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제) 二 外國語(외국어)에 더욱 努力(노력)

  나는 적어도 나의 大學(대학)時節(시절)의 學習(학습)態度(태도)와 열의에 있어서만은 오늘날도 후회를 하고 있질 않다.
  따라서 내가 다시 大學生(대학생)이 된다고 가상한다 해도 학습적인 면에 있어서만은 별로 달라질 것으로 보질 않는다. 비록 事變(사변)과 軍(군)服務(복무)로 인하여 두 동강이가 나버린 大學(대학)生活(생활)이긴 했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학과공부만은 후회가 나질 않을 정도로 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우선 강의가 없는 시간이나 여가에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상례였고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을 낭비하는 일에 열중한 일은 결코 없었다.
  英文科(영문과)에 다닌다는 사실 자체가 벌써 나에게는 무거운 學習(학습)分量(분량)을 부과해준 것이다. 읽어야 할 허다한 책들은 말할 나위도 없었지만 외워야 될 새로운 단어와 語句(어구), 그리고 익혀야 될 英語會話(영어회화)와 英作文(영작문) 실력 등 앞에 가로 놓인 과제는 실로 무겁고 큰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 내개 왜 英文科(영문과)를 택했던가 라든지 또는 왜 하필이면 東國大學校(동국대학교)를 택했던가에 대해서는 후회를 하거나 自責(자책)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理由(이유)는 간단했다. 東國大學校(동국대학교)에는 훌륭한 敎授陣(교수진)과 學究的(학구적)인 面(면)에서 他校生(타교생)이 부러워 할 정도의 氣風(기풍)이 팽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新入生(신입생)들에게 권하거니와 이러한 氣風(기풍)은 오늘날도 그 底力(저력)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各自(각자) 자기가 4年間(년간) 在學(재학) 中(중)에 무엇을 어떻게 해서 우선 學習(학습)의 最大(최대)효과를 期(기)하겠다는 가를 곰곰이 따져보기를 부탁하고 싶다. 나는 英文學(영문학)은 충분한 語學實力(어학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下級學年(하급학년)時節(시절)에는 特(특)히 英作(영작)과 英語會話(영어회화)에 많은 精力(정력)과 時間(시간)을 바친 셈이다.
  英作(영작)은 강좌에도 거의 度外視(도외시)된 課目(과목)이 없기 때문에 대체로 參考書(참고서)를 利用(이용)하는 자습과 광범위한 讀書(독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成果(성과)가 금방 나타나질 않은 分野(분야)인지라 인내와 꾸준한 노력을 필요로 했던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오늘날 그 당시에 習作(습작)으로 써놓은 英作文(영작문) 資料(자료)를 보고서 물론 苦笑(고소)를 금할 길이 없는 대목도 많지만 깜찍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構文(구문)을 이룩한 자죽을 발견하기도 해서 그때의 努力(노력)이 어떠했던가를 재삼 회상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英語會話(영어회화)라는 分野(분야)는 英文學科生(영문학과생)으로서 등한히 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課外(과외)時間(시간)의 優先順位(우선순위) 第(제)一항목으로 삼고 放送(방송) 청취, 강연회 참석, 영화 관람(특히 미국공보원의 문화영화) 그리고 會話(회화) 강습 등 할 수 있는 방식을 다 택해서 總力(총력)學習(학습)을 한 셈이다. 그 당시 나의 회화강사였던 美國人(미국인) M 교수가 현재 공교롭게도 내가 회장으로 있는 某(모)學會(학회)에 理事(이사)로 같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분이 날 보고 놀려대길 ‘이제는 내가 송 교수한테서 영어회화를 배워야겠소.’라고 하곤 하는데 물론 이 말에는 스승의 보람이 느껴진다는 뜻이 표현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직 내가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좀 달리 해보겠다는 分野(분야)는 역시 第(제) 2外國語(외국어)의 학습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전공과목과 연관이 깊은 佛語(불어)를 第(제) 2 外國語(외국어)로 擇(택)했고 그런대로 사전을 이용한다면 전공서적을 읽어나갈 수 있긴 하지만 역시 佛語(불어)에 추가해서 獨語(독어)工夫(공부)도 똑같은 정도했었더라면 하고 느끼는 경우가 이따금 있다. 적어도 學部(학부)下級學年(하급학년)에서 독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했었더라면 오늘날 海外(해외)硏究資料(연구자료)를 接(접)할 때마다 느끼는 不便感(불편감)은 多少(다소)나마 解消(해소)되지 않을까 하고 느껴지는 것이다.
  學習的(학습적)인 面(면)을 떠나서 大學(대학)生活(생활)의 낭만적인 면에 대해서 몇 마디 쓸 必要(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學科(학과)工夫(공부)를 떠나서 親友(친우)와 같이 國家(국가)의 運命(운명)을 論(논)하고 인생 哲學(철학)을 따지며 코즈모폴리탄이즘을 토론하며 보냈던 시간들은 보람 있는 일들로써 다시 大學生(대학생)이 된다한들 똑같이 되풀이 될 것이다. 이 밖에도 나는 다시 大學生(대학생)이 된다하면 또다시 그대로 되풀이 할 일들이 얼마든지 더 있다.
  그와 동시에 이와는 정반대로 되풀이를 하지는 않겠다는 항목도 있다. 그것은 本來(본래) 性品(성품)과 關聯(관련)이 있겠지만 친구를 좀처럼 폭넓게 사귀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나의 가장 큰 결함은 역시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지나치게 까다로운 존재가 아니었던가 하는 점인데 이것은 中年(중년)인 오늘날도 별반 나아진 것 같질 않아 후회막심이다.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性別(성별)을 莫論(막론)하고 폭넓게 交友(교우)관계를 맺어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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