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부는 학제개편, 그 쟁점은 무엇인가’

대학가의 학제개편 바람이 거세다. 지난호에서는 학제개편의 실태를 살펴봄으로써 학제개편의 이유와 배경이 무엇인지를 알아봤다. 하지만 학문과 학과 간의 서열화 같은 한국대학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학제개편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이번 두번째 연재에서는 대학들의 학과 구조조정 현황 비교를 통해 과연 올바른 학제개편의 방향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연 재 순 서

1. 대학별 학제개편의 실태
2. 학과 구조조정의 올바른 방향

최근에 거의 모든 대학들이 예전의 학과제로 돌아갈 것인지, 현행 학부제를 유지하거나 또는 더욱 광역화 할 것인지, 또는 학과제와 학부제를 융통성 있게 병행(竝行)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대학가의 학제개편 바람은 2009년 1월 19일 ‘고등 교육법 시행령’ 28조 제 2항 ‘모집단위를 정함에 있어서 대학은 복수의 학과 또는 학부별로 이를 정한다.’ (학부제 도입을 의무화한 이 조항은 1997년 제정되어서 99학년도부터 시행되었다)는 규정을 삭제하여 강제적인 학부제 시행을 중단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이 학부제철회를 ‘대학 자율화 조치’의 일환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학부 제안이 고등교육분야의 핵심이었던 95년 ‘5·31 교육개혁안’을 수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인사들이 현 정부 교육정책의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많다. 고작 10년 만에 고등교육정책을 구체적인 대안도 고민하지 않고 폐기(廢棄)하였기 때문이다.

어쨌건 이번에도 대학은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여전히 정부 정책에 좌지우지 되고 있다.

학제개편의 기로에 놓인 대학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올해부터 학과제로 전환(轉換)한 대학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건국대가 2010학년도에 문과대, 이과대를 학과제로 전환하였고, 연세대는 2010학년도부터 문과대, 이과대, 사회과학대, 생활과학대, 상경대 등을, 한국외대는 자연과학대와 공과대를, 부산대는 공과대와 사범대를, 숙명여대는 2011학년도부터 전환을 목표로 논의 중이고 덕성여대는 2011년도부터 전면 학과제로 전환할 예정이다.

여기서는 학부제와 학과제의 장·단점을 검토하면서 대학 학제 개편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摸索)해 보고자 한다. 우선 김영삼 정부의 교육부는 학부제를 내세우면서 학과제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그간의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대학의 학과들이 너무 세분화되어 있어서 ② 학사과정 통합화의 세계적 경향에 역행하고 ③ 고등교육 투자의 비효율을 초래하며 ④ 학과별 교과과정 편성에 따른 경영의 비효율과 ⑤ 시설·설비의 중복 투자 ⑥ 학생 교과목 선택 제한 ⑦ 학과간 폐쇄성을 초래한다.

반면에 학부제의 장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대학을 다양화, 특성화하여 사회 각 분야가 요구하는 다양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인력을 배양할 수 있으며 ② 학사 운영을 자율화 하고 ③ 다전공, 복합 학문 연구가 가능하도록 총 이수학점의 1/4~1/6 수준의 최소 전공 인정 학점제를 도입하여 실시(實施)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부제 실시 10년도 되지 않아서 나타난 병폐도 심각하였다. 학부제에서도 학과 정원과 전공이수학점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① 전공 선택권 보장은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의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② 인문학과 기초학문의 붕괴 ③ 대학의 시장화와 직업훈련원화 ④ 최소전공인정학점제는 전공교육 부실을 초래 ⑤ 학생 간 경쟁심화로 공동체 문화 파괴와 극단적 개인주의 심화, 그리고 ⑥ 학과 보다는 대학을 본위로 대학에 지원하는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한편 학과제의 좋은 점은 ① 1학년부터 전공분야에 집중할 수 있고 ② 학과 학우들 뿐 아니라 교수들과 유대감이 높아지는 점들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1972년에 박정희 정권도 현행 학부제와 흡사한 ‘실험대학안’을 시행했으나 10년 만에 다시 학과별 학생 모집 및 학과별 교육과정 운영체제로 다시 전환하였음을 상기(想起)해야 한다.

당시 이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대부분의 대학이 백화점식 종합 대학 형태를 갖추고 있었고, 대학 간 서열화뿐만 아니라 학문간, 학과 간 서열화가 심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우리나라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는 어떤 학제 개편도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학문간 벽 ↓  , 소통의 통로↑

또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애초 학부제가 학부과정을 전공기초 과정으로 설정해 1학년에서 교양 위주 과목을 배우고, 2~3학년에서 전공기초를 배운 후 대학원에서 전공심화 과정을 하도록 하는 대학원 중심 대학체제 도입을 전제로 추진(推進)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이미 법학·의학·경영 전문대학원제도가 대학의 지형을 재구성하면서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학과제로의 전환은 어떤 문제점을 불러올 것인가에 대한 성찰(省察)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과제나 학부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님은 분명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학문 간의 벽을 낮추고 상호소통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학문간 융·복합이나 통섭을 가능하게 하여 학제 간(interdisciplinary) 연구와 교육을 활성화 하자는 것이다.

학제간 소통은 예를 들어서, 어문학과에서 문학을 연구하면서 심리학, 정치·경제학, 페미니즘, 구조주의, 해체주의, 역사연구, 문화연구, 탈식민주의 등과 관련된 학과들과 상호소통을 통해 공용어를 개발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환원되지 않으면서 수평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럴 때, 전공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하고 또 개별대학의 특수성과 역량에 따라서 학부제로 통합하거나 또는 학과제를 유지하면서 학문간의 차이들을 인정하면서 서로 소통하는 노력을 하거나 또는 두 제도를 병행(竝行)하는 것이 결정될 것이다. 또는 영국 대학에서 실시했던 것처럼 P.P.E(정치학·철학·경제학) 연계과정과 같은 과정들을 대학별로 개발하여 분과 학문 체제에 빠져있는 학과들을 가로지르며 시행하는 방법도 훌륭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별학문 전공 영역의 탈영토화를 통한 영토공유는 학제를 개편하지 않으면서도 학과간 상호상승 효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대학별 학제개편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동국대의 경우 ‘미래비전2020’ 초안에서 2015년까지 어문·사학·철학 등 문과대학과 수학·물리·통계학 등 이과대학을 통합해 기초학문대학을 신설하고 예술대학과 영상미디어대학을 예술미디어대학으로 통합키로 했다. 숙명여대는 2011학년도 입학전형부터 현행 19개 학부 6개 학과 구조를 15개 학부 31개 학과로 전환하고, 경상대학에서 소비자경제학과를 분리하기로 했으며, 성균관대는 ‘비전 2020’ 초안에서 인문, 사회, 자연과학 계열 등을 통합한 문리과학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외에 중앙대는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6개 학과로 광역화하고, 연세대, 건국대, 한국외대는 학과제 개편을 주 내용으로 하는 학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구성원 간 의사소통 전제돼야

끝으로 이런 노력을 하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개별 대학의 구성원들 즉, 교수, 학생, 직원 간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 수렴과정 없는 학제개편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대학에서 보직교수들에 의한 일방적인 학제개편에 대한 반대운동이 심했던 결과, 학부제가 ‘한지붕 밑 세가족’ 현상을 야기해서 겉으로는 학부제, 내용은 학과제가 시행되어 온 것이다. 또 이와 함께 필요한 일은 개별 대학의 특수성과 교수진의 전공분야와 역량에 알 맞는 학제 개편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대학이 개성과 다양성 없이 서로 닮은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소위 일류대학 모델을 모방하는 현상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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