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불감증’

  “엎드려 이 새끼야! 이제는 네가 엎드릴 차례야. 엎드려!. 엎드려”
  억압과 굴종을 요구하던 팽중사로부터 총을 빼앗은 한일병은 드디어 그에게 총을 겨눈 채 이렇게 외친다.
  결국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곳에 총부리를 돌리며 절규하듯 소리치면서 이 연극은 끝난다.
  “엎드려! 이젠 네가 엎드려야 돼!”
  남북총리회담개최로 많은 이들이 통일의 꿈에 부풀어 있는 가운데에도 분단의 벽을 허물고자 했던 통일인사들은 국가보안법이라는 무소불위의 족쇄에 채워진 채 감옥에 가두어져 있다.
  통일은 누가 이루는 것인가. 정부측이 선심 쓰듯 내던지는 몇몇 제안들로 통일이 오는가 아니면 분단의 피해자인 민중들의 각성과 단결이 통일을 이루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연극 ‘불감증’은 성실히 답변해주고 있다.
  극단 ‘아리랑’의 기획으로 작년 4월부터 석달동안 전국 순회공연을 가진 바 있는 ‘불감증’은 분단현실이 첨예하게 드러나 있는 비무장지대의 철조망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학내시위를 주동하다 강제징집당하여 전방으로 배속된 강진우일병과 6․25때 아버지를 잃고 유복자로 자라난 팽중사와의 갈등에서부터 이 연극은 시작된다.
  어느 날 새벽 비무장지대안에서 부대주변에 사는 한 여인이 약초를 캐다 미군에게 발견되어 사살된 사건이 발생한다.
  팽중사 등 상부에서는 이를 멧돼지가 죽은 것으로 은폐, 간단히 무마해 버린다.
  미국에게 있어 한국인은 멧돼지보다 못하다는 자학심만 퍼지고 있는 사이 허경민이병이 팽중사로부터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이유로 지나친 놀림을 당하고, 강진우는 이에 항의하다 구타를 당한 후, 정훈교육시간에 굴욕적인 자기비판을 하게 된다.
  “대학가의 시위에 용공분자의 음모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데모하던 것을 깊이 반성합니다.”
  운동가로서 차마 할  수없는, 자신의 신념을 스스로 부정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중에 여자에게 실연당한 허경민이병이 정신적 충격으로 철책부근을 배회하다 상사에게 간첩으로 오인되어 사살당하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고, 또 다시 팽중사 등 상부에서는 허이병을 월북기도자로 사건을 조작, 축소시켜버린다.
  그러나 강진우일병이 “허이병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 하지 않았던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며 반발, 긴장은 극도로 고조되고, 팽중사는 만취한 상태에서 총을 겨누며 모두에게 엎드리라고 명령한다.
  분단 고착화세력들의 본질이 다시 한 번 억압과 강제로 드러난 것이다.
  결국 이에 불응하던 강진우일병은 사살되고, 또 다른 분단의 피해자인 한사병이 그의 총을 빼앗으며 “이제는 네가 엎드려야 한다”고 외치면서 이 연극은 끝난다.
  온 겨레의 아픔이자 극복해야만 할 분단조국의 현실, 이 현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내리기에는 단지 이번 연극 한편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극단 ‘아리랑’의 ‘불감증’은 우리에게 그냥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없는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누군가 당신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채 엎드리라고 명령한다면...
  “자 이제 누가 엎드려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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