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기다린다, 내 생애의 그랑프리를

1992년 데뷔작 ‘가변차선’을 시작으로 2010년 ‘그랑프리’까지. 대한민국 영화계를 쉴 새 없이 누비는 것도 모자라 KBS 드라마 ‘아이리스’로 한국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던 연극영화과 양윤호 동문. 총 13개의 장편작품을 거치면서 걸어온 그의 영화 인생과 우리대학 연극영화과의 추억에 대해 들어봤다.  

학창 시절부터 모든 학예회와 축제 무대에 배우로 혹은 연출가로 연극을 올렸던 소년. 타인과의 소통과 자기표현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겼던 소년은 어느덧 영화감독의 꿈을 품게 된다. 대학의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여 미친 듯이 연극과 영화에만 몰두했던 그 소년은 영화감독의 꿈을 이뤘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꿈을 품고 묵묵히 걸어 나간다.

환상적인 영화를 꿈꾸다

영화감독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일까. 양윤호 동문의 영화는 ‘조합(組合)’이다. 양 동문은 시나리오, 연출, 연기 그리고 음향과 조명, 미술 등등 수많은 장르의 예술이 한데 모여 영화라는 종합예술을 이룩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 감독으로써의 희열(喜悅)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영화는 사람의 조합이라고 생각한다는 양 동문. 각 분야에서 에이스인 사람들이 저마다 최적의 컨디션일 때 함께 영화를 만든다면 그 영화는 얼마나 환상적(幻想的)일까. “매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그런 꿈을 꾼다. 예술과 사람이 모인 환상적인 조합을 찾는 꿈을” 양 동문의 이번 작품 또한 훌륭한 조합이었다. ‘그랑프리’는 절친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작업이었다는 양 동문은 “10년 지기인 양동근과 ‘아이리스’로 가까워진 김태희가 함께하고 내 고향인 제주도의 품 안에서 일했기에 이보다 더 편할 수 없었다”고 최근 작품에 대한 에피소드를 공개(公開)하기도 했다.

또한 양윤호 동문은 “영화는 관객과의 조합을 이룰 때 진정한 예술로 거듭난다”며 대중예술로써의 영화에 대한 굳은 심지(心志)를 드러냈다.

스승과 선배가 이끌어준 영화

양윤호 동문이 우리대학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특별하다.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고 여러 대학의 연극영화과를 알아보다 우연히 고등학교 12년 선배이자 연극배우로 활발히 활동 중이던 ‘고인배’ 선배를 만난 것. 양 동문은 “당시 고인배 선배의 권유(勸誘)로 우리대학에 지원했다. 대학 진학 이후에도 연극인으로써 내게 많은 가르침을 줬다”며 자신과 띠동갑인 그 선배는 지금까지도 양 동문을 이끌어주는 가장 소중한 이라고 선배와의 인연을 밝혔다.

 당시 우리대학 연극영화과에선 한국영화의 거목(巨木)인 유현목 감독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양 동문은 유현목 감독을 ‘사부’라 칭하면서 자신이 영화를 만들어 오는 것의 밑거름을 주신 분이라 소개(紹介 )했다. “학창시절 유현목 감독님과 편집실에서 함께 밤도 많이 새고 하면서 인간적으로 가까워 질 수 있었다”며 유 감독의 추억을 떠올린 양 동문은 “사부님으로부터 성실과 노력, 그리고 학구열을 그대로 받은 것 같다”고 잊을 수 없는 사제지간의 정(情)을 회상(回想)했다.

고인배 선배와 유현목 감독 외에도 양 동문이 영화감독으로써의 소양(素養)을 구축(構築)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이들이 있다. 우리대학에서 함께 연극과 영화공부를 했던 배우 박신양, 김유석 그리고 김혜수가 그들이다.

당시 우리대학은 영화보다는 연극에 치우쳐져 있었는데 양 동문과 더불어 박신양, 김유석은 유별나게 영화를 하고 싶어 했던 것. “같은 연극영화과라도 관심사에 따라 패가 나뉘었는데 우리 셋은 유일한 영화 파(派)였다”며 양 동문은 그 때의 학내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양 동문은 “혜수는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이미 스타였지만 학내 행사는 물론이고 여러 작품 활동 시 도움을 청하면 발벗고 나서서 들어주었다”며 김혜수의 의리있는 품성을 칭찬하기도 했다. 훗날 박신양은 양 동문의 장편 데뷔작인 ‘유리’로 함께 데뷔하게 된다.   

“바보를 이길 천재는 없다”

 ‘사부’인 유현목 감독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가르침이 있다면 곰처럼 자기 길을 가는 뚝심이 바로 그것이다. 양 동문은 자신의 첫 장편 영화 ‘유리’에 나오는 대사 한 구절을 예를 들며 말했다. “의심(疑心)하지 말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자기 길에 대해서도 절대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단언하건데 나는 한 순간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 이 길이 내 길이라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다”는 양 동문.

“재능 많은 사람들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한 걸음 가다 옆으로 새고, 두 걸은 가다 옆으로 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처럼 재능 없는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앞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무기(武器)다” 바보를 이길 천재는 없다는 말처럼 오로지 자신의 길만들 걸어가는 사람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는 양 동문. 그에게서 그 믿음의 진중(鎭重)한 무게가 느껴졌다.

 스무 살 때부터 10년 단위로 인생 계획을 세워왔다는 양윤호 동문. 스무 살 풋내기 때의 10년 후 계획은 ‘칸 영화제’에 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10년 후, 양 동문은 ‘유리’로 칸 영화제에 진출했다.

 그렇다면 그가 그 해 세운 계획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대중 영화감독으로써 우뚝 서는 것이다. 영화는 본디 대중 예술이니만큼 대중과의 소통(疏通)이 중요하다는 것이 양 동문의 신념(信念)이다. 때문에 서른 살이 넘으면서부터 양 동문은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에 주력(主力)했다. “15년 째 대중이 원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에 힘을 쏟고 있다. 20년 안에는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양 동문의 말에서 그의 계속될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천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니 단명(短命)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인 양윤호 동문. “멈추지 않고 꿈을 향해 꾸준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인생의 승부가 찾아올 것이다”라며 후배들을 향한 진심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5년 안에 대중영화 감독으로써의 승부를 보고 싶다”는 양 동문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프로필>

Δ출생 1966년 11월 11일 Δ학력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Δ약력  가변차선(92년 作), 아담이 눈뜰 때(93년 作), 말미잘(95년 作), 유리(96년 作), 미스터 콘돔(97년 作), 짱(98년 作), 화이트 발렌타인(99년 作), 리베라 메(00년 作), 바람의 파이터(04년 作), 홀리데이(05년 作), 가면(07년 作), 아이리스(09년 作), 그랑프리(10년 作), 아이리스-극장판(10년 作) Δ수상경력 92년 ‘가변차선’으로 부산 동백 영화제 대상, 금관 영화제 대상, 신영 영화제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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