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삼저수지

▲ 당선소감
김재홍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그렇다. 멀리 두고 온 고향과 식구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詩(시)는 어둡고 차가운 시간에 ‘불’을 밝히는 것이지. 여기서 새로움에 대한 ‘거부’는 구체적으로 극복되는 것이겠지. 바로, 믿음과 극복을 통하여 그 불을 밝힐 수 있으리라.
  좀 더 치열하게, 좀 더 선진적으로 작품을 쓰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쉽다. 부끄럽다. 그렇지만, 현재는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것이고 그 속에서 詩 또한 발전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좋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자. 라면 10개, 계란 3개, 부탄가스 1개 뿐이다. 적어도 40년은 버틸 수 있겠지. 당장 어떤 결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넓고 보다 큰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시작하는 것이다. 노동형제들, 민중운동에 힘쓰는 모든 분들께 ‘내일’을 다짐합니다. 겁 없이.
  어머니 고맙습니다. 주리․순주도 고맙구나. 동수형, 민수형, 영춘형, 정선이, ‘새힘’ 동지들께 조그만 기쁨을 전합니다. 또한 심사위원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심사평
김장호 <사범대 국교과교수>
신경림 <동문․시인>

  감각적으로도 뛰어나고 수사도 화려한 일정한 수준에 달한 시는 많았지만, 자신이 부닥친 문제,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밀도 있게 표현한 시는 많지 않았다. 젊음 탓이겠지만 공연히 멋을 뿌리려는 경향도 극복하지 않고는 참으로 좋은 시는 쓰기 어려울 것이다.
  ‘고삼저수지’(김재홍)는 흠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 시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매끄러워 그 목소리가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까지는 이르고 있지 못하며 공소하게 들리는 대목은 없지 않다.
  ‘굴렁쇠’(고명섭)는 맑고 깨끗한 심상은 살만하나 사물을 보는 눈이 아직 피상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안개’(이태형)는 시의 내용의 불분명한 대목이 너무 많은 것이 흠이다.
  ‘비무장지대’(김충규)는 재주가 번뜩이면서도 너무 거기에 의존해 오히려 감동을 줄이고 있다.
  ‘구포에서’(이선미)는 자신이 먼저 소재에 빠져 들어감으로써 읽는 이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흠이 있다.
  이상 다섯 사람의 가운데서 ‘고삼저수지’를 본상, ‘굴렁쇠’를 가작으로 뽑았지만, 다른 셋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는 시들이다. 앞으로 우리 문학을 위해 큰 몫을 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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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여 호 마을은
  어깨를 늘어뜨린 미루나무의 가슴에서
  깊은 속주름의 나이테를 키우고 있다
  초저녁 붉은 달빛이
  자갈길 지나 쉰 목소리로 달려오는
  바람의 목 언저리에서 무너지고 나면
  어둠에 발목 잠그는 양어장 불빛과
  억새풀 안고 돌아서는 해진 투망이 보인다
  줄기부터 마르는 팔월의 깨꽃은
  참나무집 텃밭에서 정강이 드러내며
  한밤의 갈퀴손이 되어 서있고
  좌대를 빌어 밤낚시에 잠기는
  낯선 이웃들의 큰 목소리를 좇아
  등푸른 이끼들 기어오르는 스레트지붕의
  오지랖에서
  물길 솎아내는 노를 젓는다
  한평 남짓한 목선의 뱃머리에서
  오랫동안 잠겨있던 잔잔한 벼꽃이 피면
  피를 뽑으며 무논에 힘을 주는 일이 아직은
  수몰된 이웃들의 가쁜 숨소리에 잠겨도
  손금 가득히 벼이랑의 꿈 길어 올리는
  참붕어떼의 물방울 보며 노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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