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선가 ‘現代(현대)는 讀書(독서)의 世代(세대)’라는 말을 본 기억이 난다. 이 말은 ‘現代(현대)는 필요한 인간의 世代(세대)’라는 말과 같다. 달리 표현해 본다면 ‘현대의 필요한 인간은 곧 독서하는 인간’이라는 말이 되겠다. 과연 인간 수양을 위해서는, 아니 인간의 結實(결실)을 위해서는 그만큼 독서라는 것이 필요불가결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인즉 우리들의 삶을 보다 값지고 알차게 해주는 많은 경험 중에는 직접 우리들의 體驗(체험)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보다도 간접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는 독서를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書中自有千鍾粟(서중자유천종속)이요 書中自有黃金屋(서중자유황금옥)이라고. 다시 말해서 글 가운데 스스로 황금의 집이 있다고 생각한 옛날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아무리 冷酷(냉혹)하고 기계화된 현대라 할지라도 역시 讀書(독서)의 필요성은 변함이 없을 뿐 아니라 복잡화하는 현대일수록 독서의 필요성은 더욱 培加(배가)되어가는 것이며 그러기에 더욱 ‘現代(현대)의 필요한 인간은 독서하는 人間(인간)’이라는 말까지 대두되었으리라 믿어진다.
  우리의 人格(인격)과 敎養(교양)을, 우리의 학식과 지혜를 독서 아닌 어디에서 우리는 求(구)할 것인가? 世界(세계)에서 가장 紳士(신사)의 나라라고 하는 英國(영국)에서 英國(영국)의 신사가 되기 위한 구비조건의 한가지로서 세계적인 문학 서적을 백 권 이상 讀破(독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말은 곧 그가 어떤 분야에 從事(종사)하는 사람이건 간에 그들 나름의 신사가 되려면 人間(인간) 본연의 자세와 새로운 인간의 진실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이른바 ‘인간학’인 문학적 素養(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줄 안다. 얼마나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의 진실을 희구하는 의미인가?
  현실적인 곤경에 처해있는 우리일수록 人間(인간)의 진실을 추구해야하며 거기에서 오는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도 우리의 지식과 교양과 人格(인격)을 길러주는 讀書(독서)를 게을리 할 수는 없는 것이다. 現代(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스스로 現代(현대)의 필요한 人間(인간)이 되고 인간적인 진실을 희구하는 의욕과 신념만 충만하다면 스스로 冊(책)의 벗이 되고 책 속의 호흡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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