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거의 3년이 되어가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일본인이지만 한국 사회나 한국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한국 사회나 문화에 대해서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지난 3년간 그랬듯이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글을 찾아 읽는 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책은 나에게 한국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은 1963년 에 4개월
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 자신의 삶의 여정과 사유역사를 표출해 낼 철학적 자서전으로 기획되었다. 이 책이 “내가 누구인지를 밝혀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로 시작해서 “나를 이해했는가?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 끝맺는 것만으로도 그 의도는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그런데 니체의 집필 의도는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는 곧 인쇄될 『이 사람을 보라』에서 완전히 정리했다.”는 편지를 보면(1888년 12월 27일) 니체 자신은 만족한 듯이 보인다. 철학자 니체와 니체의 철학에
뛰어난 소설가나 시인이 뛰어난 비평가인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런데 반대로 뛰어난 비평가가 뛰어난 소설가이거나 시인인 경우는 별로 없다. 당연한 말이다. 당연한 말인데도 말하고 나니 왠지 비평가가 부조리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명색이 비평가도 문학하는 사람인데. 비평은 시와 소설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이류문학이거나 숫제 문학이 아니다? 예전에 나왔으나 지금은 사라진 국어사전은 작가들을 또 이렇게 정의하고 있었다. 시인? 시를 잘 짓는 사람. 소설가? 소설을 퍽 잘 쓰는 사람. 뭔가 부족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정의지만, 잘 생각하면 백
국내번역, 파편적 이해에 그쳐 … 총체적 시각 필요 조르주 뒤비는 아날학파 제1세대인 마르크 블로크와 루시앙 페브르, 페르낭 브로델로 대표되는 아날학파 제2세대를 이어 아날학파 제3세대를 대표하는 역사가로 분류된다. 페르낭 브로델이 아날학파의 주요 기관을 제자들에게 넘겨주고 물러나자, 아날학파는 복수지도체제로 들어서게 된다. 임마뉴엘 르 롸 롸뒤리, 조르주 뒤비, 쟈크 르 고프 등이 브로델의 자리를 동시에 메우게 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연구대상으로 날씨, 무의식, 신화, 심성, 언어, 책, 젊은이, 육체, 음식, 여론, 영화, 축제
아날의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의 저작들이 우리나라 역사학계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이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우리나라에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기 시작한 때인데, 이런 상황 속에서 브로델의 역사학은 진지하게 연구되기도 전에 포스트모던 역사학자들에 의해 극복해야 할 ‘낡은 역사학’으로 낙인 찍혀 버렸다. ‘결정론에 가까운 구조주의’, ‘움직이지 않는 역사’, ‘사회과학적 분석과 계량을 중시하는 방법’ 혹은 ‘거대한 이론이나 설명의 틀에 맞추어 역사현상을 보려고 하는 거대담론’ 등이 브로델을 바라
주시경과 국어연구학회의 발자취대원군과 민 황후가 권력 다툼에 눈이 어두워 있을 때 1895년 말부터 통감부를 설치한 일본은 실질적으로 한국을 식민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1890년부터 1894년까지 이종회 진사로부터 한문을 배우던 주시경은, 1894년 9월에 국문동식회를 조직하여 모든 서류는 한글만으로 쓸 것을 주장·권장함과 동시에,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무기가 ‘한글’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1908년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하고, 1911년에는 학회 이름을 ‘배달한글 음’으로 고쳤다가 1913년에 다시 ‘한글모’로
인문학 학제(interdisciplinary)연구의 모델 제시동국대학교출판부의 문화학술총서 중 하나로 출간된 『신라의 발견』에는 엮은이 황종연을 비롯해 문학, 사학, 미술사학, 고고학, 일본학 전공자들의 10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이 책의 목적은 “한국의 근대문화와 밀접하고도 중대한 관련을 맺도록 신라가 이해되고 상상되고, 궁극적으로 창안된 주요 계기를 확인하는 데에 있다.” 제1부의 논문들은 주로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신라’가 발견·표상된 양상들을 고찰하였고, 제2부의 논문들은 신라 유산의 발굴·인식·활용 사례들을 다각도로 검
이 병 주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강사)알튀세르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읽으면 이상하게도 루카치의 『맑스로 가는 길』을 떠올리게 된다. 왜냐하면, 철학적 노선이 정반대이기에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두 철학자를 희미하게나마 연결해 주는 고리들 때문이다: ‘맑스로의 회귀―더 정확하게는 그 당시 맑시즘의 타락에 맞서 맑시즘을 옹호하고 재구성하려는 시도’라는 이들의 야심과 이들이 겪어내야만 했던 이론적, 그리고 이들이 더는 진지하게 언급되지 않는 이 땅에서의 갑작스러운 집단적인 망각. 공적인 자리에서건 사적인 자리에서건 ‘알튀세르
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 (김상훈 옮김, 오멜라스, 2008)올라프 스태플든, 『이상한 존』 (김창규 옮김, 오멜라스, 2008)로버트 A. 하인라인, 『낯선 땅 이방인』 (장호연 옮김, 곤조, 2008)조하형, 『조립식 보리수나무』 (문학과지성사, 2008) 새삼 관습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관습은 중력과도 같다. 새가 나는 것을 보고도 그저 인간은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것이 불가항력적인 인간조건이라고 편하게 생각해왔다. 게다가 관습은 세상을 보는 상투적 관습을 낯설게 만들고 급기야 전복시키는
여 석 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새삼스레 소개할 필요가 없는 명작 희곡이다. 여기서는 이 작품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경로를 간추려 이해를 돕고자 한다. 먼저 간결하게 이해하는 경우. 그것은 복수극이다. 비명에 간 어버이의 원수를 갚는 아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도 거기서 작품을 구상했고 복수비극은 당시에 유행한 장르였다. 죽은 왕의 유령이 오밤중에 나타나 아들 왕자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진상을 알게 된 왕자가 왕관을 가로챈 숙부의 목숨을 노리는 것이다.그러나 이토록 단순한 시작에서 복잡하기 그지없는 작
김 복 래 (안동대 유럽문화학과 교수)2008 베이징 올림픽의 열기가 드높다. 이 월드 스포츠 축제기간 중에 탄생한 올림픽 영웅들. 젊은 그들. 비록 ‘영웅이 없는 현대’란 말을 하지만 우리는 모두 영웅을 필요로 한다. 만약 역사가에게 영웅의 모델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마르크 블로크가 이상적인 모델이 될 것이다. 프랑스 역사가에게 가장 존경하는 역사가가 누구인가 물어본다면, 그는 십중팔구 마르크 블로크라고 주저없이 말할 것이다. 마르크 블로크는 루시앙 페브르와 더불어 아날지를 창간하여 새로운 역사적 접근방법을 개척하고, 독일
김 응 종 (충남대 사학과 교수)아날학파란 프랑스의 역사가인 뤼시앵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가 1929년에 창간한 《경제사회사 연보 Annales d'histoire economique et sociale》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잡지의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아날. 경제, 사회, 문명》으로 바뀌었다가, 1994년에 다시 《아날. 역사와 사회과학》으로 바뀌었다. 아날학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아날학파가 제1세대, 제2세대, 제3세대, 제4세대로 ‘변화’해왔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제1세대인 페브르와 블로크가 지향한 ‘새로운
지난 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의 열기가 퇴색되고 있는 지금, 새로운 연대와 정치적 성찰에 관한 논의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촛불집회를 다시금 살리고 끌어가려면 그것을 둘러싼 정세를 섬세하게 분석하고 주어진 현상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찾는 작업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작업으로 지난 14일 고려대학교에서 개최된 촛불들의 축제인 ‘맑시즘 2008’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촛불시위를 이끌었던 ‘다 함께’의 주최로 개최된 ‘맑시즘 2008’은 거리를 가득 채웠
김 명 진 (성공회대학교 강사,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과학기술을 주제로 한 SF나 공포 영화들을 보면 이런저런 형태로 변주되어 계속 반복되는 몇 가지 주제들이 있음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가령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치적 혹은 환경적인 재난을 가져오거나 기성 권력집단에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해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한 미래상을 가져올 거라는 예측이 그 중 하나이다. 그런 영화들에서는 극단적인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등으로 말미암은 전 지구적 기상이변, 정보/생체 감시기술의 전면적 확대 등이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또 파멸적인 규모의 핵전쟁
유 미 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독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일본이 지난 7월 중학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문제 명기 방침을 발표한 이래 대한민국 전역은 ‘독도’ 이슈로 들끓고 있다. 자명한 우리 영토인 독도에 대하여 일본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이를 세계에 홍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한국의 독도 관련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은 저마다 대응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 가운데 제기되는 것이 역사적인 근거를 충분히 축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올해 3월부터 일본 외무성은 홈페이지에 ‘다케시마1)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포인트’라는
1990년대 이후 디지털 인쇄·편집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인터넷을 통한 지식정보의 유통방식이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출판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어 많은 출판사들이 존폐위기에 처했다. 대학출판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에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된 책은 보편적으로 학문적 신뢰와 권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책의 가치를 계속해서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출판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가치’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거대상업출판사의 자본을 배경으로 기획, 편집, 디자인, 마케팅 등 출판전문가들이 입체적으로 참여하여 만든 “
한국의 현대 프랑스 철학 수용은 학문적 진지성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그 이우 가운데 하나로 우리는 한국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 서적의 번역을 제대로 그 분야를 전공한 철학자가 한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상당수는 불문학 혹은 사회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단지 불어를 하고, 해당 철학자를 안다는 이유로 번역을 한다. 그리고 그나마 철학을 전공한 사람의 경우에도, 해당 철학자에 대해서 전문가라고 할 만한 사람이 번역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오역에 가까운 수준 미달의 번역이 판치는 곳이 현대
슬라보예 지젝, 정영목 역,『지젝이 만난 레닌』 (교양인, 2008)수잔 벅 모스, 윤일성·김주영 역,『꿈의 세계와 파국』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8) 책읽기에 대한 편견 중 하나는 책읽기를 현실적인 분주함으로부터 한발 물러난 고요하고도 정적(靜的)인 활동, 차라리 비(非)활동으로 보는 것이다. 책읽기란 시간이 남아 돌 때, 분주한 상황으로부터 한숨 돌릴 만한 때 하는 활동 아닌 활동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좀 더 진지한 책읽기조차 실천 없는 이론, 행동 없는 사유로 치부될 때가 많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만일 책읽기가 요즘처럼
롤즈는 1971년에 출간된 『정의론』에서 당시까지 사회적 정의로 여겨지던 자본주의 체제와 대의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전면적 반성을 촉구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사회의 모든 부문에 불평등이 만연되어 있다. 그 속에서는 빈부, 성, 인종, 계급 등 불평등을 야기하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있지만, 자유주의 이론가들은 그러한 요소들을 수정하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조적인 불평등 요인들을 무시한 채, 모순적인 사회적 현상들을 시장과 경쟁의 논리로 치환하였다. 그 결과 출발점이 다른 타고난 불평등은 운수소관으로 치부되고, 불평등이 야기하는 구조적
68혁명과 장애인운동, 여기에도 어떠한 관련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장애인운동의 역사와 내용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약간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월러스틴의 말대로 68혁명이 1848년 혁명과 함께 단 둘뿐이었던 세계혁명이었고, 홉스봄의 지적처럼 1945년 이후 황금기에 딱 한 번 있었던 동시적인 세계 대격변이었다면, 이것이 장애인운동에도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68혁명의 직간접적 영향받은 장애인운동 국제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장애인운동 역사의 이정표 중 하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