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운 탈춤의 흥취에 젖어

  기다림과 흥분과 함께 축제는 선뜻 다가왔고, 오월의 하늘로 펄럭이는 플랑카드의 율동이 아카시아잎향기와 함께 교정에 가득하다
  모든 사랑하는 이들의 속살거리는 이야기소리와 함께 젊음이 5월의 꽃향기 속에 만발할 수 있으며 좋겠다. 좀 더 강렬한 음악과 열띤 행동으로 이 東岳路(동악로)언덕이 물결 졌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날을 잃어버렸는지도 몰라. 사육제의 광기도 없고 학술세미나에서의 진지함도 없는 5월은 플랑카드의 물결을 타고 밑으로 밑으로 내려 떨어지고, 우리들의 헐렁한 옷차림이 드센 남산바람에 펄럭거릴 때 뭔가 강렬한 몸짓들을, 허공으로 쳐든 손, 손들.
  우리는 진지함과 젊은 열정의 공동묘지에서 떠나온 성묘객처럼, 고개를 떨구고 5월을 지낼 순 없는 일이지. 한번쯤 그룹사운드의 격한 리듬에 파묻혀, 흥겨운 탈춤의 취흥에 젖어 얼쑤 얼쑤 어깨춤으로 돌아다니며 오월의 우리의 달로 만들어야 하지. 무덤을 파헤쳐야지. 그리고 세종로의 갑갑한 차량의 행렬을 심각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성웅 이순신, 누군가 차라리 ‘구리 이순신’이라 이름 붙이자, 갑갑함을 심각히 바라볼 줄 아는 이순신장군 동상을 아예 우리의 가슴속에 옮겨다 놓고 매연을 벗겨내고, 갑옷을 벗겨내 우리 그의 심각함을 간직해야지.
  분수 하늘로 솟아오르고 성상 꼭대기 흰 구름 걸려 있는데, 우리 가슴에 걸려 있는 플랑카드들, 그 거칠은 혓바닥으로 우리의 아린 상처 핥으며 밑으로 밑으로 달려 내려가고, 도저히 우리는 갈 수 없는, 가면 안될 곳까지 달려 내려가 헐떡헐떡 휘젓는 손, 손들.
  한 보따리의 책과 하늘만큼의 아우성을 잃어버리고 아카시아, 라일락 꽃향기 코끝에 흥흥 날리며 어쩌면 그 흔한 야구시합을 구경하며 배팅의 경쾌한 금속성처럼 ‘아-아!’하고 날카롭게 소리를 쳐야 하늘이 맑아지고 오월이 우리들의 달이 될 것 같은 환상이라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요새 나는 海溢(해일)이 나라고 쾅쾅 땅을 구르는 버릇이 생겼다.
  동해 맑은 물이 우리가슴까지 목덜미까지, 아니 아주 머리끝까지 콸콸 넘쳐서 그냥 하늘까지 떠올랐으면 하고 생각도 해보지.
  뭐 꼭 동해의 맑은 물이 아니어도 좋지, 그냥 서해의 누런 물이라도 괜찮아.
  아우성과 손, 발로 땅을 쾅쾅 구름이 無意味(무의미)한 행위로 저 플랑카드 마냥 밑으로만 달려 내려가는 것은 싫어.
  멍청히 하늘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가방을 든 팔뚝의 맥 빠진 근육에 콸콸 막걸리라도 뿌려 동악로의 언덕이 온통 술렁거리도록 진실한 우리의 얼굴이 눈물과 웃음으로 범벅이 된 채 서로 어깨를 걸치고 얼쑤얼쑤 어깨춤이라도 출수 있게 만들어야지.
  외국 영화속의 젊은 연인들 마냥 햇빛이 가득 쏟아지는 들판에서 아무 것도 걸친 것 없이 맨몸으로 사랑하게 만들어야지.
  하늘 높이서 떨어지는 공을 받으려는 외야수의 손처럼 하늘로 쭈욱 뻗어나갈 수 있어야지, 창경원철창 속의 맹수 마냥 턱턱 거리는 발구름은 아니어야지. 헐벗은 산의 메아리 없는 아우성처럼 점점 희미해 져가는 목소리가 아니어야지 그러기 위해 혼탁한 세종로의 공기 속에서 오른손으로 칼을 움켜쥐고 있는 이순신장군의 심각함을 우리들 속으로 가져와야지.
  젊음의 아우성과 진지함이 없는 축제가 기다림, 아쉬움도 없이 바람을 타고 비껴간다면 안되지, 우리는 분수처럼 솟아오르려는 핏줄을 꾸욱꾸욱 눌러 참으며 이 축제를 그냥 보낼 수야 없지.
  남산이 뿌리째 흔들리고 하늘이 부글부글 끓어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라도 내려 쏟아줘야 할 텐데. 여우 시집, 장가드는 날이라도 좋지. 아무려면 어때 우리들 타는 목마름을 거둬가 줘야지.
  갈증으로 갈라진 우리의 혓바닥으로 우리는 무슨 소린가 질러야 하지.
  그리고 아카시아. 라일락 꽃향기가 싫증이 나기 전에 이 축제를 우리의 축제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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