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보도위해 모험도 불사"

MBC 논설위원실장으로 있는 황헌 동문은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국제부 등 보도국 내 다양한 부서를 거치며 수많은 특종을 잡았다. 그 중 옐친 전(前) 러시아 대통령과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그는 말한다. 기자로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남은 인생의 퍼즐을 맞춰 나가겠다는 황헌 동문을 만나 기자로서의 삶과 우리대학과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대사회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이 터진다. 대중들이 이 모든 사건을 스스로 챙겨 알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매일 밤 텔레비전 앞에 모여 뉴스를 시청한다. 여러 종류의 뉴스들, 그리고 그 속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MBC뉴스 황헌입니다” 바로 우리대학 영문과 출신의 황헌 동문이다. 대중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만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그는 정론직필 기자의 길을 26년째 걸어오고 있다. 기자로서 산전수전을 경험한 황헌 동문을 만나 기자로서의 삶과 우리대학과의 추억에 대해 들어봤다.

다양한 경험, 특종 전문 기자

황헌 동문은 1984년 MBC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국제부 등 다양한 부서에서 두루 경험을 쌓았다. 어느 방송사를 봐도 황헌 동문만큼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기자는 없다. 그는 다양한 경험만큼이나 수많은 특종을 잡아냈다.

그가 파리특파원으로 있을 당시 이란 밤시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의 피해를 재빨리 보도하기 위해 그는 다른 기자들이 비자를 받으려고 시간을 허비할 때 비자 없이 무작정 이란으로 향했다고 한다. 공항에서 그는 공항경찰에게 “지진의 심각성을 재빨리 보도하기 위해 왔다”며 “뉴스를 보고 한국에서 피해 복구를 도울 것이니 들여보내 달라”고 기지(機智)를 발휘했다. 덕분에 특종을 건진 그는 CNN보다도 먼저 이란 지진 현장의 참상(慘狀)을 보도할 수 있었다.

부서를 옮겨갈 때마다 사건이 발생해 기자로서 많은 경험을 한 황헌 동문은 “그 중에서도 구소련 군부의 탱크 앞에서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을 인터뷰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구소련의 민주화를 위해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옐친이 군부의 탱크에 올라가 시위를 할 때 인터뷰를 했다는 황헌 동문은 “당시 구소련의 민주화 열기를 한국에 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회상(回想)했다.

가족 통해 맺은 동국대와의 인연

기자로서 수많은 경험을 한 황헌 동문은 모교에 관한 기억도 많이 지니고 있었다. 그런 황헌 동문이 우리대학과 만나게 된 것은 가족들 덕분이었다. 그의 누나는 “동국대 영문학과 교수님들이 훌륭하다”며 “영어를 잘하는 너의 특기를 살리기에는 동국대가 좋다”고 우리대학을 추천했다. 그의 부친 역시 “역사가 깊은 동국대에 입학한 후 열심히 공부해 실력을 키우라”며 그를 응원해 줬다.

가족들의 권유로 우리대학을 선택하게 된 그는 학창시절의 여러 교수님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황헌 동문은 특히 송요인 교수에 대해 “공부를 할 때 영향을 많이 주셨던 분”이라며 “학습할 양도 많고 학점도 짜게 주시던 교수님이셨는데 열심히 공부해 학점을 잘 받았을 때 기분이 좋았다”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황헌 동문은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 스킨스쿠버다이빙 동아리인 수중탐험연구회에 가입한 그는 “방학 중에는 제주도나 울릉도로 탐사를 갈 정도로 열심히 활동했다”고 한다. 그는 또 정식 가입은 하지 않았지만 TIME 동아리에도 자주 나가 TIME지를 공부했다.  또 황헌 동문은 학교 도서관에서 “기자가 되기 위해 국어, 영어, 상식 등 언론사 입사에 필요한 공부를 열심히 했다”며 기자를 꿈꾸는 후배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격려했다.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

황헌 동문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1분 20초의 보도내용만을 보지만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며칠 밤을 새는 숨은 노력은 보지 못한다”며 일반인들은 모르는 기자만의 고충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어렵고 힘없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취재를 할 때 행복하다”며 시사매거진 2580 기자를 할 때를 떠올렸다. 그 당시 “어떤 회사의 노동자들이 근로조건이 열악(劣惡)해 파업을 하고 있었다”며 “회사가 직장을 폐쇄하고 월급도 안 줬는데 내가 보도한 후 직장이 정상화 됐다”고 했다. 그는 “파업이 끝난 후 그들로부터 양말선물을 받았을때 가슴이 뭉클 했다”고 했다. 당시를 떠올리는 그를 통해 인간 황헌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언론사 입사 위해선 다독(多讀) 필요

어려운 이웃들을 살펴보는 가슴 따뜻한 그이지만 자신을 평가할 때는 사뭇 냉정했다. 황헌 동문은 “기자로서 나는 7~80점에 불과하다”며 “내가 좀 더 발로 뛰어 더 좋은 기사를 썼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또 “이재용 아나운서를 비롯해 아나운서실에는 우리대학 출신이 꽤 있는데 보도국에는 별로 없다”며 후배들의 분발을 당부했다.

황헌 동문은 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언론사 입사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선 많은 상식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책을 읽을 때는 책의 핵심내용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면밀히 읽는 독서습관이 필요하다”고 그는 조언했다.

인생은 노력하며 맞춰나가는 퍼즐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앞으로 기자로서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해 남은 퍼즐을 채워가겠다”고 말한다.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 남은 퍼즐을 완성해 나가겠다는 그의 가슴 따뜻한 보도를 기대해본다.

 

 

 

 

 

<프로필>△1959년 경북 출생 △1984년 MBC 입사  △1985년 동국대 영문학과 졸 △1990년 공로상 수상 △1991년 특종상 수상 △1997년 카디프대 언론학 석사 △2000년 마감뉴스 앵커 △2001년 뉴스투데이 앵커, 앵커 공로상 수상 △2003년 파리특파원 △2005년 특종상 수상△2006년 뉴스와 경제 앵커 △2008년 보도국 문화스포츠 에디터 △2009년 보도국 뉴스데스크 담당 부국장 △2010년 논설위원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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