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益燮(정익섭) 博士(박사) 著(저)

  ‘湖南(호남) 歌壇(가단) 硏究(연구)’는 丁益燮(정익섭) 博士(박사)가 全南大學校(전남대학교)에서 20년간이나 근속하면서 그곳 地方(지방) 文壇(문단)을 중심으로 흩어져 내려온 前代(전대) 文學(문학)의 유산을 발굴, 정리한 업적의 하나이다.
  그는 이미 湖南地方(호남지방)의 歌辭(가사) 硏究(연구)에 전념하여 여러 편의 논문을 학계에 발표하였거니와 그것들을 다시 정리하여 그 알맹이만을 가려 간추린 專著(전저)가 이 ‘湖南(호남) 歌壇(가단) 硏究(연구)’라 할 것이다.
  여기서 著者(저자)는 湖南(호남) 詩歌(시가)의 活動相(활동상)과 그 배경을 槪觀(개관)하고 本論(본론)에서 宋純(송순)을 중심으로 한 俛仰亭(면앙정) 歌壇(가단)과 鄭澈(정철)을 중심으로 한 星山(성산) 歌壇(가단)을 깊고도 폭넓게 다루어 그 전모를 밝혔다.
  丁(정)교수는 論者(논자) 展開(전개)를 위해서 모든 자료와 문헌을 섭렵함을 물론,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하여 샅샅이 뒤짐으로써 萬(만)의 하나라도 빠뜨림이 없도록 최선의 노련을 다했다고 본다.
  ‘湖南(호남) 歌壇(가단)의 考究(고구)는 바로 歌辭文學(가사문학)의 淵源(연원)을 밝히는 작업이며, 아울러 거기에서 歌統(가통)을 다잡아야 함은 상식이자 通則(통칙)이다. 더구나 俛仰亭(면앙정) 歌壇(가단)과 星山(성산) 歌壇(가단)은 우리 歌辭文學(가사문학)의 본밑이므로 이 湖南(호남) 歌壇(가단) 硏究(연구)는 진작 着眼(착안)부터가 남다른 바가 있다.’고 李丙燾(이병도) 박사가 序文(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湖南(호남) 歌壇(가단)의 연구가 없이는 朝鮮(조선)前期(전기) 歌辭(가사)의 展開(전개) 樣相(양상)을 서술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壬辰倭亂(임진왜란) 이전의 湖南(호남) 詩歌(시가)의 계통을 세우려면 俛仰亭(면앙정)과 松江(송강)을 도외시할 수 없으며, 朝鮮朝文學(조선조문학)의 脈絡(맥락)을 짚는데 있어서도 湖南(호남)文人(문인)에게 그 중심 겨냥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丁(정)博士(박사)는 湖南(호남) 歌壇(가단)의 형성 요인과 性格(성격)을 구명하기 위해 百濟(백제)時代(시대)의 歌謠(가요)부터 그 淵源(연원)을 소급하여 考察(고찰)하고, 내려오면서 高麗(고려)의 俗謠(속요), 別曲體歌(별곡체가), 朝鮮朝(조선조)의 時調(시조)‧歌辭(가사)‧판소리 등 각종 詩歌(시가)文學(문학)이 生成(생성)‧發展(발전)해온 사실을 通時的(통시적)으로 체계를 세워놓았다.
  그리고 松江歌辭(송강가사)에 대하여 讚揚(찬양) 一邊倒(일변도)로 기울고 있던 종래 諸家(제가)의 偏見(편견)을 도려내어 實相(실상)대로 再評價(재평가)한 것은 卓見(탁견)이다. 곧 俛仰亭歌(면앙정가)에 대한 星山別曲(성산별곡)과 關東別曲(관동별곡), 萬憤歌(만분가), 思美人曲(사미인곡), 續思美人曲(속사미인곡) 등에 나타난 상호 영향의 密度(밀도)를 엄격히 저울질 하여 그 先後(선후) 關係(관계)를 밝혀 놓음으로써 學界(학계)에 定說(정설)을 세워준 셈이다.
  아직껏 前代(전대) 地方(지방)文壇(문단)의 연구는 地域的(지역적)인 特殊性(특수성) 때문에 그 總體的(총체적)인 결실을 얻지 못한 오늘 날 湖南地方(호남지방)의 詩歌(시가) 硏究(연구)에 한해서만은 丁(정) 敎授(교수)의 꾸준한 熱意(열의)로 이런 所重(소중)한 업적을 보게 되니, 同學(동학) 後進(후진)들에게 燦然(찬연)한 지침으로 알고 감히 精讀(정독)을 권한다.
  <進明文社(진명문사)刊(간) 定價(정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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