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조회 수 2억 건을 넘겼다. 한국 콘텐츠 중 처음인데다 불과 50여 일 만의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뮤직비디오는 소녀시대의 “Gee”로, 3년에 걸쳐 누적 조회 수 8,400만 건을 기록했다. NBC의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 와 에도 출연했다. 뉴욕을 떠나 라스베이거스로 이동해 에도 출연했고, VH1의 생방송 와 LA에서 열린
흉흉한 세상이다. 강력범죄야 매년 있어 왔지만 올해 뉴스를 장식하는 참담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보면 마음마저 황폐해질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아동 성폭력 사건과 묻지마 범죄들은 비단 개인의 인성이나 도덕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최근 이 아동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불현듯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거울이 될 만한 일본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자타공인 일본 영화계 최고의 거장 중 한 사람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63)이
매스미디어와 함께 ‘대중문화’가 등장한 20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음악과 영화, 텔레비전은 늘 세대의 관점으로 환원되곤 한다. 특히 서양에서는 1960년대 록으로 대변되는 하위문화가 폭발한 후 정치, 경제, 사회뿐 아니라 ‘문화산업과 수용자 사이의 관계’로 심화되어 조명되었다. 요컨대 이런 시도는 다음과 같은 명제, ‘록은 젊음의 음악’ ‘아이돌 팝은 소녀의 취향’ ‘트로트는 중년의 음악’ 등으로 설명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대에 따라 특정 장르나 스타일의 소비가 존재한다는 추측은,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일종의 편견으로 여겨지게
주변을 둘러보면 클래식 영화에 대한 욕구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고전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은 드물다. 영화전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철 지난 영화들을 일부러 찾아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마 자료 찾기도 쉽지 않고 제대로 된 DVD가 그리 많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하나 그 보단 ‘낡고 촌스럽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실제로 예스런 말투와 동작을 보다보면 종종 민망함에 손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피식 실소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이것이 결코 작품의 질 때문이라 생각진 않는다. 그보단 오
가까이 있는 명소일수록 찾아가지 않을 확률이 더 크다. 경복궁 근처에 일터를 둔 직장인들이 근무가 일찍 끝나도 경복궁을 들어가 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주말을 이용해 가족들과 함께 경복궁을 찾을 리도 만무하다.아는 만큼 보이는 서울의 산책길해운대 앞에 사는 부산시민은 광화문과 경복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서울시민들은 휴가를 이용해 해운대로 피서를 간다. 복잡한 일상의 현대인들은 도시 속 가까운 것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하는 일탈본능 때문에 서울산책이 뜻대로 쉽지 않다.그렇다면 일부러 서울을 산책하려 노력하는 것보다 서울을
영화 역사 상 최고의 광대는 누굴까. 찰리 채플린의 이름을 댄다면 대부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채플린의 말은 그가 가진 웃음의 철학을 고스란히 녹여 보여준다. 그의 영화를 보며 한참을 웃다보면 어느새 가슴 속엔 씁쓸한 앙금이 함께 내려앉곤 한다. 기본적으로 채플린의 코미디는 폭력적인 사회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며 덕분에 그가 전하는 웃음은 우리 가슴 깊숙이 침잠하여 오랜 여운과 생각을 남긴다. 실로 시대의 광대이자 거장답다. 하지만 그 탓인지 채플린의 웃음은 어
2년 전, 한 출판사에서 서울의 숨겨진 골목길을 소개하는 책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인도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나에게 서울은 자꾸만 짐을 싸게 만드는 답답한 일상의 도시였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가 한강을 콘크리트로 막고 있고, 출퇴근 시간대의 테헤란로와 강남대로는 차들과 매연으로 가득 차 버린다. 그런 서울을 여행하라고? 처음 나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서울을 새롭게 조명해보는 유익한 책이 될 수 있겠지만, 일단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산책하고 끄적이는 일에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두근두근 서울산책』이라는
정의란 무엇인가. 이 식상하고 고루한 화두가 어느 날 서점가 높은 단상 위에 혜성처럼 등장해 우리 사회 곳곳을 유령처럼 배회한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혹자는 제목에 속았을 뿐이라고도 했고 누군가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 ‘정의’라는 가치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여전히 『정의란 무엇인가』는 잘 팔리는 중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정의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이 엄혹한 시절이 끝나기 전까진 계속 그렇게 미로를 헤매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나 같은 사회성 짙은 영화들이 연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이제 사회지능(SQ)이 필요한 시대다! . 학교공부만 잘하면 미래의 성공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났다. 미국의 카네기 공대 졸업생 1만명을 조사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니‘머리가 좋고 명석한 사람’은 15%에 불과했다. 반면‘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좋은 사람’은 성공률이 무려 85%였다. 직장을 이직하는 원인에 대한 통계조사를 살펴보면, 이직 이유 1위는 더 높은 연봉도 아니고 적합한 적성을 찾아서도 아니었다. 바로 대인관계 스트레스, “함께 일하기 힘들어서” 옮긴다는 사람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내가 그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갈수골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말이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없는 한, 그 사람이 지닌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그 무게가 무겁든 가볍든 그건 결코 절대적인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무제가 아닐 테니 말이다. 한국 연극계가 주목하는 젊은 작가처음 그를 만난 것, 2008년 3월이었다. 원하는 극작가를 정해 듣는 수업에서 나는 주저 없이 그를 택했다. 대학 때 「오랑캐 여자
프랑스의 음악애호가인 제임스 클레망은 13,788개의 MP3파일을 불법 다운로드 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기소됐다. ‘다운로드는 시민의 권리’라 클레망은 주장했지만 온라인 저작권 보호법은 그의 의견을 무시했다. 사안의 성격상 언론의 주목을 끌만한 일은 아니었다. 최소한 고다르가 나서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난해 클레망은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가 재판비용의 용도로 1,000 유로를 자신에게 기부했노라고 발표했다. 고다르는 이미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온라인 저작권법에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고다르는 인터뷰에서 “지적 재산권
오늘도 우리는 도서관에 간다! 그런데 왜 도서관에 가는 것일까? 시험공부와 취업준비? 아니면 친구들 만나러? 대학 생활에서 도서관이란 공간은 나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 곳일까? 가끔 시험공부가 힘들 때, 도서관 앞 계단에 앉아 지금 나는 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숱하게 드나드는 도서관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어떤 원리로 운영되고 있을까? 그 역사는? 뭐, 가끔은 이런 것을 궁금해 보는 것도 생각의 자유로움을 훈련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강변(?)하면서 잠깐 도서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고
탈북자는 125로 시작되는 주민등록번호를 받는다. 그 숫자는 그들이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건너온 순간 그들에게는 낙인처럼 125라는 숫자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 낙인은 국가 혹은 자본주의가 새긴 것이다. 박정범 감독은 전작 에서부터 꾸준히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드러냈다. 는 남한사회에서 “철저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탈북자 전승철의 삶을 그리고 있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인 전승철은 어디에도 적을 두지 못하고 표류하듯 남한 사회의 주변부를 떠돈다. 주민등록번호 125, 사회가 찍은 낙
박정범 감독은 를 통하여 영화계에 등장했다. 박 감독은 국내 뿐만 아니라 최근 예레반국제영화제 실버 아프리콧상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도 각종 상을 휩쓸며 인정을 받고 있다. 대학원신문은 를 통해 드러나는 박정범 감독의 작품관과 차기작에 대한 소식, 그리고 동국대 영상대학원 재학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장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정범 :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영화과 연출전공, 7기입니다. 편집장 : 영상대학원 졸업작품으로 를 완성했다고 들었습니다.
혹자는 들을 음악이 없다는 불평은 그저 투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좋은 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늘 존재하기 마련이라 찾으려고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좋은 음악이 늘 존재하듯 그렇지 않은 음악도 늘 우리 곁에 있다. 안일하고 몰개성한, 때때로 뻔뻔하기까지 한 음악들. 네이버 뮤직 이주의 앨범을 심사하다 보면 이런 감정을 주기적으로 맛볼 수 있는데,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다가 고민의 흔적은 더더욱 없는 앨범을 심사를 위해 들어야할 때면 왜 나에게 이러는지 따지고 싶어진다. 나는 구독하는 신문도
의 기획의도 중 하나가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소개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른 이름이 바로 듀나였다. 너무 1차적인 해석인지도 모르지만, 듀나야 말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우선 누구도 듀나를 본적이 없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단편이나 SF관련 선집에서 사용하는 이름인 이영수가 본명인지 가명인지도 알 수 없다. 오직 메일로만 청탁서와 소설을 주고받으며, 인터뷰도 메신저로 한다. 그래서 듀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많다. 40대 여성이라는 일반적인 이야기부터,
사람들의 가슴 속을 열어보면 누구나 청춘의 시기에 떠났던 크고 작은 여행의 기억이 하나씩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지난날의 추억이고, 방황과 일탈이며, 열정과 전환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여행이 있습니다. 누구나처럼 길 위에서 시작된 이 흔한 여행은 일상에 돌아온 지금도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길 위에서의 기억들이 제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꽃을 피워내고 싶다면, 펄떡거리는 청춘의 성장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만 한다고 말입니다. 아는 것도, 이룬 것도 적은 제가 누군가
인종차별주의적 폐해의 상징적 인물인 '사라 바트만'(Sarah Baartman, 1789 ~1815)의 유해를 프랑스로부터 돌려받기 위한 협상이 7년 간 지속되다가, 유해의 반환을 결정하는 주요한 사건이 발생하는 데, 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시인인 다이아나 퍼러스가 프랑스 상원위원들의 면전에서 '사라 바트만을 위한 헌시',「나, 당신을 고향에 모시러 왔나이다」를 낭송한 것이 그것이다. 시의 일부분은 이러하다. "나 당신을 해방시키려 여기 왔나이다/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의/ 집요한 눈들로부터/ 제국주의의 마수를 가지고/ 어둠
미래가 기대되는 작가, 윤고은 외로움은 최고의 비아그라다. 윤고은이 2008년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무증력증후군』의 첫 문장이다. 이 도발적 문장은 휘갈겨 쓴 것이 아니라 또박또박 하나씩 눌러 적은 것이다. 독자의 시선도 손도 세포 하나도 끝까지 놓치지 않도록. 첫 문장부터 독자를 끌어당기는 『무중력증후군』은 어느 날 달이 절단 난 플라나리아처럼 늘어나면서 지구에는 무중력증후군이란 것이 유행한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 달처럼, 어느 날 달에서 그녀가 뚝 떨어졌다면 좀 더 드라마틱하겠지만 사실 그녀는 그 전부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고연옥 작, 임영웅 연출의 연극 「내가 까마귀였을 때」는 외면하고 싶은 상처를 대면시키려고 집요하게 안간힘을 쓴다. 연극은 13년 전 잃어버린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가족들은 잃어버린 아이를 찾았다는 기쁨과 설렘에 들뜬다. 그러나 13년만의 상봉은 오롯이 환희로만 채워지진 않는다. 첫 만남부터 그들 사이에는 왠지 모를 묘한 긴장과 불편한 기운이 흐른다. 아이는 가족을 잃은 후 거리에서 자랐다. 얼마 동안은 고아원에 있었지만, 아이에겐 거리가 집이고 가족이었다. 먹을 것이