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고백 하나. 아직은 장래 나의 연구가 학계와 사회에 유의미하게 축적되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텨내고 있을 뿐인 지망생 신분에 불과하지만, 나는 문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너무나 즐겁다. 문학이 근대의 미적 이데올로기로서 국민국가 형성에 이바지하는 데 기여했다는 반박하기 난망한 정설에 가까운 학제적 추측(conjecture)에 멈춰서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쯤되면 (한국에서 대체로 그렇듯이) 아직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고 믿어지는 참신하고 저명한 외국 이론의 소개로 이 난국을 타개할 차례이다. 민족문학 연구로 더
콜롬비아의 대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그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의 말미에서 1955년 기자 생활을 하던 도중 화물선 한 척이 갑자기 크게 기울어 탑승자가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한 사건에 대한 폭로 기사를 썼음을 고백한다. 마르케스는 생존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한 기사를 통해, 공식적인 해명은 제대로 하지 않고 폭풍이 사건의 주원인이라는 입장만 내세우는 정부를 신랄히 비판한다. 이로 인해 그는 이후 유럽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최근 마르케스의 유명한 말을 공식석상에서 인용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게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근사한 책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지만 나중에 다시 읽는 일은 거의 없다. 처음으로 읽으며 감탄과 전율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완벽한 순간이 다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여운을 즐기는 쪽이 훨씬 달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 권의 책들은 다시 펼치게 된다. 주로 용기가 필요할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고 나 자신에 대해 믿음이 없을 때 그러하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여름으로 가는 문』. 하인라인의 SF를 읽으면 언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나의 조상은 누구인가? 유전자를 통한 뿌리 찾기가 새롭게 유행이다. 볼 안쪽을 긁어서 보내면 유전자 검사를 해서 자신의 조상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준다. 유전자 중에 얼마나 네안데르탈인에서 물려받았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유럽인에게 가장 궁금한 문제 중의 하나는 자신이 네안데르탈의 후손인지의 여부이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 이전의 고인류 화석종이라는 생각이 점점 받아들여지면서부터 유럽인에게 주 관심은 네안데르탈인이 과연 그들의 조상인지의 여부였다. 네안데르탈인이 유럽인의 조상인지, 아니면 유
전공이 철학이고 직업이 가르치는 것이라 세월호 참사를 보며 자주 떠올린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 따른 결과는 참혹한 몰살이었다. 만일 당신이 세월호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겠느냐는 질문에 대학생들도 대부분 가만히 있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큰일 났다. 제2, 제3의 세월호가 생겨도 박근혜 정부는 국민을 구해줄 수 없을 텐데 어떡하나? 정부가 스스로 변할 리 없으니 우리가 변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학생들은 철학자 헤겔의 눈으로 보면
얼마 전 일본의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이라는 책이 한국어로 출간되었다. 『세계사의 구조』에서 정점에 이른 가라타니 고진의 체계적 사상을 통해 이미 우리는 가라타니가 소망하는 세계의 모습을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같이 소망해도 나쁘지 않을, 영구평화가 실현되는 세계공화국이다. 그런데 그러한 세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말년의 가라타니는 이제 이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이소노미아. 이 낱말은 “동등한”을 뜻하는 isos와 “법”을 뜻하는 nomos에서 온 말이
한만수(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교수협의회 회장) 교수에 대해 제기되었던 ‘논문 중복게재(자기표절)’ 문제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조사 결과 ‘중복게재 아님’으로 판명되었다. 이번 조사는 익명의 제보자가 한만수 교수의 연구논문 「일제 식민지시기 문학검열과 원본 확정」(『대동문화연구』, 2005), 「식민지시기 문학의 판본 문제와 문학검열」(『도전과 갱신의 한국문학사』, 2008)이 각각 등재학술지와 편저서에 중복 게재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이하 연구진실위)에서 최종 작성한 ‘연구부정행위 제보 관
학내 인쇄·복사 업체가 변경된 지 2달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불편이 지속되고 있다. 사실상 인쇄비 인하 등의 장점보다는 여러 단점들이 문제시되어 학생들의 불만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복사기 조작의 어려움 업체가 변경됨에 따라 새로 설치된 복사기의 조작 방법이 복잡하여 실제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도 복사를 하지 못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아예 복사할 텍스트를 복사실에 맡겨버리거나, 복사실까지 직접 찾아가 그곳에 비치되어 있는 조작이 간편한 복사기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새로운 인쇄·복사 업체측
간담회 ‘대학원생의 눈물-고액 등록금과 갑을관계의 사각지대, 대학원을 말하다’가 지난 4월 13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우리학교의 최장훈 원총회장 역시 대표자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높은 등록금으로 인한 생활고와 갑을관계를 비롯한 인권문제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대학원생의 현실을 공유하고 고통 경감을 위한 이후의 정책적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이 회의의 취지였다. 간담회는 총 3부로 기획되었다. 이번 1부는 ‘증언대회’, 5월 중에 있을 2부는 ‘입법 공청 및 토론회’, 6월 중에 있을 3부는 ‘“
자치활동과 관련해 학교와 학생 측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갈등은 학교 측의 문과대 학생회장 불인정과 소모임 대관 정지, 그리고 동대신문 발행 중지와 신문 가판대 철거 등의 사태로 인해 불거졌다. 문과대 학생회(학부)는 지난 3월 학생회장 보궐선거를 준비하는 단계부터 지속적으로 학교 측의 공격을 받고 있다. 전근대적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학생준칙을 근거로 선거를 파행시키려 하였고,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당선자를 불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학내 자치언론 기관들도 탄압의 뭇매를 맞았다. 학교가 클린캠퍼스를 시행하는
최장훈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정치학과 석사과정)의 고공농성이 14일째에 들어섰다. 편히 발 뻗고 누울 공간조차 없이 비좁은 조명탑 위에 오른 최 회장의 얼굴은 다소 부어 있었다. 최 회장은 ‘종단개입 반대’와 ‘총장선거 원천 재실시’를 요구하며 지난 4월 21일 새벽 만해광장 조명탑 위에 올랐다. 조명탑에 오르기 전 그는 예산의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을 뵙고 왔다. 차마 부모님께는 조명탑에 올라간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께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다”라고 말씀드렸고, “건강하게 잘 하라”는 대답을 들었
보광 스님이 지난 5월 2일 개최된 이사회에서 제18대 동국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총장 선출이 향후 학내 학사 안정과 화합으로 이어질지, 더 깊은 갈등과 반목으로 격화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종단의 선거 개입·외압행사 발단 문제의 발단은 작년 12월 이른바 ‘코리아나 회동’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 등이 김희옥 전 총장에게 후보 사퇴 압력을 가한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회동 후 김희옥 전 총장이 후보직에서 사퇴하고, 뒤이어 조의연 후보가 종단의 총장 선거 개입 중단을 요구하며 역시 자진
원래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세월호 이후에 인문학을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주어진 주제는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였고 여기에 ‘인문학, 대학원, 그리고 정부’라는 키워드가 같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을 한다는 것’이란 말을 듣는 순간 난 ‘세월호 이후’라는 말 외에 어떤 말도 떠올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세월호 1주기 즈음이었고, 여기에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말하면서 ‘세월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다는 요즘 나의 무모한 고집이 힘을 보탠 탓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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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수 혜리의 알바몬 광고가 핫 이슈였다. ‘500만 알바 여러분 ~ ’ 으로 시작되는 이 동 영상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최저임금 홍보물보다 더 큰 홍보 효과를 얻었다. 흔히 ‘알바’하면 편의 점,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에서 임시적으로 일하는 일자리 또는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 것 같다. 많은 언론에서는 이러한 ‘알바’의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노동법 위반을 자주 보도하고 특 히 피해자가 나이 어린 청소년일 경우엔 더욱 주목한다. ‘알바’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거나 노동법을 잘 지키는 사업장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당연
날이 맑았다가 흐렸다 간혹 비나 눈이 내리기도 했다 밥은 끼니였다가 식사였다 이따금 건너뛰거나 과식하기도 했지만 저녁은 있다가도 없었다 언제나 아침은 있었다 약속은 겨우 생겼다가 다따가 취소되었다 늘 마음은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았다 매일 달라붙어도 결코 능숙해지지 않는 일과처럼 월요일 오전에는 주문을 하고 화요일에는 온종일 주문을 걸었다 수요일에는 기다렸다 내일을 모레를 날이 맑았다가도 흐리듯 저녁이 있다가도 없듯 목요일이 지나면 금요일이 올 것이다 식사나 저녁, 저녁 식사처럼 없었던 것들을 있게 만들고 싶었다 날씨나 약속, 약속이
2009년 4월 8일 쌍용자동차가 경영정상화 방안으로 2,646명의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한 뒤 6년 동안 한 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 26명이 목숨을 잃었다. 2,646명의 대상자 가운데는 혼자 사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신혼부부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부 모도 있었을 것이고 노부모를 모시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많은 인연과 사건으로 얽혀 있는지 잠시만 생각해 봐도 2,646명 감축 계획은 충격이었다. 해고가 살인이 된 사회 이기 때문이다. 100명 중 1명이 목숨을 잃은 사실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다.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아카데미의 삶을 계속해 온 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돌이켜 보면 나를 수 식한 직급은 언제나 ‘조교’였다. 연구소에서, 학과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기숙사에서, 대학의 상 상 가능한 다양한 공간에서 나는 존재했다. 석사 1기 시절, 연구소장은 어느 학회에서 나를 “잡일 돕는 아이”로 소개했는데, 과정생 시절의 내 포지션을 그만큼 잘 나타내는 말도 없었다. 연구소의 무급 연구원으로 등록된 박사수료생 선배에게 그 일화를 전하자 그는 “내가 잡일을 하고 너는 잡일 하는 나를 돕고 있으니까, 그건 정말이지 정확한
신임 총장 선출을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총장 선출 제도와 이사회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사회는 공식 폐회 후 이사 선출, 이중 회의록 작성 등 운영 전반과 절차적 문제에 있어 주먹구구식 단면을 여실히 드러냈다. 양분된 의견을 통합하고 조율해야 하는 논의 과정에서조차 삿대질과 인신공격, 일부 교직원 해임·재발령 등의 과정을 반복하며 구성원 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108년 역사를 간직한 동국대학교를 이끌어나갈 수장을 선출하기 위한 논의의 장은 내부적인 갈등과 분열, 반목만을 거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