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뭐예요? 무슨 일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린다. 질문자가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해요”라고 짧게 답한다. 나의 경제적인 상황이나 능력을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전문 번역가입니다”라고 답한다(프리랜서라는 말은 뺀다. 그래야 백수가 아니라 내 앞가림 정도는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십분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인사가 아니라 심도 있는 대화로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은 사람, 혹은 나의 관심사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는 “현재는 대
2014년 11월, 나는 당시 다니고 있던 대학 학보사에 칼럼을 투고했다. 계기는 간명하다. 2014년이 저물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바다에 빠졌고, 신해철은 정말 노래가 되었다. 그것들이 세상에 아로새긴 어떤 ‘징후’들을 글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심을 다해 썼다. 며칠 후 신문사로부터 내가 쓴 글이 신문에 실리게 될 거라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상상했다. 누군가 신문을 펼쳐 이 기사 저 기사를 살피다가, 우연히 발견한 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 동의할지 아니면 그렇지 않을지. 그 과정을 머릿속에
강사법은 있는데 강사가 사라지고 있다. 강사가 줄어들면서 대학 내 개설된 교과목의 수도 줄어드는 중이다. 교과목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감당이 안 돼 전임교수가 맡아야 할 강의시수가 늘어난다. 이에 따라 수업의 질이 하향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게다가 교과목의 수가 줄었기에 학생들의 선택 폭이 줄어든다. 시간강사에게 교원 지위와 임용 기간을 부여, 보장하고 방학 중에도 급여를 지불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가 무색하게 강사법은 대학구성원과 학문후속세대에게 진통을 야기하고 있다. 오는 8월 1일 강사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이 진통
국회가 난장판이다. 쇠 파이프와 최루탄이 난 무한 시기는 지난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무리지 어 힘을 과시하던 야당 의원들도, 007 작전하듯 빈 회의장을 전전하는 여당 의원들도 길바닥 시 위의 현장에나 어울려 보였다. 마치 성전에 임하는 양 치열하게 몸으로 싸운다. 갈등을 말로 해 결하라 만들어진 곳이 콜로세움의 전쟁터가 되었다. 의장실 성추행 공방도 등장했다. 한 쪽은 성추행이라며 흰 꽃 행진까지 한다. 다른 한쪽은 자해공갈단의 행태라 비난한다. 국민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파렴치 범죄 행각을 목격할 때의 분노다. “(임
오는 2학기부터 시행될 고등교육법 개정안, 이른바 ‘시간강사법’은 시간강사의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을 위한 법이다. 이로써 시간강사는 사대보험에 가입된다. 고용기간은 최소 1년, 최대 3년까지다. 방학에도 급여가 있고 계약종료 시 퇴직금도 지급된다. 여타의 직업인들에게 딱히 새로울 것 없는 이 법은 서류가방을 들고 여기저기 오가고, 매학기 다음 학기 강의 배정으로 노심초사하며, 방학마다 생계를 걱정하는 시간강사들에게 단비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시간강사를 위한다는 법이 시간강사의 대량 해고로 이어지고 있는 것
지난 7일 참여연대 부설기관 중 하나인 청년참여연대는 ‘학자금 대출 무이자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알리는 이슈리포트를 발행했다. 리포트에 담긴 개정안에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의 자격요건 폐지와 무이자 지원 제도 도입, 이를 대학원생까지 확대하는 방안 등이 담겨있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제도는 소득 8구간 이하 학부생(만 35세 이하)에게 학자금을 대출해주고, 소득이 발생한 시점부터 소득수준에 따라 원리금을 상환하는 제도로 2010년에 도입됐다. 하지만 이 제도는 학부생에게만 적용돼 상대적으로 고액의 등록금을 납부해야하는
처음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학부) 졸업식 뒤풀이에서 만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 금수저였구나? 어쩐지 취업준비를 안 하더라니! 하지만 나는 금수저도, 취준 포기생도 아니었다. 단지 학부생 때 배웠던 것들을 조금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그런 욕망 따위는 고이 접어두는 게 옳은 일이었을까. 대학원에서 8학기를 보내는 동안 부모님의 등골브레이커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올해 초 부모님은 자축파티를 벌였다. 내가 박사과
이른바 ‘연구 세습’ 논란이 한창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은 지난달 2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내 4개의 과학기술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지도교수가 학생의 존속이었던 케이스’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KAIST는 2명, GIST에서는 1명의 교수가 자녀와 한 연구실에서 함께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KAIST의 경우 아들이 아버지의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 4편에 공저자로 이름이 올라간 사실이 드러나 크게 논란이 됐다. 이뿐이 아니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의 한 교수는 자신
강사법이 처음 입법됐을 때 대학원 과정을 다니고 있었고 이후 그것이 네 차례 유예되는 과정을 겪는 와중에 시간강사가 됐다. 시행과 유예가 결정되는 목전에서 강사법은 늘 술자리의 중요한 화두였다. 고백하건대 선배들이 강사법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강사들의 처우 개선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법을 두고 얼굴을 붉히고 핏대를 세워야 할 만큼 그리도 많은 말들이 왜 오가야만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학기별 계약, 4대보험 미가입, 강의 환경의 열악함 등 시간강사의 노동 조건이 좋지 않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편으로, 그것을 해결하기
최근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이제 대학 교수들도 합법적으로 ‘교수 노조’를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고등교육법 적용을 받는 대학교수가 교원노조 범위에 포함됨에 따라 많은 변화들이 예상된다. 교수들이 근로조건 등과 관련하여 대학 또는 교육부 등을 상대로 교섭할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교수의 ‘노동’을 사회적으로 재고(再考)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동시에 교수들 스스로가 ‘노동자’이자 ‘교육자’,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현재 우리 학교에도 ‘교수협의회’가 존재하고, 본교의 전임 교원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석사 4학기 재학생이다. 대학원을 들어오기 전에 짧게나마 직장생활을 해서 돈을 모았고, 운이 좋게 석사과정 내내 연구조교(교수님 방 조교)와 조건 좋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나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부모님은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다니는 것을 불안해하며 지속적으로 반대를 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학원생 대부분 듣는 질문이겠지만,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인들은 그 공부를 해서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지, 돈을 얼마나 벌 수
지난 7월, MBC와 뉴스타파가 공동 취재한 ‘가짜학회’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 차례 논란이 일었다. 가장 문제가 된 단체는 ‘세계 최대 해적 학회’인 ‘와셋(WASET)’과 ‘세계 최대 해적 학술지 출판사’인 ‘오믹스(OMICS)’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 학술단체들은 학술대회를 빙자한 ‘발표자 원맨쇼’를 진행한 뒤 우수 논문상을 시상하는가 하면, 검증과정(동료평가)을 거치지 않은 논문을 출판하여 학계를 기만하였다. 최근 5년 간 국내 연구자들 중 1300여 명이 이러한 해외 가짜학회에 참여했으며, 가짜학회로 의심되는 저
이 그림(위 그림)은 유명한 미술가 파블로 피카소의 ‘The Dream’이라는 그림이다. 피카소가 1932년 51세 때 그렸고 가격은 $155M, 한화로는 1732억원 정도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 생각한다. “우와 애들 장난 같은 그림으로 유명한 미술가가 되다니!” 이 그림(위 그림)을 보면 “그림 좀 그리는 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전공자들에게는 위의 장난같은 그림보다 이런 그림이 난이도가 높아보이고 그리기도 더 힘들어 보인다. 그런데, 이 그림도 피카소 그림이다. 17살때 그린 초기 작품으로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