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精神(시정신) 연소 위해 自身(자신)을 혹사해야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이 실제로 몸을 담고 살아가는 이 모든 자연 현상계 내에서 존재하나 그 자체로서는 무감각하고 별다른 의미가 없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現象(현상)의 媒介(매개)를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이러한 갖가지 형태의 사물들은 우리의 감각과 의식의 배려를 거쳐 對象的(대상적) 認識(인식)을 요구하게 되는데, 인간의 의식은 먼저 이렇게 혼돈된 事物(사물)과 事物(사물)을 일단 분리시키고 그 낱낱의 사물들에 일차적인 의의를 부여하는 동시에 이를 다시 전체적인 의미 연관 속에서 이해하고 창조적으로 再構成(재구성)하는 作業(작업)을 진행시키게 된다. 藝術作品(예술작품)에 있어서 우리가 요구하는 사물에 대한 意識(의식)의 明確性(명확성)이라는 것은 흔히 말해지는 현실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과학적인 확실성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事物(사물)에 대한 최초의 分離作業(분리작업) 속에서 행해지는(문학에 있어서는 그것이 言語(언어)에 의해서 굴착되고 表出(표출)되어지는) 일종의 美的(미적) 질서나 形式(형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가 사물에 대한 의식의 명확성이라는 개념을 상정해 높을 때 그것이 과연 어느 만큼의 진실성을 가진 것인가 하는 회의를 품게 되는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藝術(예술)에 있어서 그 表現媒體(표현매체)의 정확성이나 일반성 보편타당성의 문제가 논의되는 것인데 이것은 예술의 形式(형식) 上(상) 불가피한 점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論外(논외)로 한다 하더라도 문제의 초점을 이러한 일반적 規制(규제)의 범위를 넘어서 共時(공시), 通時的(통시적)인 時代相(시대상)의 변화에 따른 문화의 程度(정도)나 개인차의 영역에까지 확산시키고 여기에 다시 인간의 의식 자체 즉 認識(인식)의 主體(주체)로서의 人間(인간)이 이해의 논리적 正當性(정당성)을 가진 것이냐 하는 문제까지를 고려하게 된다면 문제의 심각도는 더욱 깊어져서 單一次元(단일차원)으로 만은 결코 이야기할 수 없는 복합적인 양상을 노출시키게 된다.
  사실상 우리가 어느 특정의 對象(대상)이나 事物(사물)을 이해한다고 할 때 어떤 의미에서는 윌 자신이 이미 意識(의식)의 掘折(굴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종의 편견이나 오류를 다소나마 전제하고 있는 것임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좀 더 다른 각도에서 그것들의 전제가 결코 그릇되거나 부당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예술작품이 形象化(형상화)되는 인식과정에 있어서의 최초의 출발점이 바로 이 점에 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면 이러한 실례는 용인되어도 무방하다. 이미 認識(인식)의 主體(주체)가 인간으로 규정된 이상 사물을 이해하는 데에는 인간의 주관적 정신이 개입되어 완전히 객관적인 보편타당성이라는 것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의 質(질)이 되는 意識(의식)과 詩(시)에 있어서의 그 직접적인 표현 매체가 되는 言語(언어)와는 서로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일까?
  우선 그것은 대상을 통한 여러 가지 의식의 측면과 그 詩的(시적) 변용을 통한 가치의 설정과 그것의 재확인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실로 우리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여러 가지의 사물들과 접촉을 가지게 되며 이 사물들과의 접촉 경험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사물들과의 충돌은 인간 자신의 內的(내적) 의미와 결합되면서 자연적으로 외부 세계와의 사상적 연결을 가지게 된다. 이 경우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事物(사물)이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意識(의식)의 프리즘>이라고도 명명할 수 있는 일종의 心的(심적) 메커니즘을 통하여 感知(감지)될 때에는 인류 전체, 혹은 각 개인이 소유한 주관적 정신 작용에 영향을 입어 그것이 다소 屈折(굴절), 變形(변형)되면서 실제의 현실면과는 약간 거리를 가지게 되고, 부분적으로는 歪曲(왜곡)된 형태임을 면치 못한다. 이러한 형태의 변화, 또는 의식의 表象作用(표상작용)에서 이루어지는 사물과 그 경험내용(의미)의 굴절은 결과적으로 언어라는 하나의 질적 양태로서 귀착되고 최종의 결말을 보게 되며 이때의 예술表現媒體(표현매체) 역시 그 자체의 독립성을 인정은 한다 하더라도 하나의 屈折(굴절)된 의식의 반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의식의 굴절에서 사물의 굴절, 다시 언어의 굴절과 그것의 정착이라는 안팎의 대상에 대한 인식 과정의 유추를 통하여 비로소 그 존재가치의 당위성을 획득하게 되는 사물은 의식과 언어와의 연계성을 모색하는데 있어 가장 실질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여 준다.
  다시 말하면 感覺(감각)을 통하여 하나의 대상이 인식되고 언어로써 形象化(형상화)되는 내적인 심리과정에서 성립되는 일련의 발전적 構造(구조)가 예술 작품의 形象化(형상화) 작업에 있어 내외의 대상에 대한 인간적인 체험과 그 체험의 주관적 인식, 그리고 그것의 창조적 수용을 통한 경험의 객체화라는 예술의 창조적 職能(직능)의 수행과도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내적 체험과 대상과를 이어주는 表象作用(표상작용)의 매체로서의 言語(언어)를 통하여 의식의 源流(원류)를 발굴해내고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려는 의식은 내면 세계가 감각적으로 物象化(물상화)되는 素材(소재)로서의 사물과 그 내용과의 産物(산물)이며, 集積(집적)인 동시에 그 交感(교감)의 흔적이 되기도 하는 것인데 이러한 사물과 의식의 독특한 性格(성격)은 <意識(의식)의 프리즘> 속에 사물과 언어를 投身(투신)시키고 그것의 진행을 도우며 자기 언어의 확립이라는 문제와 함께 주관적 입장에서 본 경험의 주체적 수용과 그 경험 내용의 自己化(자기화), 自己化(자기화)된 의식의 객관적 表象(표상)이라는 일련의 작업에서 유도되는 특징 중의 하나인 것이다.
  어쨌든 간에 사물과 존재의 本質(본질)을 추구하는 과정에 관계되는 이러한 모든 복잡한 內容物(내용물)들은 종국적으로 예술 작품의 구체적 형상화라는 보다 실질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되며, 거기에서 가장 커다란 意義(의의)와 正當性(정당성) 여부를 평가받을 수 있게 된다. 흔히 말하듯이 詩(시)란 美意識(미의식)을 바탕으로 한 언어의 상징적 구조인 것이며, 이 말은 앞선 의미대로 한다면 언어라는 말을 의식이나 사물이란 용어로 대치해도 의미상 同軌(동궤)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언어의 기호적이고 형식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회내부의 계약적 성격을 통하여 갖게 되는 의미론적인 사고의 경향까지를 포괄시키는 한편, 그것으로 하여금 사전적이고 도식적인 개념의 정의나 평상적 語法(어법)의 상식성을 벗어나게 하고 언어 자체에 활기 있는 생명력과 창조적 기능을 부여하는 것. 여기에 사회적인 약속의 기호에 불과하지 않았던 언어는 모든 사물과 의미의 구속에서 벗어나 음향, 색채, 질감, 양감 등 스스로의 유기적 질서를 가지는 것이며 시적 感應力(감응력)의 크기와 농도의 배경적 구실을 하면서 자유롭게 流轉(유전), 아름다움을 향수하는 직관적 성능을 자율적으로 발휘하게 된다. 더욱이 이것에 어떤 형태로든 이미지를 통하여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과거의 기억 속에서 여과 과정을 거쳐 축적되어졌던 의식까지 경험의 총체를 촉발시킬 수 있는 상상력이 채색될 때, 시의 言語(언어)는 가장 직관적인 상징의 촉매가 되며 物的(물적) 언어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물적 언어와 독립성을 가진 사물을 통하여 연역된 모든 의식상의 양식적 변화는 물질적으로 平面的(평면적)인 空間(공간)이나 사물의 現象(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그 무엇, 그 무엇에 대한 절대의 탐구라는 사실이다. 비록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종국적으로 모든 人間(인간)은 대상과 그것에 대한 經驗(경험)의 結構(결구)를 통하여 自我(자아)와 외부세계와를 관련짓고, 그 관계의 모험과 탐색 속에서 자기 자신의 내면 의식을 織造(직조), 존재의 位相(위상)을 밝혀내며 스스로의 가치를 부여하고 작품 구조 속에서의 藝術的(예술적) 轉化(전화)를 의식적으로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의식의 성충구조 속에서 진행되어, 일견 복잡하게 보이는 창작 과정 속에서의 예술적 作業(작업)이 갖는 복합적인 내용물들은 결국 存在(존재)와 그것들의 관련 양상의 궁극적인 意味(의미)의 포착에 있어서는 인식의 方法論的(방법론적)인 차이에 불과한 것이며,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인식의 주체가 되는 인간의 사물에 대한 인식태도, 때로는 스스로의 정신을 방기해버리기도 하고 투철한 논리에 의해서 촉진시키기도 하며 혹은 사물의 형태를 變形(변형)․歪曲(왜곡)시키기도 함은 물론 가치의 정착(고정화된다는 의미로서가 아니라)을 위해서 개인의식의 편차를 보여주기도 하는 인식의 태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詩人(시인)을 비롯한, 모든 창조적 인간에게는 이러한 가치의 발견을 위해서 아름다움을 감독하는 감수성과 그것의 직조능력이 되는 지적 냉철성이 요구되는 것이며, 자기 자신과의, 事物(사물)과 意識(의식)과의, 存在(존재)와 存在(존재) 사이와의 비정한 거리가 필요하게 되고, 그 다른 무엇보다도 보다 투명해지고, 보다 극명한 詩精神(시정신)의 연소를 위해서 자기 스스로를 잔인하리만큼 비정하게 혹사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창조적 자기 표출의 예리한 감독을 위한 보다 투명한 자기 인내의 연속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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