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學生(대학생)과 學問(학문)의 姿勢(자세)

  中世紀(중세기)에 세워진 대학(University)의 기원은, 진리의 愛慕者(애모자)요 正義(정의)의 使徒(사도)였던 소크라테스가 處刑(처형)된 후, 그의 門下(문하)였던 플라톤이 紀元前(기원전) 387년에, 아데나의 교외에 있던 아카데미 코스(Academicos) 숲속에 創設(창설)한 아카데미(Academy)에 소급된다.
  플라톤이 아카데미를 創設(창설)한 것은, 스승은 비록 處刑(처형)되었으나, 그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確信(확신)하고, 그가 스스로 동경하던 이데아(Idea)의 實在(실재)를 論證(논증)‧傳承(전승)하려는데 있었다. 따라서 그가 創設(창설)한 아카데미는 과연 진리의 殿堂(전당)이었던 것이다.
  眞理(진리)의 탐구는 오늘날의 대학에 있어서도 그에게 負荷(부하)된 핵심적 임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에 있어서의 아카데믹한 學風(학풍)이 중요시되고 대학을 흔히 진리의 전당이라 일컫는다.
  이와 같이 대학의 基本的(기본적) 理念(이념)이 진리탐구에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또한 변함이 없으나, 大學(대학)의 任務(임무)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대학이 사회와 완전히 隔離(격리)된 존재가 아니요, 그 社會(사회) 속의 一員(일원)이며, 그럼으로써 또한 대학의 存在(존재)意義(의의)가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즉 대학의 임무는 그가 서 있는 社會(사회) 現象(현상)이나, 國家(국가)‧民族(민족)의 요구와의 力學的(역학적) 亟數(극수)關係(관계)를 度外視(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다.
  大學(대학)은 國家(국가)의 최고학부로서, 여기서 修學(수학)하는 학생은 소정의 과정과 시험을 거쳐 선발된 엘리트로서, 장차 국가 사회의 지도자로서 창조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인격의 도야가 중요시 되지 않을 수 없으며, 現代(현대) 産業社會(산업사회)에 있어서는 大學(대학)이 다만 심오한 전문 학술의 연구‧교수뿐만 아니라, 그 전문 지식과 연구의 성과를 산업사회에 제공함으로써 산업 발전에 공헌하는 産學協同(산학협동)體制(체제)가 강조되는 점에서, 전문적 특수 기능의 연마 또한 대학의 중요한 임무로 대두되었다.
  요컨대, 대학의 주요한 기능은 연구‧교육‧봉사 세 가지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비록 대학이 近代國家(근대국가) 이후 국가를 위한 봉사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할지라도 대학의 기본적 屬性(속성)이 진리의 탐구임을 망각하고 지식의 效用性(효용성)에만 치중하게 되는 弊端(폐단)이 없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만일 대학에서 그 機能(기능)의 主客顚倒(주객전도) 現象(현상)이 深化(심화)된다면, 대학은 한낱 職業(직업)‧技術學校(기술학교)에 불과하게 되어 대학의 存立(존립) 價値(가치)는 상실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언급해 두어야 할 것은 대학에 있어서의 自由(자유)이상이다. 大學(대학)은 그 첫째 任務(임무)가 전문 학술의 연구, 즉 진리 탐구와 교수요, 따라서 이를 遂行(수행)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自由(자유)가 保障(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바로 大學(대학)의 自由(자유) 理想(이상)이다. 연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 참된 진리 탐구는 있을 수 없거니와, 眞理(진리)의 수호는 물론 학문 本然(본연)의 발전도 기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大學(대학)의 自由(자유) 분위기는 대학생활 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으며, 大學人(대학인)은 國家(국가)社會(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스스로의 생활을 규제하고 책임을 다함으로써, 정당한 자유를 누리지 않으면 안 된다.
  大學生活(대학생활)의 설계는 이와 같은 대학의 기능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學生(학생) 스스로의 적성 흥미와 한 가정에서의 자기위치, 그리고 나아가서 社會(사회)와 國家(국가)와 世界的(세계적) 視野(시야)에서의 자기 進路(진로)의 확립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생활 설계는 모래위의 樓閣(누각)임을 면치 못할 것이며, 試行錯誤(시행착오)의 되풀이를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단, 志望(지망)한 學科(학과)에 입학한 학생은 이제 左顧右眄(좌고우면)하지 말고, 自信(자신)과 矜持(긍지)를 가지고 所定(소정)의 敎科課程(교과과정)에 따라 열심히 학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先人(선인)들이 이룩한 학문을 옳게 繼承(계승) 전달하는 동시에, 학문의 새로운 境地(경지)를 발굴, 이를 체계화 하는 方法(방법)을 터득하고 그러한 능력을 기르는데 專念(전념)해야 한다. 한편 理論(이론)과 實際(실제)를 兼備(겸비)한 전문적 특수 기능을 연마함으로서 職業(직업)線上(선상)에서의 지도적 역군으로서의 資質(자질)을 함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학년에서부터 졸업할 때까지 지속적인 刻苦(각고)의 노력이 이에 경주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入學試驗(입학시험) 준비에 시달린 新入生(신입생)에게는, 이 試驗(시험)地獄(지옥)에서의 해방감과 이때까지의 학교에서와는 다른 자유 분위기 속에서, 자칫 緊張(긴장)의 解弛(해이)와 더불어 나태해지기 쉽다. 만약에 이런 現象(현상)에서 스스로를 克服(극복)하지 못하고, 그 함정에 빠져든다면 참으로 후회막급일 것이다. 우리 俗談(속담)에 ‘시작이 반’이라 하거니와, 교양학부 1년은 大學生活(대학생활) 設計(설계)의 基礎工事(기초공사)에 해당된다. 건축에 있어서의 기초공사가 不實(부실)할 때, 全體(전체)建物(건물)을 安全(안전)하게 제대로 지탱하기 어려운 것처럼, 교양 교육의 不實(부실)은 전체 대학교육의 不安定(불안정)과 失敗(실패)를 招來(초래)하기 쉽다.
  大學(대학)에 있어서 敎養(교양)科程(과정)은 전공 학습의 기초과정이며, 分業化(분업화) 機械化(기계화) 時代(시대)의 상실된 인간성 회복을 위한 보편적 학문적 교양을 위한 과정이다.
  대학생은 장차 국가 민족의 유능한 지도자로서 풍부한 人間性(인간성)과 폭 넓은 교양의 소유자인 人格者(인격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교양의 충실한 배양은 1년의 교양과정뿐만 아니라, 계속적인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J.S.Mill은 ‘경제학만 아는 사람은 경제학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전공학문도 그 補助(보조)科學(과학)을 널리, 그리고 깊이 이해했을 때, 그 전공은 깊이 있는 전공이 되며, 이는 나아가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함이 더욱 바람직 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특히 우리나라 大學(대학)敎育(교육)의 現實(현실)을 감안할 때, 大學生(대학생)은 敎授(교수)의 限定(한정)된 講義(강의)에만 의존하는 消極的(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스스로 부족한 것을 찾아 하는 적극적 연구의 자세가 필요하다.
  젊음과 知性(지성)과 浪漫(낭만)이 大學生(대학생)의 表象(표상)처럼 일컬어지고 있고, 일부 학생층에서는 大學(대학)의 浪漫(낭만)이 그릇 認識(인식)되어 知性(지성)의 調和(조화)를 잃은 脫線的(탈선적), 頹廢的(퇴폐적) 傾向(경향)으로 흐르는 일이 있으나, 大學生(대학생)의 낭만은 未知(미지)의 世界(세계)를 開拓(개척)하는 젊은 覇氣(패기)와 野望(야망)의 멋진 饗宴(향연)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健全(건전)한 서클 活動(활동)의 적극적 참여가 바람직하며, 이것이 혹 文字(문자) 그댈 로맨틱한 경우에도, 이는 어디까지나 레크리에이션이나 餘暇(여가)利用(이용)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大學生活(대학생활)의 設計(설계)는 위와 같은 姿勢(자세)와 認識(인식)을 바탕으로 樹立(수립)돼야 하며, 꾸준한 努力(노력)과 誠實(성실)한 實踐(실천)이 이에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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