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개표 결과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57.50%(279만8788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9.18%(190만7336표)를 얻어 89만1452표 차이로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지난 7일 한국방송협회 산하 KEP(Korea Election Pool, 방송사공동예측조사원회)가 실시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와 30대 유권자 절반 이상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경우 박 후보 33.6%, 오 후보 55.6%로 조사됐다. 30대에
데이트폭력범죄는 범죄 당사자가 연인관계라는 특수한 인적 관계로 엮여 있기 때문에 반복적·복합적으로 발생한다. 성적인 폭력, 과도한 통제, 감시, 폭언, 협박 등이 모두 데이트폭력의 유형들이다. 재범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데이트폭력 범죄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김한중의 논문 「데이트폭력범죄에 관한 연구·치한 현장의 경험에 기초하여」는 데이트폭력범죄의 예방, 처벌, 재범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현장실무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하고 있다.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데이트폭력범죄의
코로나 한국과 타이완의 현대사는 비슷한 궤적을 그려왔다.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서 벗어난 전후 동아시아의 반공 분단국가, 고도성장을 이룬 ‘아시아의 네 마리 작은 용’, 심지어 1987년을 기점으로 ‘민주화’에 이르는 과정까지. 두 지역의 현대사는 양자 간에 모종의 평행이론이 성립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빼닮았다.이처럼 한국과 타이완은 역사적으로 그 어느 지역보다 깊은 정치적 유대관계를 맺을 이유가 차고 넘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두 지역은 각자의 분단 문제와 씨름하는 와중에 냉전 시대 형성된 유구한 정치적인
모든 고통은 고유하다. 그러나 어떤 고통은 다른 고통보다 더 되돌릴 수 없다. 어떤 고통은 다른 고통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긴다. 고통의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을 갖지 못한 인간은 법과 폭력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저마다의 고통을 인식하면서도 서로 다른 고통을 획일화하지 않는 법의 언어는 인간 역사의 자부심이자 인간성 그 자체다. ‘알페스’는 Real Person Slash(실제 인물 커플링)의 약자인 ‘RPS’를 한국식으로 읽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실존 인물을 사용해서 쓴 동성애 음란물 팬픽을 가리키는 말이다. 팬픽은 대중에게
코로나 바이러스가 최초로 출현했을 때를 상기해 보자. 많은 사람이 공포에 떨면서 종말론적 이미지들을 한 번씩 떠올리지 않았나? 지금은 어떤가? 사람들은 적어도 더 이상 이 세균의 존재 자체를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보편적인 악마와 같이, 또는 아렌트(Hannah Arendt)적인 ‘악의 평범성’과 같이 말이다. 그래서 세균이 담론 안에서 가지는 공포의 교환가치는, 간간이 찾아오는 부정맥처럼 넓고 고르게 퍼진 불안으로 꽤나 평가절하된 상태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은 최초 출현 시점에서 늘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하여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주가가 떨어진 후 해당 주식을 사서 상환하는 거래로, 시장에 물량부담을 주어 주가를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공매도가 주로 외국계 대형 헤지펀드에 의해 이루어지면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되었고, 공매도 세력은 약한 개미투자자를 괴롭히는 나쁜 금융 세력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공매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다. 뉴욕증권거래소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의 빌헬름 황제(Kaiser Wilhelm II)가 증시
일본은 패전 이후 제국적 기억을 망각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단일 민족·언어 사회로의 급격한 이행을 추구했다. 전후 일본에 있던 재일조선인은 이민족 집단으로 분리됐다. 활동하고 있던 재일조선인 작가들은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창작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동시에 조선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존재했다. 일본어로 쓰는 작가들 또한 자신의 집필 언어에 대한 당위성을 해명했다. 그들은 일본의 국가적 경계 안에서 경계 바깥의 ‘조국’에 대한 글을 썼다. 조은애의 논문 「남북일 냉전 구조와 재일조선인의 문화적 월경 - 자기민족지적 글쓰기의 계보
코로나 정국이 계속되는 중이다. 많은 전문가가 말하는 대로, 인류는 코로나 이전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불황을 타지 않는 불패(不敗)의 업종으로 여겨졌던 항공과 여행업계가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밤도깨비 여행’ 같은 일탈은 어쩌면 201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의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한국사회 한 축을 든든히 떠받치던 자영업계 종사자들의 한숨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무겁다. 당분간 해외유학 또한 어려워질 거라 한다. 인류는 코로나 정국을 극복해내긴 할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남긴 상흔과 그것으로
어릴 적 내 이름에 들어가는 한자가 너무 어렵다고 투정 부린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소망과 노력을 거쳐 만들어진 귀한 이름이니 감사히 사용하라고 하시며 내 이름에 반영된 사주(四柱), 그리고 한자의 뜻을 장황하게 설명하셨다. 60년 전 지어진 엄마 이름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이름은 사회에서 개인이 위치한 계급을 함축적으로 은유한다. 운명공동체로서의 가족의 의미가 희석되고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의 가족은 부모·형제가 쉬이 서로에게 자아를 의탁하며 가족의 성공을 곧 나의 성공으로 여겼다. 이때 한
보는 사람이 준비가 안 되면 보고도 못 보는 것이 있다. 미셀 푸코의 ‘장애’ 관련성이 그렇다. 『광기의 역사』는 부랑인 수용시설(구빈원)에 관한 책인 동시에 『정신의학의 역사』와 함께 ‘정신장애인’에 관한 지식과 권력을 다루고 있다. 『감시와 처벌』은 범죄 소인을 가진 비정상인들을 정상인으로 훈육하는 ‘시설’에 관한 책으로, ‘장애’라는 비정상성 때문에 자유는 없고 규율만 있는 시설 수용을 요구받는 장애인과 직접 관련 있다. 그럼에도 『광기의 역사』는 근대 이성의 한계에 대한 철학서로, 『감시와 처벌』은 근대 권력에 대한 정치철학
진보정치가 마르크스주의와 동의어일 때가 있었다. 자본주의적 착취, 사회주의 혁명, 노동자 계급 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같은 개념들이 진보정치의 모든 것을 요약하던 때가 있었다. 정치는 혁명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고, 주체는 노동자 계급과 다른 어떤 것일 수 없었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말고는 달리 사고 될 수 없었다. 하지만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이 마르크스주의를 물질적으로 해체했다면, 그와 동시에 국내에 수입된 ‘포스트 담론’(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마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는 제국/식민지 체제 해체 후 단절된 한·일 양국 관계가 냉전이라는 신질서와 함께 맞이하게 된 역사적 전환점이다. 그러나 민주적 의견수렴의 부재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생략한 채 진행된 체결 과정에 대한 비판이 65년 체제 이후 끊임없이 제기 되어 왔다. 현재 한·일 양국의 갈등 양상은 지속되고 있으며 역사, 경제, 사회 등 다각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창훈의 논문 「한일관계의 ‘65년 체제’와 한국문학: 한일국교정상화를 둘러싼 ‘국가적 서사’의 구성과 균열」은 한일국교정상화 수립을 기점으로 일본국·
현대인들은 근대 세계체제 유산의 상속자들이다. 인권, 국적, 소유권 등 우리의 천부적인 ‘권리’는 초월적으로 주어진 게 아니다. 우리에 앞서 근대성에 당면했던 선조들의 저항과 협상의 역사적 유산이다. 이 일련의 유산들은 근대적 가치를 재생산하는 일련의 기관들에 의해 보증된다. 그중 국가(state)와 기업(company)은 근대 이래 인류세의 최정점에서 인간적 삶의 가치를 구획하는 가장 강력한 기관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앤드류 필립스와 제이씨 샤먼 공저의 『외부위탁의 제국주의』는 기업정부(company-state) 모델의 역사에
지난 8월과 9월, 두 달 연속으로 네이버 웹툰이 화제가 되었다. 좋은 의미로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네이버 웹툰을 통해 연재되는 두 편의 웹툰이 연이어 여성 혐오적인 표현을 내비쳤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논란이 된 작품은 2014년부터 연재 중인 기안84 작가의 만화 이다. 지난 8월에 게재된 ‘광어인간’ 에피소드가 문제를 낳았다. 이전부터도 여성 캐릭터의 표현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작품의 여주인공에 대하여 ‘실력도 없으면서 정규직이 되기 위해 각종 애교에 급기야는 상사에게
문학사는 문학의 역사다. 문학사는 문학의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라는 말이 지시하는 시공간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문학사의 대상과 그 범주는 문학의 보편성과 역사적 실재성을 통합함으로써 그 논리적 체계를 확립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문제가 문학과 역사의 본질에 관한 인식의 방법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역사는 과거 사실을 기술한다. 역사의 기술에서는 그 대상의 사실성과 논의의 객관성이 강조된다. 역사에서 다루어지는 모든 사실은 원인과 결과를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전개 과정으로 설명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독일의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문제 삼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평이하게 말하자면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동물은 자연이 자신에게 부여한 본능구조에 따라서 살 뿐이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뇌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에게 미래는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이 구현해야 할 미래를 어떤 것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미래의 삶의 모습은 달라지는 것이다. 미래가 이렇게 열려 있는 것과 함께 또한 과거도 열려
바야흐로 채식의 시대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채식의 중요성과 육식의 위험성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채식주의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사회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채식은 한 개인의 취향 이상의 무언가를 내포한다. 사람들에게 채식주의는 그저 채식을 즐긴다거나 채식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을 의미하기보다는 육식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일반 식문화와 대치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일 수도 있고, 일부의 채식주의자들이 보여온 과격한 운동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다. 채
흔히 도덕적 행위를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비롯한 실천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행위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행위자가 실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니체의 비판을 수용하며, ‘자율성’에 기반한 근대 주체 도덕을 넘어 새로운 윤리적 기획을 마련한다. 들뢰즈의 윤리적 출발점은 ‘왜 인간은 복종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비롯한다. 칸트는 자기 자신이 내린 명령에 따라 법을 세우는 입법자 주체의 위대함을 강조하며, 그 법을 지키면서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으나
SF는 과학에 근거한 장르로 세계를 낯설게 함으로써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운 삶과 도덕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또한 SF는 과학 발전에 따른 인식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한 SF를 고찰함은 남북한 문학이 어떻게 인간을 이해하며 삶을 상상했는지, 사회적 맥락 속에서 과학 기술이 어떻게 형상화됐는지를 살피는 작업이다. 김민선의 논문 「1950~1960년대 남북한 SF 연구」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남북한 SF의 주요 텍스트들을 분석함으로써 SF가 한반도에서 본격적
성윤리를 제시할 때 많은 이론가는 성의 가치부터 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흔히 거론되는 성의 가치는 생명잉태, 사랑, 쾌락이다. 각각으로부터 보수주의, 중도주의, 자유주의 성윤리가 도출된다. 혹은 이 세 가지 가치를 모두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아름다운 성’의 윤리를 외칠 수도 있다. 이런 윤리에서 볼 때 자신의 성에 있어 생명잉태, 사랑, 쾌락의 가치 모두를 다 내려놓은 이의 성은 무슨 가치가 있을까? 가치 없는 성을 가진 이들에 대한 윤리적 보호장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n번방 이후에 우리가 기대어야 할 성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