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는 한국 문학 특유의 장벽과 한계를 통쾌하게 극복하고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한국문학사의 외연과 내포를 확장한 작가이다. 박완서의 문학적 이력은 시작부터 끝까지 한국문학의 관습을 철저히 배반하고 있다. 그녀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작가와 달리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한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웬만한 여류작가라면 절필을 생각할 나이에 소설을 쓰겠다고 작품을 들이민 당찬 기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올해 초 영면할 때까지 누구보다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주면서 주요한 문학상을 모두 수상하는 등 한국의 대표적 소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어느 심리학자의 대한민국 정신 해부 보고서벨기에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가 쓴 『파랑새』는 파랑새를 찾는 한 남매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는 어딘가에는 분명 행복이 있을 것이란 희망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우리 인생을 은유하여 큰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파랑새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21세기도 10년이 훌쩍 지나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이는 통용되는 말일까? 정말 행복의 파랑새는 우리 곁에 있는 것일까? 반세기 전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강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에 있는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최제훈의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하 『눈』으로 약칭)은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이야기의 병치와 결합, 해체를 통해 새로운 서사를 창안하는 그의 방식을 잘 보여주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장편이라고 인쇄되어 있지만, 이 소설은 네 편의 중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로도, 개별적인 작품집으로도 읽을 수가 있다. 이 복잡한 서사를 요령 있게 정리하긴 어렵지만, 대강의 이야기들은 이렇다. 외진 산장으로 초대 받은 연쇄살인사건 동호회 ‘실버 해머’의 여섯 회원들이
아파트라는 인공낙원 지금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 혹시 아파트, 또는 그것과 유사한 형태의 주상복합 또는 빌라 등에 살고 있진 않은가? 한국인의 절반 이상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이것이 그리 무리한 질문은 되지 않을 것이다(전상인, 『아파트에 미치다-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이숲, 2009, 23쪽). 그리고 실제로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이 콘크리트 일색으로 비슷비슷하게 지어진 건물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거나 자연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로또에라도 당첨되게 되면 “저 푸른 초원 위에 /
지난 2월 25, 26일 양일에 걸쳐 우리 대학 다향관 세미나실에서 ‘재일 코리안의 정체성과 초(超) 국가주의’ 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은 우리 대학 문화학술원 일본학 연구소의 ‘제 43회 국제학술심포지엄’으로 일본학 연구소 기관지인 『日本學』 창간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되었다. 첫째 날은 ‘아이덴티티의 탈구축과 공생의 가능성’이라는 상위 주제로 네 번의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졌고, 둘째 날은 ‘변용하는 자이니치와 다문화사회’라는 상위 주제로 역시 네 번의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졌다. 재일 코리언의 정체성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액체 근대』에서 유체의 ‘가벼움’과 ‘무게 없음’에서 연상되는 이동성과 무일관성을 바탕으로 근대 역사에서 새로운 단계인 ‘오늘날’의 속성을 파악하고자 할 때 ‘유동성’이나 ‘액체성’이 적합한 은유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공산당선언』의 “견고한 것들을 녹이는 것(melting the solids)”으로서의 근대성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유동성’과 ‘액체성’은 근대성의 일반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성의 이러한 속성의 목적이 “세습된 결함투성이의
“당신들은 정말로 위험에 처해 있나요?”“그래요. 당신이 우릴 저버릴지도 몰라요.”“내가요? 어떻게요?”“당신 시대의 당신 말이에요. 한 개인으로서 당신이 우릴 이해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고, 당신 자신의 인생과 시간 속에서 투쟁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겠죠. 당신 시대의 당신이 우리와 함께 투쟁하는 데 실패할지도 몰라요.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 속에 계속 남기 위해서 우리는 싸워야 하고 장차 다가올 미래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당신과 접속한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미국의 페미니즘작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인 마지 피어시의『시간의 경계
식민지 후반기(1937~1945) 조선문학과 조선문화를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그것들을 이해 가능한 대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요원한 일이다. 과거 민족주의의 그늘 아래 식민지 후반기는 ‘암흑기’로 봉인되었고, 그 시기의 문학과 문화는 망각되어야 마땅할 대상인 것처럼 여겨졌다. 이후 친일/반일의 경직된 이분법적 도식 아래 식민지 후반기 문학과 문화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이루어지다가 1990년대 이후 소위 ‘저항’과 ‘협력’이라는 보다 유연하지만, 결국 친일/반일의 변종에 다르지 않는 인식틀―친일과 반일은 어떤 수식어
△ 왕재일 장재성 등 15명의 광주지역학생들이 비밀결사조직 ‘성진회’ 결성을 기념하는 사진. ‘성진회’는 1926년 11월 3일 결성되었다. 1929년 11월 3일은 일요일로, 일본 메이지천황의 생일이자 전라남도 내 누에고치 생산 6만석 돌파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린 날이기도 했다. 수많은 인파가 거리를 메웠다. 집집마다 일장기를 게양하는 등 광주는 겉으로 보기엔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조선인 학생들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 이 날은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이었다. 민족의 축일에, 그것도 일요일에 일제 수탈정책의 상징적 행사에 동원
지난 10월 29일(금) 동국대학교 문화관 덕암세미나실에서 교책연구기관인 문화학술원의 주관하에 “다문화시대의 하이브리드 컬쳐(Hybrid Culture)”라는 주제의 학술대회가 진행되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전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세계화로 인해 자본, 상품, 인력이 기존의 국가경계를 넘어드는 현상이 점차 일상화되고 이에 따라 국가란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화,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사고방식에 대한 의문이 증가하고 다양한 언어, 문화, 민족, 종교 등을 통해서 서로의 정체성(identity)을 인정하고 함께 어우러질
『동국사학』이 걸어온 길동국사학회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우리 연구자들에 의한 역사연구가 이제 막 뿌리내리기 시작한 1948년 창립되어 올해로 62주년을 맞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또한 같은 해 8월 창간된 『동국사학』은 국내대학 최초의 사학과 학술지라는 점에서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비록 이 때의 『동국사학』은 내용과 체제가 빈약한 프린트본으로 제작되었으나, 서양사의 채희순ㆍ오봉순, 동양사의 민영규ㆍ김상기, 한국사의 이병도ㆍ이홍직ㆍ홍이섭 등 시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 초기 역사학자들의 노력이 맺은 첫 발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때로 희망은 인간 그 자신을 먼 미래의 지평까지 불투명하게 데려다 놓는다. 희망은 연약한 하나의 가설로 존재하며 덕분에 거의 모든 가설을 채택할 수도 있다. 2010년 대한민국에 희망은 강력하고 선명한 하나의 이미지로 제시되고 전망되어지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그것은 공익광고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나 굳건한 정치적 캐치프레이즈로 선동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오히려 유혹의 치장을 한 채 장려된다. 모순적이고 불쾌한 과거, 기억은 적절하고 유용한 편집의 과정을 거쳐 재배치된다. 둥글게 다듬어지고 완성된 세계 속에서 자발적인 오
지난 9월 6일에서 10일까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맑스주의 비평가인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1943 ~)이 방한해서 다섯 차례 강연을 했다. 거의 두 세 달사이로 이글턴의 책들인『시를 어떻게 읽을까』『신을 옹호하다』『반대자의 초상』이 연달아 번역되었고 평소 그의 책들을 빼놓지 않고 읽어왔기에 부러 시간을 내서 이글턴의 강연에 참석했다. 테리 이글턴은 포복절도할 만한 유머감각을 갖춘 채 신랄하고도 명석하게 글 잘 쓰는 맑스주의 문학비평가로 알려져 있다. 초기의 이글턴이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비판을 문학비평에 도
국내 인문학 관련 논문의 인용빈도에 관한 명확한 통계 내지는 순위가 존재한다면 아마도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Keywords : A Vocabulary of Culture and Society는 그 상위에 랭크될 것이다. 그만큼 용어 및 개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관련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키워드』는 참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이었다. 특히 영미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전통에 직간접적으로 빚진 바 있는 이라면 『키워드』의 항목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키워드’들이 형성된 역사적 내력과 사정에 대한 조명 못지않게
임상수 감독이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던 10·26 사건은 카리스마적 독재자가 그의 최측근에게 살해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드라마틱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또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암살한 것이 계획적인 것이었는지, 이 과정에서 미국이 어디까지 개입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설령 김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하지 않았더라도, 1970년대 말의 유신체제는 이미 종말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1970년대,
『사회과학연구』는 동국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에서 발간하는 사회과학 일반의 내용을 담은 학술지이다. 매년 4월, 8월, 12월에 출간되는『사회과학연구』는 정치, 경제, 행정, 경찰행정, 법, 사회, 문화, 환경, 지역 등 사회과학의 제 분야에 관한 논문들을 모집하여 엄격한 심사를 거친 후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다. 학진 등재 후보지로 선정특히, 2000년대 이후부터는 다양하게 연구되어 오던 사회과학 일반의 연구에 대한 질을 더욱 높여 학술지의 수준을 한층 높였고, 2009년 12월부터는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후보학술지로 선정되어 더욱 높은
지난 9월 17일, 우리대학 행정대학원 첨단강의실에서 ‘세계화와 국제범죄’를 주제로 한 특별 심포지움(상단 사진)이 개최됐다. 한국사회학회(회장: 사회학과 양영진 교수) 주최로 진행된 심포지움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 속에 범죄라는 사회현상의 활동 영역 확대와 대책수립을 위한 논의의 장의 마련을 목표로 했다. 주제 발표는 투자사기, 금융범죄, 선교사 테러, 탈북자나 외국인 개입 범죄문제 등으로 나눠 진행되었고, 각 주제 발표 후 곧바로 우리대학 곽대경 교수(경찰행정학과)등 학계 전문가는 물론 국정원 등의 실무 전문가들의 토론
“두 시체의 머리를 곧바로 절단하고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모조리 받아냈다. 머리는 물론이고 몸에서도 피가 웬만큼 쏟아져 나왔다 싶으면 이번에는 시체를 눌러서 더 짜냈다. 더 이상 피가 나오지 않으면 이번에는 시체를 더 작은 조각으로 토막 냈고 나중에는 거의 다진 고기 수준으로 만들어서 피를 걸러내고 빨아내고 짜냈다. 그 과정에서 물이 추가될 경우에는 그 양을 일일이 기록했다.”(262쪽)이 섬뜩한 장면은 의학사가 구스타브 엑스타인(Gustav Eckstein)의 저서 ‘머리달린 시체(The Body Has a Head, 197
자신이 자서전에서 직접 기술한 바에 따르면, 그는 독일 제국의회 선거에 출마했던 라이프치히 지방 법원장이었고 후에 당시 독일제국의 법관으로서는 거의 최고의 지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드레스덴 고등법원 판사회 의장직을 맡았던 능력 있는 법관이었다. 5개 국어에 능통했고 바그너의 오페라를 즐겼으며, 괴테와 바이런의 시, 칸트 철학, 종교학과 신화학, 당대의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도 남달랐던 지적인 부르주아였다. 그의 아버지는 오늘날까지 독일의 주말농장으로 유명한 이른바 ‘슈레버 가르텐’의 창시자인 유명한 독일의 계몽주의적 교육학자 다니
『핀란드 교실혁명』이외에 필자가 갖고 있는 핀란드 관련 책으로, 『핀란드 교육혁명』(살림터, 2010), 『핀란드 경쟁력』(비아북, 2010), 『핀란드 공부혁명』(비아북, 2010) 등이 있다. 이러한 ‘핀란드 열풍’을 불러온 배경에 진보적이며 대안적인 국가모델로서 이른바, ‘노르딕(nordic) 사회정책’에 대한 관심이 있는 듯하다. 이에 핀란드가 2006년 유럽연합 의장국이 되면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일카 따이팔레(Ilkka Taipale)가 유럽연합 각국 정상들에게 국격(國格)을 대외적으로 홍보한 효과도 없지 않다. 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