시공)을 뛰어넘어 ‘張吉山(장길산)’에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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