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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뜨] 람보에게 침탈당한 ‘아리랑’을 되찾자‘올바른 대학문화’를 찾아서
  • 조용준 <사회대 사회학과>
  • 승인 1990.09.19
  • 호수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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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원이는 오늘도 아침 일찍 학교엘 나왔다. 특별하게 이루어 놓은 일도 없이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는 행동이 이제는 조금씩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다부진 생각을 하며 학교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떨어지는 빗줄기는 다소 추운 듯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의 무기력의 찌꺼기를 쓸어내리는 빗자루와 같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교문을 들어서 올라오는 길옆의 건물들은 숲속의 별장이었다.
  그 때, 혜원의 눈길은 막 튀어오르려는 개구리 같은 모습에 눈길이 돌려졌다. 동우탑옆에 삐뚤게 우산을 받친 모습의 누군가가 있었다. 민준이였다. 다가가 이야기 해보려다가 그냥 멈추어 섰다. 혼자서 쭈그리고 앉았다가 서서 밑을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이 어쩐지 청승맞기 보다는 멋있다고 느껴졌다. 다가가면 놀란 개구리처럼 도망갈 것 같았다. 그냥 학생회실을 향해 걸어갔다.
  길게 늘인 머리에 초롱한 눈빛의 혜원이는 언제부터인가 항상 똑같은 단벌에 어딘지 모르게 시인 같은 고독한 모습의 민준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혜원이는 걸어가면서 문득 며칠 전 민준이를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민중아 뭐하니?”
  따가운 햇볕이 침범할 수 없는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있는 민준에게 혜원이는 다가섰다.
  “민중이 아니라 민준이야. 발음 확실히 해”
  무표정한 얼굴로 민준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너 이름은 김민준보다는 고민중이 훨씬 어울릴 것 같아. 아! 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근심을 품고 있는 인간이여! 하하하”
  “나 학교 그만 둘까봐”
  “또 시작이군. 이제 죽어버린다는 말까지 나오겠네?”
  혜원의 농담이 짜증스러운지 민준은 눈살을 찌푸린다.
  “자꾸 말장난 하지 마. 학교 다니면서 듣는 것은 먹고 대학생이라는 말이야. 얼마 전 동생이 나한테 그러더라. 수업도 제대로 안 들어가고, 술 먹고 미팅이나 여자얘기만 한다고. 정말 난 학생이라는 좋은 방패로 그리고 단합이라는 좋은 명분으로 길바닥에 엎어지고 고성 방가하는 것을 합리화 시켰는지 몰라.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 뭐지? 흔히들 올바른 대학문화를 찾고 배우고자 이야기하지만 정말 대학문화가 있는 걸까? 왜 술 먹고 당구치고 재미삼아 돈내기 화투치고, 집회하는 것은 싸움하러 모이는 것 같이 과격하게 보이고”
  “바보야 너 생각이 깊은 줄 알았더니 겨우 그런 걸 가지고 죽을상을 하고 다녔어? 그건...”
  민준의 속 좁은 말에 혜원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벌떡 일어섰다.
  그리 어렵지 않게 살면서 학교에 들어오고 그냥 생활하는 것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 온 혜원에게는 모든 게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겨왔었다. 반면 민준은 무척 자유롭고 싶어하는 친구였다고 혜원은 생각했다. 막혀있는 공간을 벗어나고 대학의 자유를 느껴보자는, 하지만 이제 그것이 현실에 있지 않은 꾸며진 낭만이었다는 것을 민준은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언젠가 혜언은 민준에게 자기의 지난 이야기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재수하고 삼수하는 동안에 무척 답답한 것을 떨쳐 보려고 이리저리 청승을 떨며 돌아다녔고, 비 오는 날 우산하나 들고 학원을 도망쳐 한강다리를 걸어서 건너며 ‘새들처럼’을 중얼거렸다고. 하지만 무언지 모를 족쇄에 묶여 다시 새장 속에 돌아왔고 여러 번의 실패 속에서 이젠 자유롭다고 느꼈을 땐 달라진 것이라곤 수첩 속의 학생증 하나뿐이었다고.
  “대학에 오고 대학을 보낼 수 있는 형편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선택된 사람들이라는데 왜 선택된 난 이런 모습이지?”
  민준의 말에 혜원은 그냥 피식 웃어버렸다.
  민준은 지금 커다란 것을 바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소한 것, 조그만 것부터 생각하고 해결하려는 것일 것이다. 대학문화가 멋진 공간에서 연극을 감상하고 화랑에서 피카소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혜원은 이렇게 민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학생회 친구들과 생활과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며 동아리에서 하고픈 일들을 열심히 하는 것, 바르고 열심히 살려는 노력의 생활 속에서 형성되는 사소한 문화, 이것이 바로 대학의 문화라고 민준은 생각할 것이다.
  혜원은 조그만 것, 사소한 것이 자꾸 커다란 덩어리로 굴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학회실에 들어서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물었다.
  “혜원아 너 요즘 어떻게 지내니?”
  “잘 지내요. 몸성히 돌아다니는 걸 보면 몰라요?”
  그냥 무성의하게 던지고 무감각하게 대답하는 말에 혜원은 이제 싫증을 느꼈다.
  “몸 성히 지낸다? 몸 성히...”
  혜원은 학생회실을 걸어 나오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몸만 성하면 잘 지내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가려는데 불쑥 민준이 나타났다.
  “같이 점심식사 하러 가자”
  혜원은 내심 기분이 좋았다.
  “오늘도 점심값 벌었네”하며 얄궂게 웃었다.
  “너 사람이 속으로 병들면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아냐?”
  식사를 마치고 건물을 나오며 민준은 이렇게 물어 왔다.
  혜원은 관심 없다는 듯 간단히 대답했다.
  “그야 진찰받고 소변검사 해 보면 되지. 싱겁게끔”
  “그게 아니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눈치였다. 민준의 표정은 혜원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머리에 병이 들면 자기가 병들은 줄을 몰라. 결국 모든 것이 지난 어느 순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잘못 되었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전까지는 그것이 옳다고 합리화 시키지. 그렇기 때문에 조그만 일에도 항상 생각을 해야 해 ”
  정말 자신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가치를 두고 하는 행동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때 그것은 가치 있는 행동이 아닌 자신만의 병든 가치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혜원은 이렇게 되새기며 미소 띤 얼굴로 민준을 돌아봤다.
  “민준아 작품전 보러 갈래?”
  문득 집히는 데가 있었다.
 혜원은 한자 한자 쓰여진 작품 속에서 미숙하다기 보다는 감동이 우러나왔다. 밤을 세우며 열심히 자기 일에 몰두하여 하나의 완성품을 낸 친구들의 정성어린 모습들이 떠올랐다.
  짓궂지만 귀여운 투로 민준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때 이건 병들지 않은 대학문화라 할  수 있겠니?”
  “언제 대학문화가 병들었다고 그랬냐? 그리고 난 문화가 뭔지도 몰라”
  눈썹에 힘을 주며 이야기하는 민준의 표정 속에서 혜원은 무엇인가 동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한잔 꺾으러 갈까?”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민준을 보고 아기공룡 둘리가 생각나자 혜원은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얘는 술 먹는 것이 대학생이 할 일이니? 고상하게 연극이나 감상해야지”
  “혜원이 너 자꾸 사람 놀리면 점점 코가 길어진다는 거 몰라?”
  “그건 거짓말쟁이 피노키오 얘기지”
  “한바탕 웃음 속에 이야기는 스며들었다.
  ‘나도 문화를 모른다.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걸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 나가는 것이 곧 문화이기 때문인 것이다. 열심히 살고 끊임없이 자신의 발전을 생각하고 생활하는 모습이 모여 문화를 이루는 것이다.’
  혜원은 이런 자신의 생각이 민준을 닮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싫지는 않았다.
  “혜원아! 시인은 멋있어.”
  뚱딴지 같이 민준이 이야기했다.
  “무엇인가 열심히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힘든 고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야. 진주를 품고 있는 조개가 가치 있는 것은 그 안에 고통 속에 이룬 진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듯이 바르게 열심히 살고자 생활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고민하는 모습이 싫지 않은 것은 바른 생활문화라는 보석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야!”
  순간 혜원에게 민준의 모습은 조그만 시인의 모습이었다.
  “혜원아! 난 활기찬 시인이 될거야”
  민준과 혜원이 발길을 옮기는 혜화로 위에는 하늘로 솟으려는 플랭카드가 몸부림치고 있었다.
  “람보에게 침탈당한 아리랑을 되찾자”
 

조용준 <사회대 사회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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