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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歷史(역사)는 남는 것이다. 文字(문자)가 발명되기 이전 시대인 선사시대에는 그들이 남긴 遺蹟(유적)과 유물로서 그들의 역사가 남겨져왔고, 문자가 발명된 후에는 문자로서 기술된 역사가 후대에 남겨져 왔다.
  그러나 역사를 기록한 史書(사서)들을 대부분 왕조의 浮沈(부침)을 적었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왕가의 사실들을 기록했을 따름이다.
  우리 韓半島(한반도)는 지정학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옛부터 수많은 外侵(외침)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전쟁의 역사를 기술한 사서를 들춰보아도 거의가 왕의 蒙塵(몽진)이나 播遷(파천)등의 기록과 賊(적)과 對峠(대상)해서 싸웠던 將帥(장수)의 武勇談(무용담)이나 애국심을 기록했으며 혹은 당시의 戰況(전황)을 우리에게 보여주거나 한다.
  그러나 이처럼 커다란 外侵(외침)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게 저항하여 싸운 것도 일반 백성, 즉 민중이었다. 미처 亂(난)을 피하지 못하고 賊(적)에게 생명을 잃는가 하면, 요행히 살아남는다 해도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만다.
  우리는 가끔 6·25때의 전쟁사진을 본 기억을 떠올릴 때가 있다. 廢墟(폐허)가 된 건물 한가운데 젖먹이가 눈망울만 크게 뜨고 正面(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 젖먹이는 이미 목이 쉬어 울음을 계속해도 들리지 않는다. 1·4후퇴 당시 폭파된 平壤(평양)의 大同江(대동강) 철교의 ‘빔’을 타고 넘어오던 피난민 행렬.
  이처럼 역사의 거센 물결은 일반 민중들의 틈바구니를 뚫고 지나간다. 그러나 이 민중들의 아픔은 正史(정사)(王朝(왕조)중심의)속에 파묻혀 세월이 흐를수록 망각되어지며, 거대한 국가 존망의 기록 뒤에 숨어 버린다.
  얼마 전 TV에서 ‘奴隸船(노예선)’이란 BBC방송 제작의 영화가 방영된 적이 있다. 아프리카 奧地(오지)에서 끌려나와 人肉市場(인육시장)에 상인앞에 서기까지의 그 흑인奴隸(노예)들의 아픔, 그리고 그 후에도 歐美(구미) 각 대륙으로 흩어져 백인들의 채찍아래 단순한 노동기계로 전락되어야 했던 그들의 受侮(수모)가 모두 진한 아픔으로 우리에게 와 닿는다.
  아마 이것은 일제하에 우리 민족이 당한 아픔과 交感(교감)하는 바가 더욱 크기 때문일 것이다. 提岩敎會(제암교회)에서의 그 민족적 愛難(애난)은 ‘奴隸船(노예선)’에 나타난 그들의 아픔과 같이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역사를 바로 안다는 것은 기록된 역사의 裏面(이면)에 숨겨진 약한 자의 슬픔을 인식하고 기록의 行間(행간)사이에 보이지 않는 조상들의 아픔을 읽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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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愛國(애국)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러나 참다운 애국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수가 많다.
  歷史上(역사상) 수많은 愛國者(애국자)가 등장한다. 우리의 역사만 살펴본다 해도, 李舜臣(이순신)장군, 安重根(안중근)의사를 비롯해 민족의 救援像(구원상)으로 빛을 발해 주신 先烈(선열)들은 많다. 이러한 분들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역사상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外敵(외적)의 침입을 격퇴시켜 우리 민족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유도해 주신 분들이다.
  또 우리 민족이 수많은 外敵(외적)의 침략을 견디고 이겨 나온 것은 우리의 民族性(민족성) 때문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平和(평화)를 존중하는 우리 민족은, 그러나 남으로부터의 속박에는 과감히 항거해왔다. 우리 민족은 외적의 침입을 받을 때마다 百姓(백성) 스스로가 官軍(관군)과 일치단결하여 그들과 對決(대결)했다. 外敵(외적)에게 나라를 강탈당하는 것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의 정신은 壬辰亂(임진란)을 맞아 佛門(불문)과 儒林(유림)을 막론하고 戰線(전선)에 뛰어들어 왜적과의 투쟁으로 나타난다.
  義兵(의병)과 僧軍活動(승군활동)은 우리 疆域(강역)을 적에게 내어 줄 수 없다는 單一民族(단일민족)의 愛國心(애국심)과 忠誠心(충성심)의 발로였으며 그 脈(맥)을 면면히 이어 나와 日帝(일제) 36년간에 이르러 다시 그 꽃을 피웠다. 申乭石(신돌석), 柳麟錫(유인석), 黃梅泉(황매천) 등을 비롯한 사회 각층의 인사가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맨주먹으로 항거하였으며 결국에는 滿洲(만주)로, ‘시베리아’로 亡命(망명)을 떠나 朝鮮獨立軍(조선독립군)의 母體(모체)가 되었다.
  이와 같이 指導階層(지도계층)이 아닌 백성들이 外敵(외적)과 對抗(대항)하여 자신과 가족, 그리고 財産(재산)과 國家(국가)를 지키기 위해 蹶起(궐기)한 것은 모두 평화를 사랑하고 우리의 言語(언어)와 風俗(풍속)과 槿域(근역)을 사랑한 愛國心(애국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祖上(조상)들의 愛國心(애국심)이 바로 現在(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韓半島(한반도)를 우리에게 물려준 原動力(원동력)이 된 것이다.
  愛國(애국)이란 커다란 일만하는 것이 아니다. 特定(특정)된 人物(인물)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아픔이 특정된 人物(인물)보다는 民衆(민중)들 편에 서는 것이라면 역사를 주도하는 것도 어느 특정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여야만 한다.
  愛國(애국)은 英雄(영웅)이나 豪傑(호걸)만이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인 凡人(범인)들이 하는 것이다. 交通法規(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것도 愛國(애국)의 길이요 자기가 맡은 바 職分(직분)을 다하는 것이 바로 愛國(애국)의 길이다. 不義(불의)를 보고 外面(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是正(시정)하고자 抗拒(항거)하는 것 모두가 愛國心(애국심)을 앙양하는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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