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당신의 목소리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내 생애 가장 어두웠던 가면이라면, 어두워 감은 눈 바깥에서만 기록되는 당신과 나의 역사라면 그곳에는 여전히 당신만의 내 얼굴이 두 눈 홉뜨고 있습니까. 당신은 나의 눈을 알아볼 수 있습니까. 나는 이곳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혁명하는 숲 사이에서 웅얼거리던 철없던 고백을, 고백의 소요(騷擾)를, 결국엔 고요를. 처량한 얼굴들이당신이 없었으면 영영 없었을 고백들이 살이 되어 얼굴 바깥으로 떨구어지지 않는 질투들이. 1977년 서울 출생. 200
긴 호흡으로 보면 /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인 것을 /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 그러니 담대하라 /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박노해, 「동그란 길로 가다」 변혁의 시대였던 80년대, 박노해 시인은 「노동의 새벽」, 「손무덤」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젊은이들을 노동자 계급투쟁의 현장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사형을 구형 받고 7년여의 감옥 생활을 마친 후, 문학예술을 통한 혁명
모든 장르는 클리셰로 시작된다. 후배들이 선배들의 공식을 훔치고 모방하며 진부하게 만들면서부터 장르가 탄생했다. 완벽하게 독창적인 장르물은 없다. 그것은 장르의 정의에 어긋난다. 타고난 진부함은 의무이다. 장르물의 의무는 완벽하게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르의 기반이 되어주는 진부함의 기반 위에 자기만의 신선함을 얹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망가진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진부함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관객들이 자기 작품을 장르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봐 걱정이 한가득인 그들은 이미 팔레트에 있는 색만 골라서 쓰
비둘기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소. 푸른 날씨는 좋소. 난 가끔 이 거대한 도시가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오. 1983년 대구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2009년 《문학동네》신인상 당선.
꽃 한 송이 놓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사실 그날 집회는 시위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어색하게 엄숙하고 아련했다. 교사와 학생과, 아빠와 딸이 서로의 옷에 리본을 달아주고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스티로폼 깔개를 공유하며 잔디의 이슬을 피했다. 각 단체의 이름을 자랑하던 깃발은 점점 내려지거나 가장자리로 비켜났다. 중앙 무대 순서가 끝난 후 눈물을 찍어내며 일어난 시민들은 구호도 외치지 않은 채 국화꽃을 들고 분향소로 향했다. 처음에는 그랬다.그러나 우리가 시청광장을 벗어나자마자 거리에는 긴장감이 깔리기 시작했다. 의경들은 스크
얼마 전 가수 혜리의 알바몬 광고가 핫 이슈였다. ‘500만 알바 여러분 ~ ’ 으로 시작되는 이 동 영상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최저임금 홍보물보다 더 큰 홍보 효과를 얻었다. 흔히 ‘알바’하면 편의 점,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에서 임시적으로 일하는 일자리 또는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 것 같다. 많은 언론에서는 이러한 ‘알바’의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노동법 위반을 자주 보도하고 특 히 피해자가 나이 어린 청소년일 경우엔 더욱 주목한다. ‘알바’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거나 노동법을 잘 지키는 사업장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당연
날이 맑았다가 흐렸다 간혹 비나 눈이 내리기도 했다 밥은 끼니였다가 식사였다 이따금 건너뛰거나 과식하기도 했지만 저녁은 있다가도 없었다 언제나 아침은 있었다 약속은 겨우 생겼다가 다따가 취소되었다 늘 마음은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았다 매일 달라붙어도 결코 능숙해지지 않는 일과처럼 월요일 오전에는 주문을 하고 화요일에는 온종일 주문을 걸었다 수요일에는 기다렸다 내일을 모레를 날이 맑았다가도 흐리듯 저녁이 있다가도 없듯 목요일이 지나면 금요일이 올 것이다 식사나 저녁, 저녁 식사처럼 없었던 것들을 있게 만들고 싶었다 날씨나 약속, 약속이
2009년 4월 8일 쌍용자동차가 경영정상화 방안으로 2,646명의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한 뒤 6년 동안 한 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 26명이 목숨을 잃었다. 2,646명의 대상자 가운데는 혼자 사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신혼부부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부 모도 있었을 것이고 노부모를 모시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많은 인연과 사건으로 얽혀 있는지 잠시만 생각해 봐도 2,646명 감축 계획은 충격이었다. 해고가 살인이 된 사회 이기 때문이다. 100명 중 1명이 목숨을 잃은 사실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수년 전 히트했던 대중가요 중에 이라는 노래가 있다. 해가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을 ‘12월 32일’이라는 조어로 표현한 노래다. 첫눈소식을 들으며 문득 이 노래를 떠올렸다. 실연의 아픔으로도 12월이 끝없이 연장될진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낸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은 오죽하랴. 그분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에 한없이 못박혀있을 것이다. 유가족들은 물론이요, 4월 16일을 기억하는 우리의 마음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4·16은 세월호가 침몰한 날일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싱크홀을
감시사회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조지 오웰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 있다면, 바로 오늘날 대중들의 자발적인 사생활 전시와 폭로의 문화일 것이다. 권력이 체제유지를 위해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유혹이야 일종의 상수라 치더라도, 대중들이 스스로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고 서로 폭로하는 문화는 우리에게도 얼마간 낯선 까닭이다. 물론 대중들이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조건들이 존재한다. 온라인을 통해 행정업무와 쇼핑, 정보검색 등 간단한 일상적 업무를 처리하려 해도, 수많은 개인정보의 제공과 광범위한
판결문; 사건번호 2012-1219호사상. 반은 쓰고 반은 달콤하고사상가. 반은 쿠데타고 반은 혁명이고개요.다음과 같이 주문한다. 아무리 〈읽으려 해도 수많은 지층 사이〉 그녀를 읽어올 수 없다 그렇다 난독증이다 시작과 과정은 다의어고 결말은 고유어다 〈울분을 쏟는 분화구가 무한대〉인 무한 지대의 첫 장과 끝 장은 신파극이고 어떤 이는 만남과 이별이라고 했다. 애인 1, 2, 3이 동시에 떠났다 그렇다 불륜과 정사는 한통속이니 해석은 자유로워야 한다반은 버리고 반은 채택하고 정한 순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독해가 불가능한 그녀다 그녀
미디어 성담론의 섹슈얼리티 왜곡의 문제와 연애지상주의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TV 프로그램에서의 이른바 19금 소재 열풍은 올해도 계속되었다. 그동안 텔레비젼의 보편적 접근 가능성 때문에 영화와 같은 TV 밖 매체를 통해서만 주로 다루어졌던 소재가 드라마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예능프로그램으로까지 확장되어 과거에 금기시되었던 성적인 용어나 일상적 성생활에 대한 내용이 TV 전파를 타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는 원인으로는 먼저 지상파에 비해 소재 선정에서 자유로운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을 들 수 있겠다. 동시에 사회적 분위기
터미널은 헤어지기에 좋은 공간, 이별을 비처럼 맞으며 싸늘하게 젖은 사내들이 어묵을 후후 불며 먹는다. 잘게 쪼개진 짠 것들이 속에 들어와 춤춘다. 멀티플렉스와 쇼핑몰과 패밀리레스토랑이 어묵들처럼 빌딩에 꽂혀 있다. 어느 곳에서 오래 있을 수 없다. 트럭 앞에서 추위를 피하던 사내들이 주섬주섬 몸을 돌린다. 뜨거운 국물이 터미널과 부딪혀 내뿜는 김 속으로 파고든다. 서울을 떠나야지, 여기서 헤어져야지. 우리는 우리와 헤어지면서 비를 맞는다. 어깨에서 김이 올라온다. 빌딩에서 거대한 손가락들이 내려온다. 여기에서 우리는 차렷 자세를
“사람 머리도 채 내밀 수 없을 만큼 좁은 직사각형 창은 이 건물을 마치 미술관이나 고급 호텔처럼 보이게 합니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로 불렸던 김수근이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담아 설계한, 살아 있는 건물입니다.” 김근태, 짐승의 시간“그러던 어느날 세상이 뒤집혔죠. 다들 꼭 잡아요. 잠깐 사이에 사라지죠.” 서태지, 소격동 2009년 서울현대미술관의 시작을 알리는 기무사의 신호탄 전시는 용도가 폐기되며 새롭게 미술관으로 탈바꿈할 건물에 대한 오마주와 기대를 담고 있었다. 서슬퍼런 군부독재의 심장을 꼬집는 충격적인 작품
사람들이 뉴스와 신문을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이유에서 사건의 진실을 정확히 보도하는 것을 언론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여긴다. 지금도 진행 중인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사건이 발생한 당시 대다수 주류 언론들이 보여준 허위 보도는 많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실망감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국민의 생사가 풍전등화인 상황에서도 언론이 이러한 행보를 하는 것은 단순한 실책상의 문제가 아니다. 해당 언론의 소유자와 보도자의 의도가 반
세상을 좋게 만들자동국대 대학원 신문사 화이팅 김 승 일1아까 유주 언니가 바빠서 미쳐버릴 것 같다며 자기가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내가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정말로 나도 유주 언니도 하나씩 더 있고 자기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는 유주 언니랑 내가 사실은 최근에 복사된 유주 언니와 나다 진짜 우리는 우리의 대화를 도청하면서 쌍안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친구다 사실 나는 유주 언니다 동국대 신문 구독자들이여 쉽게 설명하면 유주 언니는 지금 유주 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고 그 중 한 사
2000년대 중반 이후 미술 시장이 ‘비즈니스’의 측면에서 주목을 받긴했지만 전시가 대중적이지는 않다. 특히 현대 미술로 올수록 대중들과의 괴리는 크다. 평균 수준의 한국 미술 소비층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의 회화 경향(후기 인상파나 큐비즘 등)을 넘어서기 힘들고 그 이후의 현대 미술의 다양한 실험들은 여전히 해독되기 힘든 난수표다. 사실 현대 미술의 전위적 경향과 여기서 파생되는 난해함을 느끼는 것은 한국적인 상황만은 아니다. 미술이 대중화되어 있는 서구 사회에서도 개념미술과 같은 실험적 경향들이 완전히 대중화되지는 못
독 주 회 성 동 혁너는 언제쯤 우리라는 말 안에서 까치발을 들고 나갈거니 내 시집의 번역은 죽어서도 네가 맡겠지만 너 말고는 그 누구도 아픈 말만 하는 시인을 사랑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먼 곳에서 오역들을 모아 편지를 만들 것이다 잘못된 문장들을 찾다보면 우리가 측백나무 밑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이별을 견딘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너는 아마 그때도 사랑이 오역에 의해 태어났단 걸 믿지 않을 것이다나는 혼자서 불구덩이로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나를 홀로 두지 마소서 (이 부분에선 네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나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불편한 것’이라 여긴다. 술자리에서 하지 말아야할 이야기 두 가지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 이야기와 정치 이야기를 꼽는다. 지난 세월의 사회 투쟁을 통해 민주화와 자유를 쟁취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포괄적 의미의 언론 자유는 퇴보한 느낌이다. 논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언행이 이념적 스펙트럼에 갇혀 재단되는 경험과 좁혀지지 않는 생각의 차이 뿐이다. 감옥에 갇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 감옥은 도처에 존재한다. 미셸 푸코가 말한 규율 권력의 두 번째 ‘규범적 판단’을 주목할 필요가
의리로 망한 자, ‘으리’로 귀환하다. 최근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퍼진 ‘으리’ 시리즈로 종횡무진하는 배우가 있다. 언제부턴지 그가 인사 대신 외치던 ‘의리’는 그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기호가 되어 있었다. 그 속엔 물론 지나간 시절 주로 ‘주먹’ 세계의 자기보존 논리로 더 많이 활용되었던 형제애 또는 남성연대의 관습이 깃들어 있다. 한동안 그는 한물간 배우였었고 그에게 붙은 의리라는 레테르에는 일종의 ‘망함’의 정조가 결부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을 다양한 사물 위에 합성한 시리즈물도 애초에 반쯤은 그러한 ‘망함’에 대한 아련한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