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출범동시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에 들어갔다. 해당 교과서는 역사학계의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것으로 내용상의 오류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지속적으로 수정돼 왔다. 간간이 보수 언론과 지식인들에 의해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합법적인 검정 절차를 거쳐 출판된 교과서를 역사학계의 동의 없이 정권 차원에서 강제적으로 수정한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관점을 문제 삼아 권력의 입맛대로 교과서를 수정한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매우 불행한 일이었다. 역사 교과서의 수난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역사교육 강화를 명분으로 만들어진 2007 개정 교육과정은 시행도 되기 전에 누더기가 됐다. 역사학계는 오랜 논의를 거쳐 한국사와 세계사를 합치고 중학교에서는 전근대사 중심의 ‘역사’를, 고등학교에서는 근현대사 중심의 ‘역사’를 배울 수 있게 하였다. 이와 함께 고등학교에서는 한국문화사와 동아시아사, 세계사를 선택 과목으로 하여 역사 이해의 폭을 넓히도록 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한국문화사를 없애고 역사를 선택 과목으로 전환하였다. 자국사를 전면에 내세운 과목이 전혀 없다는 비판에 직면한 정부는 뒤이어 고등학교 역사의 명칭을 ‘한국사’로 바꾸고 일부 내용을 보완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대한 검정이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오랜 고민의 산물을 시행도 하기 전에 뒤흔든 정부는 검정중인 교과서를 또 바꾸어 혼란을 가중시켰다.

최근엔 다시 이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이 논란이 됐다. 근현대사가 내용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교과서 검정에 관련 전문가들이 대부분 빠진 것이다. 교육 과정이 기형적으로 왜곡된데 이어 교과서 검정까지 파행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비역사 전공자들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문제제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역사학계의 합의를 뒤튼 교육과정 개편을 거쳐 졸속적으로 이루어진 한국사 교과서의 성립과 검정까지 역사 교과서의 수난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우리 역사를 전혀 학습하지 않고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는 등 역사교육은 앞으로 파행을 거듭할 것이다. 역사교육 강화라는 2007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는 교과서나 교과과정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역사교육의 강화가 아니라 오히려 현상 유지도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올 해는 일제 강점 100년이 되는 해지만 한일 간 역사 분쟁은 수사의 진전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공세도 여전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나서서 역사교육의 약화와 파행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정치권력의 역사에 대한 인식 빈곤에서 비롯된 것인지, 현재의 역사학계를 편향적이라고 공격하면서도 스스로 역사교육을 특정 가치관에 종속시키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인공 구조물에 갇힌 강물이 생명력을 되찾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듯 파행을 거듭하는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정상화되는 데에도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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