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國際(국제) 셰익스피어學會(학회)

  지난 4월 19일부터 25일 사이에 워싱턴에서 국제 셰익스피어학회의 學術會議(학술회의) (The International Shakespeare Association Congress)가 있었는데, 이 學會(학회)이름으로의 모임은 이것이 처음이며 이러한 세계적인 모임은 지난 1971년 ‘밴쿠버’에서의 세계 셰익스피어 회의에 이어 두 번째의 모임이다. 이번 회의는 ‘밴쿠버’때보다는 짜임새가 좀 엉성한 것 같았고 약 6백여 명의 대표 중 美國(미국) 외의 학자는 백 명이 채 못 된 것 같았는데 회의는 분과와 세미나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일주일의 회의기간 중 3일간은 開會(개회) 行事(행사), 觀光(관광), 觀劇(관극), 禮拜(예배) 등에 할당되고 學術會議(학술회의)는 나머지 4일간에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전체회의도 몇 차례 있었는데 그중 한 번은 國際(국제) 셰익스피어學會(학회)(韓國(한국)은 11理事國(이사국)의 하나이다)의 總會(총회)이었고, 나머지는 널리 알려진 碩學(석학)들의 記念(기념)講演(강연)이었다.
  4일간의 학술회의는 우선 그날그날의 主題(주제)가 있어 分科(분과)가 오전에 두 개씩 두 번, 오후에 두 개씩 한 번, 그리고 세미나가 오전에 두 개씩 한 번, 오후에 하나씩 열렸다. 分科(분과)의 참석은 자유이지만, 세미나에서의 발표는 하나로 제한되고 참석자에게는 발표자들의 論文(논문)들이 미리 회람되어 있어서 세미나는 質疑(질의)와 討論(토론)에 집중되었다.
  우선 20일(火)의 주제는 ‘셰익스피어와 현대’이었는데, 몇 개의 分科(분과)와 세미나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희극, 그리고 史劇(사극)에 대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있다는 셰익스피어를 우리는 어떻게 현대적 감각에 맞추어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이었다. 分科(분과)의 발표자는 2명이며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교적 젊은 학자들이 많았고 司會(사회)는 널리 알려진 분들이었다.
  21일(水)의 주제는 ‘셰익스피어의 현대적인 해석의 方法論(방법론)’이었다. 이런 주제를 놓고 여러 分科(분과)와 세미나에서 심리분석‧劇(극)상연을 통한 이해‧用語(용어)의 心象(심상)에 의한 해석‧神話(신화) 비평 등의 방법론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다.
  이날 ‘셰익스피어 英語(영어)’ 세미나에서는 崇田大學(숭전대학)의 金周賢(김주현) 교수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23일(金)은 셰익스피어 탄생기념일인데, 기념행사는 전날에 마쳐졌다. 이날의 主題(주제)는 ‘셰익스피어극의 上演(상연) 문제’로 4회의 전체회의를 통해 英國(영국)王立(왕립) 셰익스피어극단과 美國(미국) 셰익스피어극장의 代表(대표)들이 주역이 되어 셰익스피어극의 몇몇 장면의 實演(실연)도 곁들여 오늘날 그의 劇(극)의 上演(상연)이 특히 美國(미국)에서는 發聲(발성)에서 보더라도 점차 現代的(현대적)으로 해석되어가고 있음이 주장 되었다.
  24일(土)에는 ‘셰익스피어의 국제적인 위치’라는 主題(주제)가 몇 개의 세미나에서 다루어졌다. 이날 ‘셰익스피어 번역’ 세미나에서 나는 ‘韓國(한국)의 셰익스피어 번역’이라는 주제를 발표하고 토론에 참가하였는데 나의 論文(논문) 要旨(요지)는 다음과 같다.
  1970년에 처음으로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우리나라의 文獻(문헌)에 나타나서부터 오늘날까지의 우리나라의 셰익스피어飜譯(번역)의 狀況(상황)을 소개하고, 나의 셰익스피어 全集(전집) 譯(역)(1964年(년) 전 5권, 1971년 新譯(신역) 全(전) 8권)에 있어 내가 느껴온 바로 셰익스피어學(학)의 전문지식 위에서 첫째 읽혀질 수 있는 문학적인 번역이 되어야 하겠고, 다음은 그의 작품이 원래 劇(극)이므로 무대 상연에 호흡이 맞는 대사로 번역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끝으로 본래 詩(시)로 되어있는 그의 작품이미지와 리듬이 되도록 살려내어져야 하겠는데, 여기에는 전문적인 셰익스피어學(학)의 바탕위에서 自國語(자국어)를 거의 창조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힘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미나에서 日本(일본)의 大山(대산) 교수는 셰익스피어를 번역을 통해서 自國(자국)의 감각에 맞게 해석하는 방법을 論(논)했고, 이스라엘의 오즈 교수는 셰익스피어에 많이 있는 二重語(이중어)의 번역의 어려움을 佛(불)‧伊(이)語(어)의 여러 實例(실례)와 자기의 實例(실례)를 들어 論(논)했고, 폴란드의 지토 교수는 셰익스피어가 폴란드文學(문학)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폴란드의 ‘셰익스피어’ 번역 상황과 자기의 번역에 대해 論(논)했다. 그리고 印度(인도)의 차크라보르티 교수는 셰익스피어 韻文(운문)譯(역)은 불가능하므로 散文(산문) 譯(역)이 타당하다는 論(논)을 펴서 논쟁을 일으켰는데 그것은 印度(인도)의 경우이겠으며, 나는 言語(언어)의 構造(구조)와 시의 樣式(양식)이 西歐(서구)와 本質的(본질적)으로 다른 韓國(한국)의 경우를 들어 우리나라에서의 셰익스피어의 韻文(운문) 譯(역)의 無意味(무의미)함을 논하여 이 논쟁을 조정한 셈이었다.
  그리고 독일의 찐메르만氏(씨)는 擬人(의인)의 표현의 어려움을 독일의 여러 번역의 實例(실례)를 들어 논했으며, 일본의 川西(천서) 교수는 소네트의 경우 주관적인 표현과 객관적인 표현에 대해 일본의 여러 실례를 지적했다. 議長(의장)은 독일의 하비히트 교수이었는데, 나는 이틀 동안 발표자들과 낱낱이 토론을 할 좋은 기회를 가졌는데 토론 참가자와 방청석에서도 질의가 있었다. 그리고 방청석에는 오랜 知己(지기)인 케임브리지 大學(대학)의 브래드브루크 女史(여사)가 나의 妻(처)와 나란히 앉아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당국의 각별한 배려로 이번 회의에 妻(처)를 同伴(동반)할 수 있었던 나는 代表(대표)로서의 책임의 무거움을 더 한층 느꼈으며, 또한 오랜만에 여러 나라의 同學(동학)의 碩學(석학)들을 만나는 기쁨에다, 셰익스피어 學(학)의 흐름을 走馬看山(주마간산) 격이나마 호흡할 수 있어서, 이번 회의 참석 또한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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