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학과 구조조정 바람, 선택이 아닌 필수

대학가의 학제 개편 바람이 거세다. 우리 대학을 비롯해 연세대와 성균관대, 중앙대, 건국대, 숙명여대 등 주요 대학들이 기존 학제에 대한 개편 필요성을 제기하며 학제 개편을 추진중이다.
과연 학제 개편의 이유와 그 배경은 무엇인지 알아 보고 대학별 사례를 살펴본다. 학제 개편을 둘러싼 학내외의 논란의 쟁점을 2회에 걸쳐 살펴보고, 올바른 학제개편의 방향은 무엇인지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연재 순서>

1. 대학별 학제개편의 실태
2. 학과 구조조정의 올바른 방향

지난 6월, 우리대학은 문과대와 이과대를 통합하는 기초학문대학을 신설(新設 )한다는 내용의 ‘비전 2020(안)’을 언론을 통해 밝혔다.

학교측이 밝힌 ‘기초학문대학’은 옛 문리대와 유사한 개념으로 학문 간의 융합과 학제의 유연화를 목적으로 시행되는 학과구조조정의 일환이다. 우리대학 이외에도 현재 많은 대학들은 학과 통폐합과 학과제로의 전환, 학부제보다 큰 단위의 모집단위 설정 등의 학과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대학가, 학과제 회귀 바람

우리대학을 비롯해 현재 대학가는 학제개편 바람이 한창이다. 한국 대학들은 지난 1995년부터 학부제와 다전공제 도입 등 대학 교육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왔다.

김영삼 정부가 1997년 11월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제정하면서 1999학년도부터 학생 모집단위를 2개 이상 학과나 학부별로 모집하는 것을 원칙으로 규정해 전국 대학이 학부제를 부분 또는 전면도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고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해 학생 모집 단위를 복수의 학과 혹은 학부별로 정하도록 한 의무규정을 폐지(廢止)했다.

이처럼  학과 구조가 대학의 자율에 맡겨지면서 대학에서는 저마다 학제개편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김현숙 한국외대 전략기획팀장은 “학과구성원들의 요청과 교과부 정책의 완화가 맞물려서 학과제로 회귀가 가능했다”며 학과제 전환 계기(契機)를 밝혔다.

현재 대학들이 추진하고 있는 학제개편의 방향은 크게 학과제와 학과 통폐합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지난 15년간 학부제는 학생들의 소속감 결여, 전공 심화 교육 쇠퇴, 교수와 학생간의 소통 단절, 인기학과의 학생 몰림 현상 등 여러 문제점이 지적됐다.

이에 따라 일부대학은 현재 학부제의 단점에 무게를 싣고 학과제로 회귀하고 있다. 학과제로 전환하는 대표적인 대학으로는 건국대, 연세대, 한국외대, 숙명여대 등이 있다. 건국대의 경우 문과대와 이과대를 학과제로 개편했고, 연세대는 문과대, 이과대, 사회과학대 등 주요 단과대를 학과단위로 모집했다.

건국대 입학관리팀 관계자는 “학부제로 모집을 하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이 인기학과로만 몰리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며 “비인기학과라도 전공자체에 관심이 있는 학생을 중심으로 선발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한국외대도 자연과학대와 공과대를 학과제로 바꿔 신입생을 맞았다. 숙명여대도 2011학년도 학과제 전환을 목표로 학내 교수들과 재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

덕성여대는 2011학년도부터 모든 단과대를 학과 단위로 모집하기로 결정했다. 덕성여대 석대준 교무과장은 “학과제로 전환되면 학생들이 전공을 정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전공 교육의 내실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바람, 통폐합

한편, 또 다른 대학들은 기존의 학부제를 뛰어넘는 보다 광범위한 모집 단위의 학문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성균관대, 중앙대, 숙명여대 등은 학과를 통합하여 학부제 본래 목적을 확대(擴大)하고 있다.

성균관대는  사범대, 약학부, 의과대학을 제외한 문과대 · 사과대 · 경제학부 · 자연과학부 등을 통합한 문리과대학의 신설 계획을 발표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 성기호 성균관대 전략기획팀 과장은 “현재 신설 계획안은 내 · 외부적으로 논의 중인 사항이고, 학교와 관련학과의 대립이 첨예해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중앙대의 경우도 현행 18개 단과대 77개 학부를 10개 단과대 46개 학과, 61개 모집단위로 개편할 방침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상대적으로 취업률이 낮은 어문계 학과를 학부로 통폐합하는 내용을 포함해 사실상 해당 전공을 축소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공대에는 융합공학부가 신설됐고 경제학과 광고홍보학 전공과 경영대가 합쳐져 정원 1,000명 이상의 융합대인 경영경제대학으로 확대된다.

이에 대해 이승주 중앙대 전략기획팀 주임은 “이번 학제개편의 목적은 캠퍼스간의 중복학과의 통폐합을 통해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것”이라며 “이것은 비인기학과를 축소하고 인기학과를 확대하는 개념이 아니라 대학발전 전략의 일환일 뿐”라고 설명했다.

우리대학의 경우,  지난 4월 21일 비전2020(안)을 통해 어문 · 사학 · 철학 등의 문과대와 물리 · 수학 · 화학 등의 이과대를 통합한 기초 학문대학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학제개편안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전략기획본부의 한 관계자는 “기초학문대학은 문 · 이과 상관없이 다양한 기초 교양을 접하면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라며 “폐쇄적인 학과 중심제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융합 학문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방침에 대해 관련학과를 중심으로 교수들이 반발할 조짐을 보이자 학교측은  “현재로선 확정된 것이 없다”며 한 발 물러선 상태다.

학제개편 무엇이 문제인가?

대학에 학제개편의 바람이 불면서 일부 대학의 경우 구성원들 간의 마찰로 학제개편을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도 있다.  캠퍼스 간 학과 통폐합을 진행한 중앙대의 경우, 학과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학생이 한강철교와 교내 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시위를 벌였고 결국 퇴학처분까지 받는 일이 발생했다. 성균관대도 학과 통폐합 내용을 담은 ‘비전 2020’의 발표 후,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이 일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허남결 교수회장은 “개혁이라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의 합의 아래 점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구성원의 합의가 전제 되지 않은 개혁은 학생들과 교수들 모두에게 혼란만을 초래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영문과 장시기 교수도 “인문과학과 자연과학과 같이 전혀 학문적 연관성이 없는 다른 학과를 통폐합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장시기 교수는 또 “대학의 구조조정은 특정한 학과가 다른 학과보다 우위에서 통폐합되는 구조조정이 아닌 학문 간 소통을 전제로 하는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교수들은 현재 이뤄지고 있는 기초학문대학 신설은 학문의 특성과 학문간 연관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와 구성원의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 기초학문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 일부대학에서 설치했던 자유전공학부의 경우 전공 선택 전에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쌓는다는 취지로 설립됐지만 결국엔 경영학이나 경제학 전공으로 지원자가 몰리는 부작용이 나타나 문제점으로 지적돼기도했다. 신설되는 통합학부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학부제의 단점을 피하기 위해 회귀한 학과제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분과학문보다 융합학문이 요구되는 현대사회에 개별학문 중심의 단일 학과체제는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범대의 A교수는 “스토리텔링과 같이 융 · 복합 기술이 점점 더 많이 필요로 되는 시대에 19세기에 등장한 근대적 학과체제를 고수하겠다는 것은 현실의 흐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문과대 B교수 역시 “학과제는 학문 간 소통하기 힘든 자기중심의 학문체계”라며 학과제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학은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견인차이자 상징이었다. 이 때문에 대학의 설립과 규모의 확대는 진보와 발전을 의미했다. 이는 대학의 양적 팽창(膨脹)을 불러왔다. 그러나 양적으로 팽창한 대학은 고령화 사회 진입과 국제경쟁력 약화로 인해 학생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위기에 직면했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산부인과가 불황을 만났던 것처럼, 그 뒤를 이어 대학이 불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학과 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때문에 각 대학들마다 기존의 학제에 한계를 느끼고 더 큰 경쟁력을 얻기 위해 학제개편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조상식 교육학과 교수는 “지금 대학은 과도기적인 시점에 놓여있다. 학부제에서 학과제로의 회귀와 학부제에서 더 큰 단위의 학과구조로의 전환 모두 각 대학 발전을 위한 대학 나름의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지금 현 시점에서의 문제는 대학의 구조조정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대학의 구조조정을 하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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