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적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하‘정의’)는 예외적이다. 그것은 이 책이 인문학 서적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의 지위에 오른 만큼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만큼 ‘정의’를 아전인수 격으로 전유하고 있는 사례는 허다(許多)하다. 따라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의미가 간과되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확실히 말해두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읽는 방식과 달리, ‘정의’는 인문학적 사유의 항구불변성 내지는 유용성을 강조하고자 쓰여진 책이 아니며, -실제 대학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간단치 않은 영감을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하버드 대학의 명강의라는 타이틀에 입각한 강의 진행의 노하우를 제공하는 실용적인 지침서도 아니다. 심지어 신자유주의라든가 한국의 야만적 정치경제적 상황에 의해 침해되고 있는 자유와 평등에 관한 정의(혹자는 그것을 ‘공정한 사회’라고 부를 것이다) 실현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엄밀히 말해 ‘정의’는 오늘날 미국에서 정의를 추종하는 태도로 일반화되어 있는 사고인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의 역사적 기원 및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아이러니와 한계를 규명한다. 나아가 그 변증법적 지양으로서, 공동체를 내 몸처럼 여기는(즉 자기를 구성하는 서사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간주하는) 정의에 대한 신뢰의 복원을 신중하게 역설하고 있는 책이다. 그것은 명백히 개인이 선택의 자유를 행사해야 하는 영역을 미국의 공화당(경제)과 민주당(사회, 특히 동성혼 등)이 각각 상이하게 정의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샌델은 이미 역사적으로 널리 비판받은 바 있는 공리주의 대신, 주로 이와 같은 상이한 태도에 공통적으로 내면화되어 있는 자유지상주의를 겨냥하여 그 대안으로서 도덕과 정의의 가치에 관한 공동체적 신뢰의 회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차이에 관한 존중 내지는 관용이라는 명분에 입각한 냉소적 이성, 문화적 상대주의에 관한 회의어린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 오늘날 샌델의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샌델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달리 ‘정의’의 정의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정의에 관한 사유를 정초한 것이라기보다 도리어 오늘날의 미국의 정치적 현실과의 연관성 속에서만 개진(開陳)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차이에 대한 존중이 진리 탐구가 아닌 취향을 인정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태도를 양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우려했던 앨런 블룸이나 자유지상주의가 공적 인간의 몰락(The fall of public man)을 초래했다는 리처드 세넷 등의 사유의 연상선 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궁극적으로 샌델이 숨김없이 드러내듯이 그것은 드디어 정의에 대한 신뢰가 보편적인 미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오바마 시대, 미국인의 자긍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의 정의는 보편타당한 것이기보다 도리어 일정부분 특수하며 철저히 미국적인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정의에 관한 사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지만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보다 문제적인 사유를 전개한 이는 많다. 센델의 ‘정의’가 분명 그러한 사유에 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측면이 있다는 점은 분명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의’의 정의가 정의에 관한 사유의 전부는 아니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