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좋은 학술서는 모르던 사실이나 현상을 정련된 언어와 엄밀한 논증으로 비춤으로써 시야의 확장을 선사한다. 어떤 좋은 학술서는 내가 잊고 있거나 사소하게 치부하던 과거의 체험을 소환하여 나와 내가 선 ‘현재’를 반추하게 한다. 일본 불교대학교 최은희 교수의 최근저서 『韓国のミドルクラスと朝鮮戦争: 転換期としての1990年代と「階級」の変化』는 내게 후자의 경험을 선사했다. 이 책은 1987년 직후 한국사회 전환기를 중산층(middle class) 중심의 사회문화적 재편과정으로 제시한다. 전환기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민주화 직후 전환
는 가정 폭력과 그 이후의 문제를 잘 재현하고 있다. 앙투안은 가족, 특히 부인인 미리암을 소유물로 여기고 심사가 뒤틀리면 언제든 그들에게 위협을 가한다. 이때 영화는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폭력으로 인한 ‘공포’에 집중한다. 공포는 소리가 기억하는 감각과 한계 체험을 통해 환기된다. 미리암이 총을 들고 찾아온 앙투안의 화난 목소리를 피해 침대에 눕는 장면은 2분이 넘는 시간 동안 롱 테이크로 진행된다. 미리암과 아들 줄리앙은 서로를 껴안은 채 그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부로 침범하는 소리
이마무라 쇼헤이(이하 이마무라)에 따르면 중희극은 “(경희극의) 가볍기만한 웃음이 아닌, 좀 더 인간의 진실을 그려 묵직하게 배에 와 닿는 무거운 웃음”이다. 극 중 인물들은 범죄와 금기를 무반성적 태도로 습득, 변형하고 이를 통해 파생된 갈등은 욕망의 군상이 돼 서사를 추동한다. 서사가 진행될수록 인물들은 태세전환에 능숙해지고 이는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반복이 사건의 경중을 소거하면 능숙함만이 남아 웃음의 무게에 기괴함을 더한다. 그렇다면 중희극이 진실을 매개함에 있어 웃음의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정현의
뉴욕의 한 사업가가 아침 일찍 일어나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목적지는 바로 대서양을 가로질러 가야하는 프랑스 파리. 하지만 놀랍게도 단 세 시간 만에 파리까지 질주한다. 점심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사업가는 에펠탑 근처 카페에서 미팅에 참석한다. 그리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돌아와서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한다. 음속보다 빠른 비행기를 타고 지구 전체가 하루 생활권에 들어오는 꿈만 같은 삶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단순히 상상 속의 미래를 묘사한 것이 아니다. 무려 50여년 전 이미 인류가 경험했던 과거의
성적인 신체 기관을 강조하는 춤을 지칠 때까지 춘다. 공공장소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처럼 소란을 피운다. 반려동물을 때린다. 고통을 유발할 만큼 매운 음식을 대량적으로 먹어치운다. 이러한 과정을 미디어에 중계하고 수익을 창출한다. ‘자낳괴’는 이러한 사례를 지시하는 신조어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약자로서, 돈을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하는 일부 ‘크리에이터’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그러나 현재는 수익을 창출하기 위하여 비정상적인 행동이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수행하는 인간을 가리키는 데 포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용
“아 진짜 학교 가기 싫네.” 개학을 앞둔 우리 동네 초등학교 5학년 현욱이의 말이다. 난독증으로 읽고 쓰기가 어려웠던 현욱이는 코로나로 ‘공식적으로’ 학교에 안 가는 날이 많아지자 환호했다. 하지만 시골 지역 면단위에 살면서 ‘전교 60명이 넘지 않는 학교는 전면등교’라고 결정되자 왜 우리만 계속 학교에 가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예민하고 까칠한 데다 틱 증상도 가지고 있던 초등학교 2학년 수혁이는 학교에 가는 날이 줄어들자 오히려 틱 증상이 눈에 띄게 없어졌다. 마침 휴직 중이었던 엄마가 동생과 함께 산에 데리고 가 주었고,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이하 혁신법)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학문 분야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이공계 기준으로만 제정된 법령이라는 이유에서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혁신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과학기술혁신본부 주도로 과학기술혁신을 위해 제정됐다. 낡고 복잡한 연구 개발 규정을 간소하게 정비해 연구 현장의 행정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난 8월 19일, 인문사회학계 단체인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이하 인사총)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관정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법 개정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인사총은 “혁신법은
동국대학교 연구처 연구역량지원실은 2학기 조교 임용 자격 중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 국가지원사업의 연구과제 참여자(학생 연구자) 등 중복 근무 불가’ 방침을 정했다. 이와 관련하여 충분한 사전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고 학교측과 원우들 간의 갈등이 일어났다. 위와 같은 변경 사항을 2학기 조교 임용 직전에 신설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각 단과대에서는 조교 임용에 있어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모집을 실시했고 이에 따른 혼란이 야기됐다. 조교로 채용된 대부분의 원우들은 연구과제에 참여 중인 인원이었다. 경찰행정학과의 경우 아
국내 주요 학술정보기관들이 국내 오픈액세스 추진을 위해 지난 6월 17일 ‘국가 오픈액세스 정책 포럼 2021’을 열고 ‘오픈액세스 공동 선언’에 서명했다. 거대 상업 출판사들이 출판 및 유통 플랫폼을 독점하는 폐해가 심각해지자 지식의 공공성을 살리고자 시작된 오픈액세스는 비용 지급이나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논문을 열람할 수 있도록 재정적, 법률적, 기술적 장벽을 없앤 새로운 학술 정보 유통 모형이다. 오픈액세스는 최근 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사안으로, 2002년 ‘부다페스트 선언’으로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됐다. 국외 저
지난 6월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학진흥사업단이 지원하는 ‘K학술확산연구소 사업’에 선정됐다고 밝혔다. 우리대학 연구팀은 5년 동안 50억 원을 지원받아 ‘불교의 프리즘으로 보는 한국성의 글로컬리티’ 연구를 수행한다. ‘K학술확산연구소사업’은 최근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을 한국 학계 전반으로 이끌고, 새로운 한국학 교육콘텐츠의 확산을 통해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와 신뢰도 향상을 도모하고자 기획된 사업이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은 불교학의 세계화를 위해 연간 10개씩, 모두 50개의 온라인 강좌를 제
제34대 총학생회가 출범한지 한 학기가 지났다. 동국대학원신문은 총학생회가 한 학기동안 사용한 학생회비와 예산 및 결산서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동국대학원신문사(이하 ‘사’로 표기) : 사업의 예산 및 결산에 대해 정기 감사를 연 2회, 회계감사를 분기 1회 실시해야 한다. 정기 감사 및 회계감사를 진행하였는지, 진행하지 않았다면 언제 진행할 예정인지 알고 싶다.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이하 ‘원총’으로 표기) : 방학 중 감사준비를 위한 계획을 세웠으나 코로나19 4단계 및 학교측 학생회실
▲강심흔(일반대학원 불교학과)=한국불교의 산신신앙과 지장신앙 연구) ▲강영준(일반대학원 의학과 외과학)=A nomogram for predicting three or more axillary lymph node involvement before breast cancer surgery ▲강유주(일반대학원 교육학과 교육사, 교육철학 전공)=조선전기 한글 보급과 교육적 활용에 관한 연구 ▲고덕한(일반대학원 스포츠과학융합학과 멀티스포츠트레이닝)=근감소증 예방 가이드라인 제시를 위한 생활습관병 위험인자, 체력, 신체활동과의 관련성 연구 ▲곽
지난 2021년 8월 12일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을 유지한다면 2021년부터 2040년 사이의 지구의 평균온도는 산업화 이전대비 1.5℃ 상승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빨리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지구의 온난화는 예상보다 더 심화될 것이지만, 여전히 2100년까지 1.5℃ 이하로 제한할 가능성은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기후변화보다 그 변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산업화 이전에 비해 평균 1.0℃이상이 상승하였다. 서울의 현재 평균기온은 1970년대 대구나 전
사람들은 오랫동안 하늘을 나는 새들을 동경해왔다. 과학 문명이 매우 발달한 현대에는 그들에 대한 호기심, 궁금증, 동경심은 이전보다 많이 누그러들었다고 해도 눈앞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볼 때 우리는 매우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새들처럼 자유를 갖고 싶다라는 느낌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한 매력이 사람들을 새를 보는 세상으로 이끌고, 새를 찾아가게 되고 또 새를 따라가게 되는 이유가 된다. 새를 보는 활동을 한지 어언 20년 가까이 되고 있고, 새를 보는 여행을 업으로 한 지도 어느덧 강산이 한번
별에서 온 그대의 한 장면을 보면 팬이 선물해준 거대 곰인형의 눈에 불법촬영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주인공이 충격을 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는 그것이 팬이 준 선물이어서도, 자신이 몰래카메라로 찍히고 있다는 사실이어서 놀란 것도 아니라 바로 ‘곰인형’에서 ‘불법촬영장치’가 나왔기 때문에 놀랐다. 곰인형은 예로부터 안심의 메타포로서 사용되며 아이들의 침대에 위치하며 부재한 어른 보호자를 대신하거나, 무서운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꼭 껴안으며 물리적으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어떤 장치로서 사용되었다. 소위 애착인형이라고
갈 곳이 없다. 지난 학기까지는 집을 나서면 대학원 신문사 연구실로 향했다. 가끔 다른 곳으로 새기도 했지만, 주로 연구실에서 책과 논문을 살폈다. 영화를 보는 날도 있었고, 홀로 남은 날이면 음악을 틀고 사위어가는 바깥 풍경을 지켜보기도 했다. 자취해본 적 없는 나에게 연구실은 집 이외에 가장 오래 머문 장소다. 몇 번의 이탈 위기에서 잡아준 것도 다름 아닌 연구실과 그곳의 책상이었다. 학적이 수료로 바뀐 지 채 석 달이 지나지 않았지만, 소속감은 빠르게 희석된다. 나를 소개하며 이름 뒤에 붙일 말을 생각해본다. 대학원생이라 말하
인류는 본래 절반만이 투표권을 소지할 수 있었다. 1776년 미국에서는 독립 선언문이 작성된다. 민주주의적 혁명의 성격을 가진 이 선언문에는 자유, 평등과 인민 주권의 확립을 이루려는 시도가 담겨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1848년, 미국 뉴욕 세네카 폴스에서는 여성 인권 대회가 열린다. 여기서 발표되는 ‘소신 선언’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행하는 16가지의 억압이 담겨 있다. 오래 전 그들의 독립 선언문에는 여성이 없었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은 1920년 8월에서야 인정된다. 프랑스 역시 대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