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가정 폭력과 그 이후의 문제를 잘 재현하고 있다. 앙투안은 가족, 특히 부인인 미리암을 소유물로 여기고 심사가 뒤틀리면 언제든 그들에게 위협을 가한다. 이때 영화는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폭력으로 인한 ‘공포’에 집중한다. 공포는 소리가 기억하는 감각과 한계 체험을 통해 환기된다. 미리암이 총을 들고 찾아온 앙투안의 화난 목소리를 피해 침대에 눕는 장면은 2분이 넘는 시간 동안 롱 테이크로 진행된다. 미리암과 아들 줄리앙은 서로를 껴안은 채 그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부로 침범하는 소리
사람들은 오랫동안 하늘을 나는 새들을 동경해왔다. 과학 문명이 매우 발달한 현대에는 그들에 대한 호기심, 궁금증, 동경심은 이전보다 많이 누그러들었다고 해도 눈앞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볼 때 우리는 매우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새들처럼 자유를 갖고 싶다라는 느낌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한 매력이 사람들을 새를 보는 세상으로 이끌고, 새를 찾아가게 되고 또 새를 따라가게 되는 이유가 된다. 새를 보는 활동을 한지 어언 20년 가까이 되고 있고, 새를 보는 여행을 업으로 한 지도 어느덧 강산이 한번
어쩐지 빨갛고 아득하더라니.미나의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문고리를 돌리면서 둥근 것을 손에 쥐는 감촉에 대해생각하느라 잠시 잊었지만. 집이 아니면 화장실에 갈 수 없다던 여자애가 종례 시간에 결국 주저앉을 때그때도 나는 미나를 생각했는데.둘둘 말린 이불 속에서 미나가 울고 있었다. 큰 소리를 내며 망가져 버리는 풍선처럼,저러다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신발을 벗는 것도 잊고 나는 미나를 달래야겠다. 서두르는데, 서두르다가, 너무 서두른 나머지서두르는 것에 실패한 채로방문 너머에서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 새로 산 게임 속에서, 그는
우울증 치료 후 복직을 앞둔 산드라는 느닷없이 해고를 통보받는다. 회사 동료들이 그의 복직과 보너스를 두고 후자를 선택한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작업반장으로부터 압력이 있었다는 제보 덕분에 월요일 아침 재투표 기회를 얻는다. 동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은 단 이틀뿐, 마음을 바꿔 산드라를 지지하는 동료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쪽의 반발도 거세다. 은 서사적 요소를 어느 정도 포기한 채 파편화된 에피소드를 그대로 나열한다. 새로운 사건을 바라면서 영화를 좇아가던 우리는 일순간 기대를 접는다. 그러나 이미 알고
사진은 잊기 쉬운 것을 기록하여 기억하게 해주는 매체이다. 그것이 사진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며 고유한 특성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진의 기록성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요즘 사진은 너무나 많은 것을 기록해 오히려 잊혀간다. 온라인 SNS 속 수많은 피드는 의미 없는 ‘좋아요’와 함께 스크롤 되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이런 빠른 이미지 소비의 시대 속에서 나는 이런 흐름과는 반대로 일상적인 곳에 있어 잊히기 쉬운 것들을 계속 바라보고 기록하려 한다. 방화동(傍花洞). 이름에 꽃이 들어간 곳에 살아서일까. 언젠가부터 나는 풀과 꽃
왜 어릴 적 영상이 여기 남아 있는 걸까. 노이즈가 많습니다. 찢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화면은 흐리고, 어린 나는 뒷목이 희고 모자를 썼습니다. 피아노 학원은 비디오 가게를 지나면 나옵니다. 골목에 떨어지는 빛을 따라 걷습니다. 나는 피아노를 배웁니다. 여섯 살 때부터 배웠습니다. 개가 짖습니다. 오선지가 찢어집니다. 학원에는 방이 여러 개 있습니다. 쇼팽 방, 모차르트 방, 드뷔시 방…… 방을 고를 수는 없습니다. 방은 선생님이 정해줍니다. 오늘은 쇼팽 방이 비었습니다. 나는 드뷔시 방을, 왼손 아래 고장 난 건반들을 좋아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있었던 건물이 사라지고, 또 그 자리에는 빠르게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많은 것들이 쉽게 바뀌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것들이 있다. 마포구 아현동, 애오개역 1번 출구로 나와 골목 사이로 들어가면 눈에 띄는 노란 외벽의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높게 솟은 낡은 굴뚝만 봐도 오래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1958년부터 지금까지 60년 넘게 자리하고 있는 곳, ‘예술로 목욕합니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운영 중인 ‘행화탕’이다. 행화탕은 고급 사우나의 등장과 아현동 일대의 재개발이 추진되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찬실에게 닥친 상황은 절망적이다. 담당하던 영화감독은 죽고, 열렬히 사랑했던 일로부터 소외당하면서 찬실은 영화 제작자로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는다. 와 동시대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꺼이 찬실이의 좌절에 공감하고, 과거와 결별해 자신을 의식하고자 하는 고민에 동참한다. 그러나 단순히 우리가 그와 비슷한 일을 현실에서 겪고 있다는 이유에서 기인하는 감정들은 아니다. 영화는 찬실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는 듯 시종일관 대화하는 인물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간다. 인물과 우리 사이의 거리가
영화가 주는 여운을 좋아한다. 마음을 움직인 것이 무엇인지 시간을 두고 골똘히 생각하곤 한다. 캐릭터의 행동을 분석하고, 기억 속에 맺힌 장면을 복기하고, 영화가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를 되새기다 어느 순간 감독을 상상한다. 매혹당한 감각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나만의 과정이다. 스크린이라는 창을 매개로 그 바깥에 존재하는 창작자를 조심스레 헤아려본다. 를 연출한 김보라 감독의 특강을 들었다. 그는 를 만들며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영화 제작 전반에 대해 들려줬다. 영화텍스트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어디서 오셨어요? 프론트에 앉아있는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떤 사람을 찾아왔다고 하자 그런 사람은 없다고 한다 혹시 지혜를 찾느냐고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바른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는 나의 양 옆으로 정장 입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시간이 까맣게 흘러가고 저 사람이에요 프론트에 앉아있는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걸어온다 지혜가 내 앞에 멈춰선다 모자를 벗자 그 안에 있던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제가 너무 늦었지요 지혜는 멋쩍게 웃고 반짝이는 생각 속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길치의 특징이라는 글을 보았다. 길눈이 밝은 사람들은 특색있는 건물이나 지형을 표지로 삼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길을 분위기로 기억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를테면 3층짜리 스타벅스 옆을 지나면서도 ‘차가 쌩쌩 달린다.’, ‘날씨가 좋다.’, ‘그림자가 길다.’라고 자신이 지나온 공간을 기억하는 사람. 바로 내 이야기다. 3년 전 이맘때 참여한 사진 행사에 걸었던 작업 소개를 최근 다시 보게 됐다. “···길을 잃는 날에는 어김없이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는데 타고난 길치인 나는 자주 길을 잃는다.
은 도전적인 영화다. 이 영화는 타자 재현의 불가능성이라는 윤리에 도전한다. 은 ‘보여줘서는 안 된다’ 혹은 ‘보여줄 수 없다’는 이미지 재현의 윤리를 보란 듯이 들이받는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오늘날 쉽사리 입에 담을 수 없고, 허락되지도 않는 ‘추(醜)한 얼굴’이다. 출입국 세관 직원인 티나, 그리고 그와 주요하게 관계하는 보레는 인간이 아닌 ‘트롤’이라는 종족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보통의 인간’과 다르다. 트롤은 거친 피부와 모발, 두툼한 눈과 코, 그리고 후각으로 인간의 감정을 읽는 능력을 갖추고
무슨 얘길 했더라 우리하려던 게 뭐였지?세상이 우릴 집어삼키더라도 아마네가 슬퍼할 때그것에 공감하고 싶었지만부족한 거 같아 나는크리스마스이브였고 좋은 사람이 되려 할수록 안 좋은 사람이 되었다감당할 수 없는 일이감당할 수 있는 일보다 많아서모두우스꽝스럽고*청년이고 중소기업에 다니고일 년 소득이 기준치보다 낮고 이자는꼬박꼬박 낼 수 있다 증명하기 위해연차 휴가 두 번 내고 서너 번점심 거르고 은행에 갔었다돌려받을 보증금, 사회생활 시작하고 모은 돈 얼마, 아버지에게 빌린 오백만 원, 어머님께서 마이너스 통장에서 꺼내준 이백사십만 원
영화 스틸 사진가로서 첫 촬영 현장에 가던 날을 떠올린다. 촬영지인 대구로 내려가는 새벽 기차 속에서 촬영 현장을 상상하며 '단편영화니까 스태프가 많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막상 도착한 촬영 현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수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있었다. 한 편의 영화는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 스태프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에서야 비로소 완성되는 일이라 촬영 현장의 각 팀은 서로의 분야를 존중하고 업무를 정확히 구분 짓는다. 각자의 역할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촬영팀
인적이 드물고 오래된 숲이 있다. 이곳에는 나무와 풀이 잔뜩 우거져있고, 문득 사찰의 종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그 옆에 오래된 폐건물이 있다. 숲의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건물인 것 같다. 과거 어떤 정치인이 이와 유사한 자연 일대를 보며 던진 말을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다. “아직 개발이 덜 됐구나!” 그는 세월이 만든 자연의 형상을 ‘미개’ 혹은 ‘야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아닐까? 수많은 동식물이 나름의 관계망을 통해 만들어낸 그 자리에, 그는 ‘문명’을 건설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그 숲으로 돌아 가보자. 나는 올 8
옥주네 가족은 할아버지네로 이사를 간다. 여름동안 새로운 곳에서 지내게 될 옥주는 예기치 못한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 헤어짐이 어려운 그녀는 정든 집을 떠나기 전 빈 공간을 세밀히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영화도 남겨진 그곳을 함께 응시한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는 걸까? 에는 ‘부재’의 정서가 ‘가득하다’. 옥주와 엄마의 관계를 살펴보자. 둘은 멀리 떨어져 지낸다. 동생 동주는 엄마와 연락하며 간간히 만나지만 이와 달리 옥주는 엄마와 만나지 않는다. 옥주는 떠나가 버린 엄마에 대한 앙금이 깊게 남아있다
사랑은 일순 번져서 영겁처럼 지속된다. 그사이에 연애, 이별, 결혼, 이혼 등이 섞일 수 있겠지만, 결국 사랑 안에 일렁인다. (2019)는 온통 이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찰리는 유망한 브로드웨이의 연출가이고, 니콜은 과거 주목받는 10대 영화배우였지만, 지금은 반짝이지 않는 연극배우다. 둘 사이에는 아들 헨리가 있다. 영화는 둘이 상담가 앞에서 서로의 장점을 적은 종이를 쥐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그 종이를 읽지 않는다. 순탄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고 입장한 관객을 감독은 시종 배반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친구들과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평생 한 가지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어떤 음식을 먹고 싶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김치볶음밥이라고 답했고, 누군가는 칼국수이고 또 누군가는 만두라고 답했다. 각기 다른 음식을 골랐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으며 살 수는 없다. 평생은커녕 일주일도 힘들 테다. 사람이 한 가지 음식을 끊임없이 먹으면 금세 질리듯, 같은 공간에 계속 머무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반복되는 공간에서 우리는 질리고 물리고 지루해진다. 출퇴근길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대신 휴대전화만 바라보며
혼밥으로참치찌개를 먹다가바다 생각이났다파도에 단련된 물고기들이분주하게입구를 오가고 있었다더러는 그물에 걸리고굵은 낚시 바늘에입술이 뚫렸지만계속해서 헤엄치고 있었다하나 둘 입말을 잊어버리고통조림에 담길 상처와그 적막의 배후까지잊어버린 채바다로 바다로내면의 소용돌이를 풀어내고 있었다겸상을 허락하지 않는바다의 식탁에정신만 남은 물고기들이 찾아온다빈자리마다 비린내자욱한 분식집에서아무렇지도 않게 계산을 마칠 때어떤 허기는찌개 속 살점을 덜어주고서야 잔잔한등짝을 드러낸다당황스러운 이 고백마저도다 같은 어족(魚族)이었음을 눈짓하는 것이다
(2003, 짐 자무쉬)의 에피소드 중 한 편인 ‘캘리포니아 어딘가(SOMEWHERE IN CALIFORNIA)’에는 금연에 관한 흥미로운 담화가 등장한다. 짐이 25년간 피웠던 담배를 끊고 집중력이 좋아졌다고 하자, 톰 역시 이에 동조하며 금연하지 못하는 이들을 비난한다. 곧이어 톰은 금연의 매력을 역설한다. “담배를 끊어서 가장 좋은 점은 다시 피울 수 있다는 거죠. 왜냐하면 끊었으니까.” 짐은 이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금세 수긍하며 함께 담배를 피운다. 이처럼 는 수많은 인간군상에 대한 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