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身(수신)‧克己(극기)로 對人(대인)관계 조절해야

  세상 事物(사물)이 모두 제대로의 모습을 가지지 않은 것이 없고 모든 현상이 또한 各異(각이)하다. 이는 모든 事物(사물)과 現象(현상)이 제각기 개성과 특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어떤 言語(언어)學者(학자)는 언어의 특질을 설명함에 있어서 言語(언어)의 세계는 그 分節性(분절성)으로 하여 非連續(비연속)의 世界(세계)요 自然(자연)의 세계는 分節性(분절성)이 없는 연속의 세계라 하였지만 그렇다고 자연의 세계가 금 그어 분단할 수 없는 連續體(연속체)는 아니다.
  人間(인간)은 비록 연속체라 하더라도 그 고도의 抽象力(추상력)으로 이를 任意(임의)로 分斷(분단)하여 命名(명명)할 수 있고 또 이렇게 분단한 것을 크게 類別(유별)하기도 한다.
  人間(인간)의 思考(사고)가 단숙하지 않고 社會現象(사회현상)이 복잡한 것도 이런데 一因(일인)이 있다고 본다.
  어쨌든 인간의 능력으로 識別(식별)되는 모든 사물과 현상은 인간의 인식을 바탕으로 한 屬性(속성)의 차이 때문에 우리에게 존재하고, 나아가 그 個性(개성)과 特質(특질)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이와 같이 세상만사가 차별되는바 비록 同類(동류)라 하더라도 개성이 저마다 또한 다르니 세상에 같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差異(차이)는 비슷한 것으로부터 상반되는 것까지 各樣各色(각양각색)이니 東洋(동양)에서는 상반되는 兩極(양극)을 ‘陰(음)’, ‘陽(양)’으로 일컫고, 모든 事物(사물)‧現象(현상)을 五行(오행)(金(금)‧木(목)‧水(수)‧火(화)‧土(토))으로 분류하되 이들의 관계를 調和(조화)의 相生(상생)과 不調和(부조화)의 相剋(상극)으로 동찰 하였었다. 相生(상생)은 ‘金生水(금생수)‧水生木(수생목)‧木生火(목생화)‧火生土(화생토)‧土生金(토생금)’이요, 상극은 ‘金克木(금극목)‧木剋土(목극토)‧土克水(토극수)‧水剋火(수극화)‧火克金(화극금)’이다.
  相生(상생)은 조화 공존이고, 相剋(상극)은 두 사물 또는 현상이 서로 대립되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해롭게 하거나 하여 共存(공존)이 不可能(불가능)하거나 어려운 관계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이 이런 관계에 있다고 하면 天地萬物(천지만물)의 靈長(영장)이라 自處(자처)하는 인간세계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인간이 아무리 萬物(만물)의 靈長(영장)이라 自處(자처)‧自矜(자긍)해도 무한대의 宇宙(우주)間(간)의 微物(미물)이요 오히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할 수 있는 이른바 이성적 동물인데서 人間世界(인간세계)의 諸(제)現象(현상)은 이런 관계가 더욱 복잡성을 더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한 이후 軋轢(알력)과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어 온 것을 否認(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론 先史時代(선사시대)는 기록이 없지만, 그 후의 史實(사실)이 이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人間社會(인간사회)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軋轢(알력)과 싸움이 이런 相剋(상극)現象(현상)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 인간의 이 相剋(상극)現象(현상)은 자기 자신만의 것에서부터 對人(대인)‧對社會(대사회)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 또는 개인 간이나 여러 계층의 大小(대소) 集團(집단)-團體(단체), 民族(민족), 國家(국가) 間(간)에서의 것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이들은 또 서로 얽히고설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 人生(인생)은 苦海(고해)다.
  모든 사회제도와 倫理(윤리), 法律(법률), 나아가 종교가 이 生活(생활)苦海(고해)를 좀 편안하고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한 노력의 所産(소산)이겠으나, 역시 人生(인생)은 苦海(고해)를 아직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相剋(상극)현상이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苦海(고해)임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人間(인간)은 理性的(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상극현상은 더욱 복잡하고 심각하다고 하였거니와, 또한 이성적 존재임으로 해서 이런 상극현상을 조절하여 軋轢(알력), 摩擦(마찰)을 덜려는 인간적 노력이 경주되어 온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의 이런 힘겨운 노력은 상극현상이 더욱 복잡화하고 심화해 갈수록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陰陽(음양)과 같이 相反(상반)‧對立的(대립적) 事象(사상)은 끝까지 상극으로만 치닫는 것이 아니며, 이들은 排合(배합)만 잘되면 서로 잘 어울려 調和的(조화적) 結合(결합)을 이루기도 한다. 이는 참으로 奧妙(오묘)한 현상이며, 또한 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내 마음의 상극을 해소하려는 努力(노력)은 바로 修身(수신)‧克己(극기)의 생활이라 하겠으며, 對人關係(대인관계)에서도 이런 修行(수행)이 바탕이 됨으로써, 인간관계가 원만하게 調節(조절)되고 사회적 협동이 强化(강화)‧廣大(광대) 될 수 있다.
  和解(화해)는 人間社會(인간사회)의 상극현상- 利害得失(이해득실), 主義(주의), 主張(주장)의 상반으로 일어나는 軋轢(알력)‧相爭(상쟁)에서 그 상반점을 조절하여, 서로 싸움을 그치고 푸는 것이다. 이에는 道義(도의)가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口蜜腹劍(구밀복검)으로써는 和解(화해)는 진정한 和解(화해)가 아니며, 표면상 화해가 성립되었다 하더라도 安定(안정)‧持續性(지속성)이 없고, 상대방이 불리하거나 弱勢(약세)에 놓일 때에는 舜時(순시)에 이는 破棄(파기)될 것이다.
  和解(화해)는 사회생활의 원활과 안정, 나아기 幸福(행복)과 平和(평화)의 潤滑油(윤활유)의 구실을 한다.
  요즘엔 국제적으로도 戰後(전후)의 冷戰時代(냉전시대)를 거쳐 和解(화해)의 물결이 일고 있는 듯하거니와 國家間(국가간)‧國際間(국제간)의 화해도 개인 간의 그것과 다를 것은 없는 것이다.
  和解(화해)는 하되 道義的(도의적) 밑받침과 힘의 균형이 誤解(오해)의 방패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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