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연극의 재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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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은 다시 한 번 내면으로 굴절하여 인간의 영혼 속에서 짙어지는 어둠속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한 줄기 빛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현 시기 남한의 모든 연극형태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자기반성과 자각을 촉구하면서 러시아혁명 당시 리얼리즘연극을 표현형식면으로 고찰하면서 그 미적체험을 밑바탕으로 승화시켜 나가자함이 글의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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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얼리즘은 ‘우리가 대처하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형상화하려는 의지와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대처하고 있는 현실이란 곧 인간의 삶을 토대로 하되 그것이 어떻게 인간사회의 발전에 공헌하고 있는가라는 문제까지도 추구함으로 계급적 대립이나 투쟁까지도 그 범주안에 들어간다’라고 소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리얼리즘의 연극에 있어서 콘스탄틴 스타니스랍스키(1863~1938)는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스타니스랍스키는 자연주의자들로부터 그의 연기론 형성에 자극을 받았으나 졸라가 제안한 현실의 정확하고 객관적인 재현을 넘어서고 싶었다. 그는 모든 혁명가와 마찬가지로 항상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나선 사람이었다. 인습적이며 연설풍의 연출을 배격하고 앙상블을 방해하는 ‘스타 시스템’에 반항하면서 새로운 예술에는 새로운 배우가 필요함을 절규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새로운 배우란 철저하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훈련된 인간을 가리킨다.
  우리가 리얼리즘연극에서 얻어내야 하는 것은 그 표현방식도 방식이거니와 인간과 역사적 진보에 관한 가치관의 정립이다. 오늘날 우리의 연극이 더 이상 미제국주의자들의 분비물이 아니며, 더러운 교미의 사생아가 아님에 표피적인 향락주의나 현학적이고 무정견한 모방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리얼리즘연극의 올바른 계승과 탐구는 또 하나의 과제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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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전통연극의 계승과 확산은커녕 모든 통로가 막힌 가운데 무분별하고 일제를 통한 굴절식 문화도입은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개념파악에 있어서 적지 않은 오류를 범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괄목할만한 단체인 ‘극예술 연구회’의 신극운동은 그들의 창립선언문에서 ‘극예술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넓히고, 기성극단의 사도(邪道)의 흐름을 구제하는 동시에...’라고 밝히고 있듯이 보다 근원적이고 민족적 견지에서라기보다는 지식인들의 자기위안과 무목적성에 출발함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신연극사 가운데서 독보적인 발자취와 신인양성을 위한 실험무대 창설 등 ‘극예술 연구회’의 성과들은 리얼리즘연극의 작품소개와 도입에는 공이 컸을지 몰라도 이론적 확립과 무대기술의 정착에는 미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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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초반 마당극이론을 위시하여 88년 가을까지 그리고 현재까지 계속되어온 민족극 논쟁은 초기 폭발적인 확산에도 불구하고 그 질적인 심화는 오랫동안 우리를 당황하게 하였다. 억지신명과 말장난, 다듬어지지 않은 대사, 고난 받은 민중은 쓰러지고 북소리 둥둥 울리면 다시 일어나 싸우는 상투성은 관객과 문화운동 지망생들에게 얼마나 고역을 주었는가! 이후 민족극 한마당을 거쳐 보다 발전된 민족극의 양식과 내용이 구체화되었지만 아직까지 마당극적 상업주의와 대중추수주의는 우리를 잡아끌고 있다. 다시 한 번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우리는 연극의 진정한 힘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 존재 이유는 바로 연극 전체에 흐르는 핵심적인 ‘휴머니즘’에 있으며 연극이 어떤 새로운 형식을 취하던 간에 관객 앞에 살아 숨쉬어야한다. 이에 우리는 일상적인 삶의 원칙에서 변형과 확장의 기초를 두고 인간을 위한 작업에 철저히 몰두하여야 한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을 강화하고, 진리를 향한 노력을 자신 속에 키워가고, 세상의 모든 속물성과 싸우며 인간에게서 선한 것을 찾게 하고 그 영혼 속에 부끄러움과 분노, 용기를 일깨우며,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 성스러운 아름다움의 정신으로 삶을 고무할 수 있게, 모든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문학의 목적이었다.”는 고리끼의 이 말은 아마도 모든 예술작품을 꿰뚫어 관통하는 일관된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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