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 박정권 동문과 삼성 라이온즈 박한이 동문

포스트시즌의 열기(熱氣)로 가득 찼던 지난 10월! 그 정점인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리던 10월 15일,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대결을 앞 둔 인천 문학야구장의 전광판에는 자랑스러운 동국의 두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SK의 중심타자 박정권(체교00)과 삼성의 톱타자 박한이(경영97)가 그 주인공들.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MVP를 올랐던 박한이. 삼성을 기다리고 있었던 SK의 박정권. 4차전의 명승부 끝에 SK가 한국야구의 왕좌에 오르고 한국 시리즈의 MVP는 박정권의 품으로 들어갔다.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의 MVP에 나란히 오른 동국인들. 올해 가을 야구의 진정한 MVP는 ‘동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국이 낳은 ‘무쇠로 만든 해결사’

박정권은 고등학생 시절 무명이었지만 우연하게도 당시 우리대학 야구부 한대화 감독(체교79, 현 한화 이글스 감독)의 눈에 띄었다. 그는 “때마침 팀에서 필요했던 포지션과 내 포지션이 맞아 운이 좋았다”며 “한대화감독님이 내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던 것 같다”며 한대화 감독과의 인연을 떠올렸다.

그가 새내기였을 시절, 4학년 선배로 박한이가 있었다. 박정권은 “다른 학교와의 경기 시 그 존재감만으로도 큰 힘이 됐던 선배”라며 그 당시 박한이를 떠올렸다. 선배 박한이 또한 후배 박정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프로에 와서 만나니 후배라고 눈길이 가더라”며 후배 사랑을 전했다.

박정권은 “내가 대학에 다녔을 시기에 팀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시절 기억에 남는 경기로 그가 3학년 때 투수로나가 3점 역전 홈런을 맞아 패했던 고려대와의 경기를 꼽았다.

대학 졸업 후 프로에 입단해서는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찌감치 군 입대를 결정(決定)했다. 군 야구팀인 상무에서 2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은 전역 후 팀에 복귀했을 때 그 진가를 드러냈다.

때는 2008년, 시즌 초 부진하기만 했던 성적이 여름이 되자 살아났다. 한 마디로 불방망이였다. 6월 한 달의 타율이 3할8푼을 넘었다. 프로의 무대를 밟은 지 5년. 팬들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승세(上昇勢)는 오래가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1루 수비를 보다 주자와 부딪힌 박정권은 왼쪽 정강이 골절상을 입고 시즌 아웃됐다.

2007년, 그는 백업멤버로 한국 시리즈 우승을 맞이했다. 그리고 2008년 당당한 주전의 이름으로 우승을 이루자 다짐했지만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2008년 팀의 우승을 TV 중계로 지켜봤다. 박정권은 팀의 우승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 눈물이 기쁨의 눈물만일 수는 없었다.

2009년, 박정권은 붙박이 주전이 됐다. 타순은 주로 4,5번.팀의 당당한 중심타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활약은 포스트 시즌에서 빛을 발휘했다.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선 MVP자리에 올랐고, 이어진 한국시리즈에서 또한 3할9푼의 타율을 남겼다.

드디어 2010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그는 맹타를 휘둘렀다. 4경기 13타수 5안타 1홈런 6타점이라는어마어마한 기록. 그리고 그의 활약으로 이뤄낸 팀의 우승. 야구를 시작한 이래 그토록 뜨거웠던 순간은 없었으리라. 한국시리즈 MVP의 자리에 선 그는 세상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야구 인생의 첫 단추, 동국대학교 야구부

박한이는 여느 운동선수들과는 달리 학창 시절 다양한 추억을 쌓았다. 그는 학교 측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우리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운동선수로서는 드물게 경영학과 출신인 그는 대학시절 고된 훈련 틈틈이 같은 과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했다고 한다.

박한이는 “내가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선수라는 것을 알아본 몇몇 선배들이 먼저 말을 걸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축제 기간, 학과에서 여는 일일주점에 서빙 일을 했던 것과 경영학과 동문회에 참석해 부른 노래 때문에 망신을 당했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며 웃었다.

또한 박한이는 경기가 있는 날이면 재학생들이 당시 경기가 열렸던 동대문 야구장에 찾아와 관중석을 가득 매웠던 것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대학 야구리그에서 우승이나 준우승을 할 때면 동대문 야구장에서 깃발을 들고 학교까지 다함께 행진을 했던 것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밝혔다. 박한이는 “그 때, 우리학교 학생들만큼 열정적으로 응원전을 펼쳤던 학교가 없었다”며 재학생들의 뜨거운 응원 덕분에 더욱 활기 찬 야구를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후배들이여, 자신을 믿고 야구를 사랑하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야구를 하고 싶다”는 박정권의 스윙은 쉰 적이 없다. 그는 “지금은 눈앞에 있는 아시아시리즈만을 생각한다”고 오는 13일부터 열릴 아시아시리즈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그의 스윙은 11월의 찬 공기도 서슴지 않고 가른다. 절실하게 노력하는 자에게 영광의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 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박정권은 “절실한 마음은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후배들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며 앞으로 한국 야구를 책임질 후배들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다.

박한이 또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야구의 진정한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면 반드시 프로 무대를 밟아봐야 한다”며 후배들에게 아무리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그 순간 자체를 즐기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야구의 바닥부터 정상을 향해 천천히 올라설 때 까지 그를 잡아준 것은 오직 ‘절실함’ 하나였다는 박정권. 프로야구의 진정한 에너지는 야구를 사랑해주는 팬들의 뜨거운 마음이라는 박한이. 이토록 간절한 오늘을 사는 박정권과 팬과 함께 즐기는 야구를 보여주는 박한이의 MVP보다 빛날 다음 순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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