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語(언어)感覺(감각)에 知的(지적) 처리 미숙

  통나무, 대리석 혹은 진흙 같은 것이 彫塑(조소)의 표현 媒材(매재)이듯이 시의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언어이다.
  그러나 예술에서 이 媒材(매재)라는 것은 반드시 어떤 사상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흔히 작품내용이라 일컬어지는 사상 감정의 존재 양식을 제한하고 또 지배하기도 한다는 사실에 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의 잘되고 못되고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 언어를 선택하고 또 조직하는 솜씨에 돌아간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이다.
  이번에 내게 넘어온 13명의 응모작품 가운데 끝까지 나를 망설이게 한 다섯 사람을 놓고 내가 끝내 그 主題(주제)나 題材(제재) 혹은 詩想(시상)의 높고 깊음에 얽매이지 않고 시를 공부하는 이가 무엇보다 먼저 익혀야 될 이 언어조직의 솜씨로써 가려야겠다고 마음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중 李龍守(이용수), 朴壽源(박수원), 金容彪(김용표)는 모두 想(상)을 깊임에 그 修練度(수련도)가 짐작이 안가는 바는 아니었으나 거기 언어를 介在(개재)시키는 일에 치밀하지 못하였다. 한편 吉眞鉉(길진현) 金容沃(김용옥)은 言語(언어)감각에 知的(지적)인 처리가 내다보이면서 肉化(육화)가 덜한 느낌이다.
  그러나 朴壽源(박수원)의 나이브한 詩想(시상)이며 金容沃(김용옥)의 꼼꼼한 言語(언어)刺繡(자수)는 逸品(일품)이고 吉眞鉉(길진현)의 <소리의 門(문)>은 여느 평균작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있었으며 또 金容彪(김용표)의 長篇(장편)敍事詩(서사시)에의 야심은 크게 살만한 것이었다.
  굳이 精進(정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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