肯定的(긍정적) 生(생), 人間回復(인간회복) 指向(지향)한 著書(저서)

  위대한 사상의 개화는 비범한 인간의 고뇌를 통해서 실현된다. 바꾸어 말하면 한인간의 비범성 또는 위대성은 스스로 성취한 위대한 사상을 통해서 획득된다는 것이다.
  현대실존철학상에 있어 하이데거와 함께 쌍벽으로 부각되어진 카알․야스페르스(Karl Jaspers 1883~1969)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러한 전제는 적중하고 있다.
  많지 않은 생애의 여정에서 야스페르스가 보여준 정신사적 업적과 전기적 측면들은 이른바 자기상실의 시대를 사는 인간을 지양하고 자기회복의 가능성으로 특징 지워지는 사상을 제시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는 시간적으로 현대를 살았지만 그 思想(사상)의 深度(심도)와 폭으로부터 압도해오는 뜻에서 古典的(고전적)인 인물로 그를 파악하게 한다. 그에 관한 傳奇的(전기적) 事實(사실)들은 그의 사상형성에 있어 하나의 轉機(전기)이면서 그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前提(전제)들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생애를 간추려 吟味(음미)해 보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1>
  야스페르스는 1883년 2월 23일 독일 북해안에 인접한 올맨스부르크에서 탄생했다. 김나지움(Gymnasium)을 마친 다음,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法科(법과)에 지망했었다. 그러나 法學(법학)이 지닌 추상적 개념판단에 회의를 느껴 불과 3학기 만에 醫學(의학)으로 轉向(전향)하게 된다. 의학은 구체적인 生體(생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가 당면한 「人間(인간)의 根本問題(근본문제)」해결에 有利(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1909년 의학박사학위 취득, 1913년 「精神病理學總論(정신병리학총론)」을 저작한 그는 一躍(일약) 新進醫學者(신진의학자)로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의 精神病理學(정신병리학)은 다분히 후서얼(Husserl)의 現象學(현상학)에 관한 記述心理學的(기술심리학적)인 方法論(방법론)을 수용하고 있다. <患者(환자)의 內的體驗意識(내적체험의식)>에 대한 현상을 추구한 것도 그 方法論(방법론)에 거점을 두고 있다. 인간은 자기묘사를 통해서 內的(내적)인 여러 양상이 명료해진다. 精神病理學(정신병리학)은 이러한 人間內面(내면)의 「理解(이해)」를 보다 더 깊은 쪽으론 눈을 돌리고 있다. 「理解(이해)」의 근본문제가 그의 심리학에 있어 核心(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야스페르스의 學的成長(학적성장)과 思想形成(사상형성)에 있어 宗敎社會學者(종교사회학자) 막스․베버(Max Weber)의 권고와 영향은 至大(지대)하다. 하이덴베르크大學(대학) 哲學部(철학부) 敎授資格(교수자격)을 취득하여 心理學講義(심리학강의)를 하게 된 것도 바로 막스․베버의 권유에 따른 것이며 그것은 그의 운명적인 轉機(전기)로 파악된다.
  『心理學講義(심리학강의)는 나를 運命的(운명적)으로 정해진 길로 引導(인도)했다.』 그의 述懷(술회)를 통해보면 敎壇生活(교단생활)은 哲學(철학)으로의 志向(지향)을 결정지운 것이 된다. 막스 베버의 참다운 이해는 그의 生前(생전)의 과제로서, 베버의 學的方法(학적방법)과 思想(사상)이 그의 硏究(연구)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의 心理學(심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靈魂(영혼)은 모든 것에 一致(일치)한다」는 命題(명제)에 근거하여 展開(전개)된다. 그래서 그는 理論的說明心理學(이론적설명심리학)에 정면으로 對立(대립)한 딜타이(Dilthy)의 記述的(기술적) 분석적 심리학의 과제를 「理解心理學(이해심리학)」이라 규정하고 그 핵심으로서 프로이드 심리학의 독특한 方法論(방법론)을 실체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定立(정립)했다.
  1919년 理解(이해)심리학을 중심한 「세계관의 심리학」을 저술하게 된 것도 그러한 방법론에 따른 성과다. 본서의 발간과 함께 각계의 주목과 찬사가 그에게 집중했다. 樞密(추밀)고문관인 Niartius가 자기 후계자들에게 한 말은 그러한 주목의 한 측면이다.
  『야스페르스의 <世界觀(세계관)의 心理學(심리학)>을 읽으면 꼭 독일철학에도 다시 봄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 그것이다.


  <2>
 야스페르스의 어린 時節(시절)은 양친의 깊은 感化(감화)와 信賴(신뢰) 속에서 보내졌다. 아버지(Wilhelm Jaspers)는 法律家(법률가)로 27세에 知事(지사)가 되고 銀行長(은행장)까지 지낸 知識人(지식인)이었다. 그의 「自傳哲學(자전철학)」에 따르면 어머니와는 책을 같이 읽고 淫樂(음악)을 같이 감상하는 情緖的(정서적)인 生活(생활)이었다. 습기어린 古都(고도)와 古蹟(고적)의 現場(현장)을 찾아 歷史(역사)의 香氣(향기)에 젖었는가 하면 祖國(조국)에의 깊은 「사랑」을 간직하게 했다. 여름은 父母(부모)와 같이 휘니쉐(Finische)섬에서 보냈다. 해질 무렵 아버지와 같이 거닐던 海邊(해변)의 追憶(추억), 밀려가고 오는 湖水(호수), 반짝이는 金(금)모래의 찬란한 光彩(광채)들은 無限(무한)한 삶의 衝動(충동)으로 벅차게 했다. 自然(자연)의 感動(감동)은 「情緖(정서)에 깊게 물들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成長期(성장기)의 體驗(체험)과 정서는 그의 哲學(철학)에 투영되어 「생존경험」이 「철학의 기반」으로 짙게 연관되고, 全生涯(전생애)에 있어 肯定的(긍정적)인 生(생)의 지향으로 一貫(일관)하고 있다.
  17세 때 스피노자哲學書(철학서)에의 心醉(심취), 키에르케고오르의 철학에서 철학자의 참모습에 직면하면서 그는 자신의 지향과 일치되는 결론에 도달한다.
  키에르케고르의 철저한 自己省察(자기성찰)은 자기 자신의 발견이었으며 그것은 신에의 끝없는 사모이기도 했다. 『인간의 본래적인 諸關心(제관심)은 思惟(사유)하는 知的(지적)양심보다도 자기 자신의 양심의 自覺(자각)이 重要(중요)하다』
  야스페르스는 이와 같이 생존의 철학적 체험 속에서 자신의 開眼(개안)쪽으로 自覺(자각)되고 있었다. 야스페르스는 1910년 경건한 유대系(계)가문 出身(출신)인 미모의 마이야(Gerturd Mayer)와 결혼을 했다. 마이야와의 결혼은 단순한 伴侶者(반려자)로서의 만남이 아니라 야스페르스의 再生(재생)까지를 의미하는 그런 「만남」이었다. 그는 워낙 18세 때부터 악성肺病(폐병)을 앓고 있었다. 의사의 진단으로는 30세경에 全身化膿(전신화농)으로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病(병)으로부터의 회복이 無望(무망)한-정신적인 超克(초극)만이 그의 몸부림이었다.
  마이야와의 결혼은 이러한 절망적 상황 아래서 새로운 鬪病生活(투병생활)을 의미하며 정신적인 超克(초극)의 轉機(전기)로까지 이해된다. 그가 장수를 누리면서 건강체 이상의 精力的(정력적)인 執念(집념)의 생애를 새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마이야와 관련되는 까닭이다.
  『나의 人生(인생)의 긴 旅程(여정)에서 아내를 본다는 것은 나의 魂(혼)을 재생시키는 것이다』 두 사람의 結合(결합)은 이처럼 天上的(천상적)인 승화를 뜻한다.
  나찌스時代(시대)는 그에게 있어 시련의 季節(계절)이었다. 婦人(부인)이 유태系(계)라는 理由(이유)로 離婚(이혼)을 강요당했고 이를 거부하자 교수직에서 추방당하는 비운이 계속 되었다. 그로부터 10年間(년간), 國家(국가)의 法的保護(법적보호)를 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時代的(시대적) 비운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의 승화된 사랑의 信念(신념)과 勇氣(용기)라 할 수 있다.
  『權力(권력)이 權力(권력)으로 있지 않고 倫理的(윤리적) 政治的(정치적) 理念(이념) 아래 있을 때 世界(세계)에는 평화가 온다』는 確信(확신)도 그 不自由(부자유)의 時代(시대)에 굳어진 것이다.


  <3>
  야스페르스의 主著(주저) 「哲學(철학)」(Philosophia)은 그가 正敎授(정교수)(1922)의 자리로 돌아온 지 10년 만에 나왔다. 하이데거의 「存在(존재)와 時間(시간)」과 같이 현대 哲學上(철학상)의 쌍벽을 이룬 大名著(대명저)이다. 야스페르스의 「철학」은 자신의 철저한 연구가 조직적으로 시작되면서 生(생)의 목표로서 설정한 「自覺書(자각서)」라 할 것이다. 「철학」은 그만큼 현실을 공감하게 된다.
  이 저서는 1932년 初版(초판)된 전3권으로 도합 1천78面(면)이 된다. 1권은 「哲學的(철학적) 世界定立(세계정립)」, 2권은 「實存解明(실존해명)」, 3권은 「形而上學(형이상학)」이다. 야스페르스의 철학은 表題(표제)가 가리킨 대로 3개의 존재樣式(양식)에 의해서 구분된다. 全體(전체)는 체계가 아니라 「思惟(사유)운동」을 목표로 한다. 그에 의하면, 「실존철학의 모든 전문적 지식을 이용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넘어선 思惟(사유)이며, 이 사유를 통해서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 복귀하고자 의욕한다」
  그의 사유는 궁극적으로 어느 對象(대상)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者(자)의 존재를 照明(조명)하는 데 있다.
  그의 생애를 통해서 정신적 노력은 두 개의 思惟樣式(사유양식)으로 一貫(일관)한다.
  즉 「哲學(철학)과 哲學(철학)함」을 구별한다. 「哲學(철학)」은 合理的思惟(합리적사유)로서 과학적 方法論(방법론)으로 事物(사물)을 論究(논구)해야 하며, 그것은 예외 없이 尺度(척도)가 된다. 그러나 「哲學(철학)함」은 우리 自身(자신)의 것으로서 合理的要求(합리적요구)와는 달리 인간의 運命的(운명적)인 것과 관련된다. 「哲學(철학)함」에 있어서는 어느 個人(개인)이라도 자신의 本質(본질)(實在(실재))에 따라 生存(생존)하고 自己(자기)자신은 그 實存(실존)과 「關聯(관련)」된다고 하였다.
  「哲學(철학)」과「哲學(철학)함」의 관계는 理性(이성)과 非理性(비이성)의 관계와 같은 인간의 思惟運動(사유운동), 內的充實(내적충실)에 의한 비약을 의미한다. 인간은 지식으로 正位(정위)될 수 없는 非合理的(비합리적) 자기모순을 止揚(지양)케 된다는 것이다.
  인간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合理的思惟(합리적사유)를 超越(초월)하는데 있다. 이러한 단계를 「哲學(철학)」1卷(권) 「哲學的世界定立(철학적세계정립)」에서 展開(전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간은 네 개의 現實態(현실태)인 物質(물질), 生命(생명), 마음, 情神(정신)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분석하고 있다. 물질과 생명은 生物學的現實態(생물학적현실태)의 의미와 같이 「知覺(지각)과 作用(작용)」을 「止揚(지양)」하게 된다. 그러나 야스페르스는 의식의 지양은, 4個(4개)의 현실태의 각 단층을 개별과학으로서 각 현상을 의식하는 것이지, 그 자체의 인식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여기에서 과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우리가 이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飛躍(비약)만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비약은 인간 자신의 자각에 의해서 존재가 개시되는 것을 뜻한다.
  人間(인간)은 全體(전체)로서 認識(인식)될 수 없다. 단지, 개별적인 <物質(물질), 生命(생명), 마음, 情神(정신)>의 인식만이 가능하다. 비약은 단지 物質(물질)과 生命(생명) 사이에, 생명과 마음 사이에, 마음과 정신 사이에서 가능하다. 窮極的(궁극적) 飛躍(비약)은 이 전체를 벗어나는 「實存(실존)」이다. 야스페르스는 우리의 本質(본질)(實存(실존))은 固定的(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운동하는 存在(존재)로서 「生滅(생멸)」이라고 보고 있다.
第2卷(제2권) 「實存解明(실존해명)」에서는 「生滅(생멸)」이 問題(문제)로 提起(제기)된다. 生滅(생멸)은 우리의 內的信號(내적신호)와 같은 것이다. 무엇인가 일어나게 됨으로써 늘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方向(방향)으로서 指示(지시)된다는 것이다. 이때에 人間(인간)은 비로소 自己(자기)가 實存(실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實存(실존)은 우리의 內的存在(내적존재)를 指示(지시)하는 「信號(신호)」인 것이다. 實存(실존)은 늘 自己(자기)자신의 소리를 듣게 한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의 소 리, 하이데거의 武(무)에 直面(직면)한 良心(양심)의 소리, 니이체의 無(무)에 머무는, 그러한 어떤 것이다. 實存解明(실존해명)은 우리의 어둡고 가라앉은 내면의 世界(세계)를 밝게 비쳐준다고 할 수 있다. 第3卷(제3권) 「形而上學(형이상학)」에서는 그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하여 또 한 번 實存(실존)의 變化(변화)를 일으킨다. 「實存解明(실존해명)」에 의하여 「形而上學(형이상학)」의 길을 여는 것이다.
  形而上學(형이상학)의 本質的(본질적) 의미는 암호解讀(해독)이다. 解讀(해독)의 경위에서 인간자신의 無(무)는 超越者(초월자)의 소리를 듣는 순간 有(유)로 비약한다. 마치 키에르케고오르의 神(신) 앞에서의 單獨者(단독자)와 같은 순수한 자기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生命(생명)」과 「意識(의식)」을 뚫고, 더 나가서 「實存(실존)」까지 벗어난 至高(지고)한 존재의 세계(包括者(포괄자))에 들어간 것이다. 이를 야스페르스는 「存在(존재)에 侵入(침입)」한다고 부른다. 인간 자신의 섬광과도 같은 체험의 세계가 신비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形而上學(형이상학)」의 목표는 실존의 체험을 전달하는데 있다. 그것은 독일 古來(고래)의 本體論的形而上學(본체론적형이상학)과는 달리 「相對性(상대성)이 消滅(소멸)」하는 「超越論的形而上學(초월론적형이상학)」이다.
  야스페르스의 「哲學(철학)」은 인간 자신을 照明(조명)하는 「自覺書(자각서)」이다. 그는 여기에서 우리 자신의 생존의 고귀성이 어떤 것인가로 새롭게 강조하고 있다. 현대철학이 판단한 인간은 자기 상실이 있다. 그러나 야스페르스는 오히려 인간회복을 위한 그 處方(처방)으로서 「哲學(철학)」을 내어놓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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