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風流(풍류)를 아는 사람처럼 ‘단풍 따라 바람 따라’와 같은 여유 있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수학여행차 학생들을 인솔하고, 서울을 출발, 전라도 정읍 內藏寺(내장사)를 거쳐 茂朱九千洞(무주구천동)으로 천릿길을 다녀왔다. 알다시피 이곳은 國立公園(국립공원)지역으로 책정된 관광지로서 여름철에는 피서객들, 가을이면 단풍을 찾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名勝地(명승지)로 되어있다.
  예부터 山水(산수)가 좋으면 人心(인심)도 좋다고 일컬어왔다.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 玉(옥)같이 아름다운 이 지역의 自然(자연)속에 이따금 사람이 저지르는 티눈이 박혀 있었으니 웬일일까 좀 어떻게 안 될까.


  사탕 줘요

  우리 一行(일행)은 내장사에서 白羊寺(백양사)를 향해, 山(산)넘고 벽촌을 거쳐 8km의 소리길을 경쾌한 마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것은 맑은 가을날씨도 좋았지만, 농민들이 일손 바쁘게 秋收(추수)하는 풍경들이 우리에게도 풍족함을 느끼게 하였고, 또 이러한 벽촌까지도 새마을 사업의 흔적이 이따금 보여져서 우리들은 어딘지 모르게 마냥 기쁘기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一行(일행)이 어느 村家(촌가)를 지날 무렵, 뒤에서 ‘사탕 줘요’하는 어린이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돌아보니, 5, 6명의 어린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젖먹이를 업은 한 少女(소녀)가 가엾은 손을 내밀고서 싱긋 웃고 서있었다. 순간 나는 그 少女(소녀)에게 친밀감을 느끼면서도 한편 가슴에 뭉클한 것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나는 있는 대로의 사탕 몇 톨을 쥐어주면서 ‘아이 착하구나, 예쁜데!’라고 말을 건네주면서도 어쩐지 동정심이 우러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 소녀는 너무 기쁜 모양인지 나에게는 인사도 없이 몇 톨의 사탕을 쥐고는 홱 돌아서서 자기 집으로 뛰어 달아났다. 나머지 어린이들도 추격이나 하는 듯이 소녀의 뒤를 따른다. 사탕이 몇 톨 되지 않아서 오히려 미안했다. 그 뒤 그들 사이에 어떤 정경이 벌어졌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천진난만하고 순박한 벽촌의 그 소녀의 행동을 나는 결코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러나 여자들을 기르는 부모로서, 어린이들의 긴 장래를 위해서라도 그래서 될 것인가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와 같은 관광객들로 순박한 농촌의 어린이들 앞에서는 옷을 요란스럽게 입고 다니거나 보라는 듯이 간식을 쩝쩝거리고 다니는 것들을 삼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부탁의 말씀

  內藏寺(내장사)에서 남쪽으로 산언덕을 넘고 보니 白羊寺(백양사)라고 한다. 우리는 피곤한 몸이었지만, 그래도 절이라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경내에 들어섰다. 그 순간 나는 놀라고 말았다. 커다란 흰 광고판에 ‘警告文(경고문)’이라는 큰 글자가 눈에 띠었는데, 그것도 그 아래에 장성군수, 장성경찰서장이라는 어마어마한 두 官職名(관직명)이 쓰여져 있었기에 말이다. 무슨 큰 일인가하고 자세히 읽어보았더니, 그것은 나무를 꺾지 말라, 요란스러운 놀이들을 하지 말라는 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식적인 내용이었다.
  材木(재목)이나 火木(화목)을 탐내는 도벌자들을 상대로 썼다면 몰라도, 적어도 佛心(불심)에 찾아드는 聖(성)스러운 寺刹(사찰)의 境內(경내)에 ‘警告文(경고문)’이란 웬 말일까, 너무 지나치지 않을까.
  그곳에 그것이 꼭 필요하다면 寺刹(사찰)의 主持(주지)의 명의로 쓰여지던가, 또는 같은 말이라도 ‘부탁의 말씀’ 혹은 ‘알리는 말씀’ 정도가, 군수 및 서장과 관광객들 사이에 친밀감을 주는 말이 되지 않을까.


  巡警(순경)과 長髮(장발)學生(학생)

  全州(전주)서 버스로 茂朱(무주)땅에 들어설 무렵, 검문소에 차는 멈추어졌다. 순경이 올라와서 한차례 臨檢(임검)을 한 뒤, 우리 일행 중의 R학생을 보고 下車(하차)하라는 것이다. 내용인 즉 이런 시국에 학생이 장발해서야 되는가 하는 호통이었다. 공기가 좀 험악하여진 이 순간 차내의 모든 손님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솔자인 필자가 보기에는 R군은 좀 장발에는 속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에서 제재를 당할 정도는 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순경의 직권이라는 책임도 있기에 ‘이 학생은 내가 인솔하는 학생입니다. 그 책임도 내게 있으니까, 그 일은 내게 맡겨요’하고 공손히 말했다. 순경은 나의 신분을 확인한 다음, 그 태도 마땅치 않은 말투로 ‘알았어요’하고 下車(하차)하고 말았다.
  서울이나 지방이나 모두 다 같은 법률 밑에서 생활하는 우리들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예 머리털의 길이가 몇 cm이상은 장발이라는 규정을 지어 널리 알렸으면 편할 것이라고 믿는다.


  ‘죽은 나무’라는 名目(명목)

  九千洞(구천동)은 과연 굽이굽이 장관이요 名山(명산)임에 틀림없다. 奇岩(기암)을 맴돌아가는 풍부한 물과 五色(오색)이 찬란한 단풍잎은 하늘을 가리웠고, 인간은 그 壯觀(장관)에 압도되곤 한다. 이 모두가 다채로운 樹種(수종)이 自然(자연)속에서 오랫동안 파괴되지 않고 자라난 혜택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필자가 묵고 있는 여관에서 장작을 사들이는 것을 보았다. 알아보니 평당 1만원, 그것도 손님이 많으면 3일, 적으면 6일 정도에 한 평을 땐다고 한다. ‘썩은 나무니까요’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무엇을 꼬치꼬치 캐묻느냐는 식의 웃음을 짓는다. 이 九千洞(구천동)이라는 國立公園(국립공원)의 입구 부근에는 여관, 상점, 다방 등 약 50채의 상포가 들어서 있다고 한다.
  추리해 보면 때는 나무의 양은 엄청난 수가된다. 또 그 썩은 나무라는 것은 사실은 썩어서 벤 것이 아니고, 자세히 보았더니 7~8년생의 한참 자라는 나무들이었다. 한편 그 여관에서는 九孔炭(구공탄) 한 개에 60원에 사온다면서 그것은 모두 구공탄 난로에만 쓰고, 아궁이는 모두 장작을 때도록 되어있었다.
  火木(화목)벌채기간을 가지는 농어촌이라면 몰라도, 콜라 한 병에 곱빼기로 2백80원을 받고 있는, 이 고장 같은 상가에서만은 우선 아궁이부터 구공탄으로 고쳐야 할 것이 아닐까. 이 마을에는 營林署(영림서) 주재원과 국립공원 관리 및 순경도 주재하고 있기에 말이다.
  썩은 나무를 수거해서 떨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자연 보존하는 것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에 우리들이 바라는 풍치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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