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당시 5.18 광주는 하나의 점이었다. 외롭고도 두려웠던 절해의 외딴섬이었다. 광주로 들고나는 모든 교통과 통신망은 완전히 끊기고 파괴됐다. 신군부는 신문과 방송을 검열하고 통제하면서 왜곡된 정보와 가짜뉴스를 서슴없이 양산하고 유포했다. 각종 유언비어와 왜곡보도로 타 지역은 5월 광주에 철저히 침묵했다. 광주는 한동안 고립됐고 일부지역의 손가락질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광주시민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공동체 내부뿐이었다. 광주항쟁 열흘 동안 해방구를 만들고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내부의 힘에 있었다.
한국영화사는 1960년대를 한국영화의 황금기로, 1970년대를 한국영화의 암흑기로 기억하고 있다. 황금기라는 수식어는 영화산업의 성장과 김기영, 유현목, 이만희 등 한국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감독들에서 비롯된 것이며, 암흑기라는 표현은 ‘국책영화’의 범람과 질적 하락을 지적한 것이다.시대구분에 따른 연구는 영화사에 대한 통시적 접근과 작가 감독 연구를 풍부하게 해 주었지만, 새로운 접근 자체를 가로막는 효과까지 만들어냈다. 최근 들어 발굴된 영화와 사료의 등장은 이 시기 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다. 이 연구는 그러한
지식인들에게 유럽이 세계의 보편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전근대 문명국의 엘리트들조차 ‘유럽’을 모방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미래를 전망했을 정도였다. 그들은 전근대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유럽식 국민국가체제를 모델로 한 정체(polity)개혁을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같은 관념은 의문에 부쳐지는 중이다. 국내외의 뛰어난 선배 연구자들에 의해 이미 민족국가 단위의 전망이 가진 한계와 난점들이 파훼된 지 오래다. 나아가 단일민족(Nation)이라는 신화의 역사가 실은 정체성의 억압 혹은 마이너리티에
성별 간 격차·차이는 자연적인가, 인위적인가? 통상적으로 ‘생물학적 결정론자’란 이 고전적인 물음에서 남성·여성의 특성 및 그로부터 관찰되는 양성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기인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를 사회적으로 교정하려는 노력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이러한 입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지만, 사회 변화 혹은 어떠한 사회에 속하느냐에 따라 남성·여성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음이 인식되면서, 또 특정한 생물학적 요소와 실제 인간의 삶 사이의 관계가 무척 복잡함이 드러나면서 이제 생물학적 결정론을 진지하
기억은 ‘記-쓰다’와 ‘憶-생각하다’라는 의식 활동이 결합된 말이다. ‘記’는 기록하는 일이고 ‘憶’은 의식에 기록된 것을 되살려 생각하는 일이다. 기록하고, 이를 다시 생각해내는 일은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식적인 작업이며, 여기에는 경험한 바를 저장하려는 노력과 그 경험의 결과를 이후의 시간 속에 유효한 것으로 잇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기억은 과거를 현재의 거울로 삼으려는 일이고, 한편으로는 시간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우리 자신을 구성하게 된
70년 전,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과 인근 오름들에서 봉화가 올랐다. 그러나 제주4·3의 시작은 1948년 4월 3일이 아니라 1947년 3월 1일이다. 4·3은 그 날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의 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기호이기도 하다. 정부의 제주4·3특별법에서도 “‘제주4·3사건’이라 함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
‘가짜뉴스’ 문제로 논란이 뜨겁다. 뉴스란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전파하는 것일 터, 그런데 사회구성원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허무맹랑한 비-사실들만을 넘치도록 담고 있는 ‘가짜뉴스’가 연일 쏟아지고 있으니 논란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가짜뉴스’가 놀랄 만한 속도로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된 까닭인지 팩트를 체크하면 할수록 사실들에 기초한 타당한 가설을 제기하면 될수록 ‘가짜뉴스’는 세상을 비웃듯 더욱 더 번져간다. 우리의 예측을 넘어서는 ‘가짜뉴스’의 확산이 어떤 요인들에 의한 것인
본고는 불교학과에서 진행 중인 ‘팔만대장경의 통찰과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는 글이다. 팔만대장경은 타임캡슐이다. 인류 지혜의 진화 역사 중 하나의 공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팔만대장경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초등학교시절부터 정말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러나 한편 늘 궁금했다. 팔만대장경의 8만4천 법문은 무엇인지. 그 속에는 어떠한 사유체계가 담겨져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 여기”에 서있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삼라
소위 문·사·철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는 인문계열 연구란 자기 분야의 연구사와의 끊임없는 투쟁이다. 대세가 되는 연구사조의 흐름을 성실히 따라가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그 안에 존재하는 균열을 찾아낼 안목과 지구력이 연구자에게 요구된다. 연구자가 자신의 안목으로 발견하여 정련된 학술언어로 표현한 연구사 속의 균열을 우리는 독창성(originality)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가 발견하여 세상에 내놓은 독창성의 수준에 따라 연구자의 우열이 가려진다. 어떤 균열은 인류역사상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획기적인 발견(breakthro
정동적 전환이라는 용어는 비판적 이론과 문화 이론의 궤적에서 언어학적 전환과 문화론적 전환을 넘어서는 새로운 전환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정동적 전환은 주로 서구 이론의 장에서 1990년대 중반 이래 이뤄진 것으로, 탈구조주의와 해체 이론의 한계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에서 출발하였다. 이론이 전화한 전개과정을 따라 이야기하자면 탈구조주의나 해체 이론에 의해 비판적 이론이 ‘주체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빙하기에 빠져버린 국면에서 정동 이론은 ‘주체’라기보다는 ‘신체’와 그 연결체들을 다시 탐구하는 길을 열었다. 정동적 전환은 한편으
2018년 10월 15일, 연장 투표일을 포함한 4일간의 총투표 끝에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캠퍼스 총여학생회를 폐지한다’ 안건이 가결되었다. 올해 초, 남정숙 교수님의 미투 폭로 이후 학우들은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재건하고자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돌아온 학생사회의 답은 ‘총여학생회의 폐지’였다. 투쟁을 하며 가장 많이 부딪힌 반론은 ‘여학생만의 권리를 보호하는 학생회가 필요한가’였다. 재건을 논하는 단계부터 이 지적을 예상하고 있었던 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여’학생회의 모습으로서 학내 소수자
근대성과 애니미즘 2013년 12월 일민미술관에서 이라는 전시가 진행됐다. 이는 2012년 봄, 안젤름 프랑케(Anselm Franke)라는 독일 큐레이터에 의해 기획된 전시로, 중국 심천 등 도시를 순회 후 서울에 도착한다. 당시 박찬경, 구동희 등 국내 작가가 서울 전시에 협력한다. 일민미술관은 광화문 광장의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은 3개월 간 전시됐고, 그동안 광화문 광장의 주변부에서 ‘애니미즘’이 적힌 현수막이 펄럭이게 된다. 이 펄럭임을 예사롭게 볼 수 없었다. 세종대왕과 이순
23차례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가 얼마 전 US오픈 결승에서 화를 내고 주심에게 항의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경기 중 라켓을 팽개치는 등 자신의 감정을 적극 표출하여 경고를 받았고 이에 윌리엄스는 다시 항의했다. 경기 흐름을 잃어버린 그는 결국 패했다. 윌리엄스의 행동이 과했다는 지적도 있고 심판을 야유하는 목소리도 있다. 테니스 경기 규정에 대해 지식이 없는 나는 이를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런데 이 사안을 다룬 호주 언론의 한 만평은 인상적이다. 격분해서 방방 뛰고 있는 윌리엄스의 과장된 태도는 만평의
어린이는 특정한 시대의 규범 속에서 성장한다. 시대는 자신들이 구축한 규범을 학교와 가정이라는 제도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제시하고 그 제도의 순탄한 적응자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어린이의 몸을 사회화 시키는 과정을 밟는다. 많은 어린이들이 이 과정에서 제한된 모범을 세습하며 어른으로 자란다. 그러나 어린이는 다음 세대의 잠재적 주체라는 점에서 시대와 가장 강력하게 불화할 요소를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어느 국면에서의 부적응은 어린이의 권리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점차 자신들이 바라는 세계는 이미 존재하는 세계와
2018년 4월 28일 남북정상회담은 북핵문제와 근대국가 사상 전례 없던 삼대세습 이후 급속하게 경색됐던 한반도 평화·통일문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사건이었다. 판문점에서 만나 두 손을 맞잡고 공통된 대의로서 평화통일의 도정에 이견 없이 합의하는 남북정상의 모습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는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벅찬 감정의 여운을 간접적으로나마 다시금 음미하기 위해 평양냉면 음식점을 기웃거린 이가 나 혼자만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이는
글로벌 유통기업인 까르푸나 월마트는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철저한 시장분석과 경영전략을 수립하여 진출했겠지만 오래되지 않아 철수했다. 다국적 기업들이 많은 물적 및 인적 자본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 투자에서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편 최근 우리나라의 해외직접투자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나 해외직접투자기업의 재무적인 성과는 국내기업들의 재무적인 성과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는 해외직접투자기업의 성과를 높이거나 성공하는데 있어서 경영진의 투자대상국 문화지능(cultural intelligence; CQ
법조계가 촉발시킨 이후 ‘운동’이라 불릴 만큼 확장성을 지속하던 미투!가 어느새 주춤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최근 용기 내준 모델계의 젊은 그녀들에게 이전보다 더 큰 WITH YOU!를 보낸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건대 미투! 운동이 피해자에게 사필귀정의 진리를 안겨줄 것 같지는 않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구성원 대부분의 시각이 가해자의 그것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다른 범죄와 달리 ‘증거’ 확보가 쉽지 않은 성폭력은 피해자들이 직접 “내가 바로 증거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는 극단의 방
많은 연구자들이 다양한 박막 트랜지스터의 게이트 절연체 층으로 적용 할 수 있는 고분자 절연체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여기서 박막 트랜지스터란 세 개의 전극(Gate, source, drain), 반도체 층, 절연체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께가 매우 얇아(소자 전체의 두께가 수백 nm 미만) 박막 트랜지스터라 불린다. 특히 제한된 전력 공급을 필요로 하는 모바일 및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급속한 개발로 인해 전력 소비가 낮은 트랜지스터 및 집적 회로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다. 그로 인해 저 전력 소모로 신뢰성 있는 트랜지스터
입시가 있는 세계는 둘로 나뉜다. 한 쪽은 지망생들의 세계, 다른 한 쪽은 합격자의 세계이다.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면 시험을 치러야 한다. 대학 입시와 기업의 공채, 각종 고시와 전문직 자격증 시험 등. 이러한 제도는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획일적이다. 다수의 불합격자들이 좌절을 겪는 동안 합격자들은 패거리를 짓고 새로운 규칙을 배운다. 한 번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다시 지망생들의 세계로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합격자들의 세계는 더욱 공고해지고 경직된다. 문학계에도 입시는 존재한다. 작가가 되려면 유력 일간지의 신춘문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은 모르긴 몰라도 한국에서 상위 0.1% 안에 속할 진성 독서가에 해당될 터이다. 나아가 당신은 꾸준히 줄어가는 활자매체의 영향력과 독서인구 속에서도 책과 문자매체의 미래와 공공성을 고민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담하건대, 당신의 하루 중 독서가 차지하는 비율은 당신이 디지털 매체에 스스로를 노출하는 시간에 결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죄책감을 느껴야하는 시대가 아니다. 심각한 스마트폰 중독이라면 또 모를까. 오늘날 현대인에게 디지털 매체란 사실상 의식주에 준하는 필수기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